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십여 년이 넘게 오프셋 인쇄와 활판(活版) 인쇄 두 분야에서 일했다. 활판 쪽 이야기를 하려 한다. 활판인쇄란 요즈음 하는 인쇄방식과 달리 낱개로 된 활자를 원고대로 한 자 한 자 뽑아(文選·문선) 레이아웃에 맞추어 판을 짜(組版·조판 또는 植字·식자) 인쇄를 하는 방식이다.
납으로 활자를 만드는 주조(鑄造) 작업부터 문선, 조판, 교정(校訂), 정판(整版)을 거쳐 인쇄, 제본(製本), 재단(裁斷)을 해야 책이 완성된다. 초판 외에 앞으로 또 인쇄를 하려면 인쇄 전 지형(紙型)이나 연판(鉛版)을 제작해 두기도 한다. 윤전기에서 나오는 신문은 제본이나 재단을 따로 할 필요가 없지만 수동식 전지(全紙) 인쇄물은 제본과 재단을 해야 된다.
문선을 하려면 주조된 활자를 문선 대(臺)에 먼저 저장해 둔다. 오자(誤字)가 나오지 않으려면 그 공정에서부터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이 일을 자칫 허드렛일로 생각하고 교육이 제대로 안된 수습공에게 시켰다가는 낭패를 겪게 된다. 비슷하게 생긴 글자를 채워 놓았다가는 큰 사고가 난다. 대통령(大統領)의 큰대(大)자 대신 개견(犬)자를 꽂아놓거나, 대통령 이승만(李承晩)의 이(李)자 대신 계절(季節)에 쓰는 계(季)자를 꽂아두는 경우가 있다. 때로는 명조체와 고딕체 글자가 섞이거나 마침표, 쉼표 등 약물, 기호가 바뀌기도 한다.
물론 다음 공정인 식자, 교정, 정판 과정에서 바로잡을 수도 있지만 그걸 아무도 발견하지 못하고 신문으로 인쇄되거나 책으로 만들어지는 수가 있다. 본문 작은 글씨뿐 아니라 눈에 확 띌 만큼 큰 제목 글자가 오자인 체 인쇄되기도 한다. 사람들이 여러 번 보는데도 신기하리만큼 그대로 넘어간다. 책이 다 된 뒤에는 발견해 봤자 소용없는 일이다.
실제 일간지 신문기사 가운데 그런 경우가 종종 있었다. 즉 대통령이 개통령으로, 이승만이 계승만으로 둔갑한 것이다. 1950년 대구매일신문 1면 머리기사에서 ‘이승만 대통령’을 ‘李承晩 犬統領(개(견)통령)’으로 보도해 주필이 사임하고 사장은 구속되었다 하는데, 1953년 전북 이리에서 발행되던 삼남일보가 똑같은 실수를 저질렀다 한다.
잦은 오보(誤報)로 인해 신문이 폐간(廢刊)을 당하기도 했다. 1950년대 충북 청주에서 발행되던 국민일보가 당시 ‘김성수 부통령의 사표 제출’을 ‘이승만 대통령 사표 제출’로 보도해 신문사 해당 직원들이 고초를 당했다. 그 후 또 ‘대통령을 견통령(개통령)’으로 보도해 편집국장이 구속되었으며, 또 ‘한·일 회담’을 ‘일·한 회담’으로 보도했다가 결국 강제 폐간을 당했다 한다.
그런 일이 잦다 보니, 글자 한 자 한 자이던 자모(字母·납을 부어 활자를 만들기 위한 글자 요형·凹型) 하나에 여러 개의 글자를 붙여 만들었다. 李承晩, 大統領 등 자주 쓰는 글자 셋을 붙여 하나로 만들어 쓰고부터는 그런 실수를 하지 않게 되었다.
활판인쇄 시대가 아닌 첨단의 기술과 장비를 이용한 요즘도 크고 작은 일이 벌어진다. 어느 종합편성 채널 TV 뉴스 프로그램에서 우리나라 대통령과 미국 대통령과의 뉴스를 보도하면서 우리 대통령 앞에 태극기(太極旗) 대신 북한 인공기(人共旗)를 배치했다. 해당 TV사는 정중히 사과를 했지만 "우리나라 대통령이 미·북 대화를 중재하러 방미 길에 오른다는 점을 강조하려 했다"라고 해명했다. 그래서 화면 위엔 한·미 정상 얼굴을, 아래엔 북·미 깃발을 붙였다는 말이다. 이는 단순 ‘실수’가 아니라 ‘의도’적이었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같은 TV사는 그 후 태극기와 성조기를 사용하면서 우리나라 대통령의 얼굴이 빠지고 미국 대통령 얼굴만 나오는 화면을 내보내 또 시청자들로부터 원성을 들었다. 어느 종편채널 뉴스 프로그램에서는 대통령 영부인 ‘김정숙 여사’를 ‘김정은 여사'로 자막에 표기해 방영되기도 했다.
또 종교단체가 운영하는 모 일간지 창간 기념식에서의 설립자 격려사 조작 보도로 한참 시끄러웠다. “남북통일은 ‘하나님 중심’하고 돼야 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진정한 통일한국이 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이 ‘하나님 중심’을 ‘인간 중심’으로 변조 보도했다. 이를 두고 ‘단순한 오기(誤記)가 아니라 전략적이고 의도적으로 조작 보도한 것이 분명하다.”라고 하며. “인간 중심이란 인본주의나 김일성 주체사상이론이 함축돼 있다. 좌경사상의 배경에서 나온, ‘창간이념에 대한 치명적 도발’이다”라고 단정하고 많은 신도들은 사장의 사과와 관련자 문책을 요구한 바 있다.
재난방송 주관사인 KBS가 강원도 산불 뉴스특보 생중계를 하는 자신의 위치가 강원도 고성군이라고 했지만 실제는 현장에서 100km 가까이 떨어진 강릉 KBS 방송국 근처였다고 한다.
이와 같은 오보나 방송사고가 차라리 단순 실수로 인한 오보였으면 좋으련만, 독자나 시청자를 상대한 의도된 여론조작용이 아니기를 바란다. 사실을 날조하여 전달하는 행위를 더 이상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