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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용대 Sep 30. 2020

추억 속 고향집

  머지않아 추석 명절을 맞게 된다. 명절이면 많은 사람이 고향을 찾는다. 고향은 누구에게나 정겹고 그리움으로 다가와 늘 설레게 한다. 자랄 적 온갖 고향집 장면들이 영상처럼 스친다. 내 고향에는 구순을 넘기신 어머니를 동생 내외가 모시고 산다. 부모와 형제를 만날 수 있어서 뿐만 아니라, 언제나 편안한 감정이 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어서다.


  평소 명절 때와는 달리 큰딸, 작은딸 가족 모두 같이 가기로 했다. 그들은 생활에 바빠 자주 못 갔다. 이번에는 가자는 말도 안 하는데 큰딸이 먼저 시골집에를 가자고 한다. 언니가 가겠다니 작은딸도 가겠단다. 내 어머니께서는 늘 ‘우리 새끼들 언제나 볼 수 있을까.’ 하시며 손녀들과 증손자 손녀들을 보고 싶어 하신다. 나는 명절 때나 여름휴가철이면 딸들에게 ‘아버지 고향에 가자’고 해도 들어주지 않아 많이 섭섭했다. 어머니께서 보고 싶어 하시기도 했지만, 나는 딸들과 외손자 외손녀를 자랑하고도 싶었다. 이번에는 아홉 명의 부대가 이동하게 됐다.  


  어릴 적 고향집 분위기는, 비포장 신작로 옆 밭가에 뽕나무가 무성했고, 집으로 들어가는 길가 왼쪽 탱자나무 울타리와 오른쪽 텃밭을 지난다. 텃밭 끝 돌담 앞에는 심은 지 오래된 향나무가 줄 맞춰 서 있고, 돌담과 맞닿은 사립문 안에 들어서면 큰 감나무가 있었다. 이때쯤이면 탐스런 감이 주렁주렁 열렸을 것이다.


  넓은 마당 모퉁이에는 20미터 깊이 우물이 있었다. 날씨가 더우면 이가 시릴 만큼 물이 차고, 추우면 따뜻해 김이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무더울 때면 두레박줄과 또 하나의 밧줄이 매달린다. 냉장고가 없을 때 우물 속이 냉장고 역할을 했다. 우물가에 무성한 토란잎에 보슬비나 이슬은 은구슬이 되어 또르르 구르는 상상을 하니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진다. 내 여동생들은 장독대 항아리 옆 봉숭아꽃을 따 손톱에 올리고 실로 칭칭 묶었다. 장독대 담 위에는 억센 가시 붙은 선인장이 자라고 앙증맞은 채송화가 핀다. 굴뚝을 지나 뒤뜰 돌담에는 심지도 가꾸지도 않은 나팔꽃이 매년 예쁘게 피어났다. 씨가 땅에 떨어져 엄동설한을 이기고 싹을 틔워 새로운 생명이 이어지기를 반복한다. 나팔꽃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나고 자라 꽃이 핀다. 수십 년이 아니라 백 년이 넘었을지 모른다.


  돌담 넘어 뒤쪽 텃밭에는 온갖 채소가 자랐다. 지금은 단감나무 복숭아나무 등 유실수를 심었고 사이사이 산나물을 심어 놓은 것이 그때와 달라진 모습이다. 오늘처럼 비 내리는 날, 엮어 말리는 담뱃잎 사이 처마 밑으로 떨어지는 빗물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그리도 편안했다. 비 내리는 날이면 공치는 날이라고 맘 놓고 쉴 수 있기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비 내리는 날 일이 또 생각난다. 소는 마구간에 가만히 있다가도 몰고 나서기만 하면 일을 저지른다. 뒤뚱뒤뚱 걸어가면서 포장도 안 된 마당에다 실례를 하는데 많이도 싸재 낀다. 양이 많으면 길이가 그만큼 길어진다. 그걸 삽으로 치우려면 이만저만 고생스러운 게 아니다. 비라도 내리면 질퍽거리는 흙과 섞여 난장판이 되는데 그럴 때는 다 씻겨 내려가도록 장대비가 내리기를 기다리게 된다. 그래도 그 소 때문에 많은 농사일을 할 수 있었다. 또 경운기가 나오기 전 우리 집에는 소 수레(소달구지)가 있어 살림살이에 큰 도움이 됐다.


  정지(부엌) 뒷문 옆, 큰방 뒷문은 한여름 내리쬐는 햇볕을 피해 아침밥 먹는 시간부터 낮까지 한나절 동안의 피서지였다. 그늘만 진 것이 아니라 바람이 모여 가장 시원한 곳이었다. 내 아버지께서는 뒷문 안쪽 방에서 목침을 베고 오침을 즐기시곤 했다. 큰방과 작은방 사이에 있는 대청마루는 곡식창고이다. 잔치 때면 음식을 만들어 보관하는 곳이기도 하다. 대청마루 지하는 창고로 썼다. 내 어머니께서 경찰공무원을 지냈던 어떤 이를 6.25 사변 때 숨겨주었던 곳이기도 하다. 공산군이 군화를 신은 체 대청마루에 들어서면 가슴을 쓸어내렸다 한다. 힘주어 걷기만 했어도 바닥 밑이 비어있어 쿵쿵 소리가 울려 발각됐을 텐데, 숨은 사람도 숨겨준 사람도 무사할 수 있었던 것은 신의 도움이 아니었나 싶다.


  별채로 지어진 재래식 화장실 겸 창고 초가지붕 위에 주렁주렁 열렸던 바가지 박과 조랑 박도 생각난다. 나락이나 서숙(조) 말리는 마당에는 참새를 잡으려고 멍석 쪼가리로 덫을 만들어 세웠다. 마루까지 매달은 줄을 당겨 참새를 잡으려 하지만 쉽게 잡지는 못한다. 겨울철이면, 큰방 안쪽 윗목은 고구마 두지가 차지했다. 천장 모서리에는 늘 메주가 대롱대롱 매달렸다. 그 시절의 곰팡이 냄새가 지금은 그리워진다. 작은방 쪽 아궁이 입구에 소 마구간이 있다. 무쇠 솥에는 고구마, 볏짚, 겨를 넣고 쇠죽을 끓여 소를 잘 키워야 봄부터 잘 부릴 수 있다. 지금도 그 자리에 집 뼈대는 그대로이지만 어릴 적 흔적은 찾아볼 수 없어 아쉬울 뿐 추억으로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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