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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용대 Sep 25. 2020

빵장사 이야기

  출퇴근길 전철역 안과 사거리 빵가게에서 나는 구수한 빵 냄새가 내 머릿속 생각을 되살아나게 한다. 중학생 때 버스종점 빵집에서 철거덕 철거덕 풀빵(붕어빵, 국화빵) 뒤집는 소리와 모락모락 찐빵 김이 유혹하던 것부터 빵장사하던 때를 떠올린다. 2010년 ‘제빵 왕 김탁구’라는 드라마가 인기리에 방영되고 빵장사가 대박을 터뜨릴 때도 그랬다. 나는 여러 해 빵장사를 해본 적이 있다.


  빵은 신석기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만큼 오래전부터 만들어진 음식이다. 이스트를 넣은 부푼 빵은 고대 이집트에서 발견되었다 하나 정확하지 않다. 우리나라는 구한말인 1885년 선교사에 의해 처음 먹게 되었다고 한다. '빵'이란 말은 포르투갈어인 ‘팡’이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와 일본식으로 발음하는 거란다.  


나는 전북 익산 선배가 사장으로 있는 회사에 가게 됐다. 듣기 와는 달리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그런 회사였다. 결국 관리책임자가 아니라 40여 명을 내보내는 회사 정리 책임자가 되었다. 직장을 잃어 본 사람은 그 고통을 안다. 본인과 그 가족 모두에게 큰 상처를 주었다. 그 일은 내 생애에 후회스러운 일이다. 일하던 직장 사정을 알아챈 아내는 후배가 개업한 제과점에 일하러 다녔다. 매장이 아니라 공장에 들어가 빵 만드는 기술을 배웠다. 직장 문을 닫자 1994년, 아내는 5백여 세대 아파트 단지 상가 제과점을 인수해 상호를 ‘밀탑 제과’라 지었다. 여러 가지 일을 해본 나는 팔자에 빵 장사도 있었단 말인가 하며 아내를 도왔다. 빵 만드는 기술자를 고용해야만 한다. 하지만 음식장사는 주방장이 속 썩일 경우가 많다. 예고 없는 결근이나 지각으로 빵이 나와야 하는 시간에 안 나오면 그날 장사는 망친다. 오는 손님을 다른 가게에 뺏기지 않으려면 주인이 기본적인 빵만이라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제과점’이라 하면 신선놀음처럼 보인다. 하나 제과점만큼 힘든 일도 흔치 않다. 새벽 다섯 시에 문을 열어 밤 열두 시에 닫는다. 연중 쉬는 날이 거의 없다. 주말이나 설, 추석 등 남들이 쉬는 때가 더 바쁘다. 명절에 고향에라도 가려면 밤 열두 시에 문을 닫고 출발해야만 한다. 연말연시, 크리스마스 때는 눈코 뜰 새가 없다. 밸런타인데이, 화이트데이, 빼빼로 데이 등 무슨 데이(day)가 그리 많아 거의 매달 행사를 치르기도 한다.   


소규모 영세사업자가 인건비를 아끼려면 주인이 보조 일을 할 수밖에 없다. 특히 식당이나 제과점 등 먹는장사를 하는 곳은  자질구레한 일이 많다. 눈물을 짜며 양파를 까야하고, 도넛 찹쌀도넛 꽈배기 등을 튀겨야 한다. 구워져 나오는 빵 포장하기, 빵틀 닦기, 용기 설거지 등 쉴 새가 없다. 쓰레기도 생각보다 많이 나온다.   


빵은 밀가루, 달걀, 우유, 버터, 이스트, 설탕 등이 주재료다. 빵 종류도 참 많다. 각종 케이크, 단팥빵, 소보로, 크림빵, 바나나 빵, 모닝 빵, 다양한 식빵, 매머드(매머드) 빵, 카스텔라, 피자 빵, 치즈 빵, 쿠키, 파이, 바게트 그리고 햄버거, 샌드위치, 토스트……. 바게트가 딱딱해지면 비스듬히 잘라 으깬 마늘 등을 발라 구운 것이 마늘빵이다. 빵 이름은 재료에 따라 또는 생김새에 따라 짓는다. 단팥빵은 단팥 소를 넣고 동글납작하게 한 뒤 당구공으로 가운데를 꾹 눌러 링 모양이 되게 해서 굽는다. 구워져 나오자마자 기름을 발라 윤이 나면 먹음직스러워 보이고 맛도 좋다.      


  대단하지 않은 사업이지만 기왕 시작했으니만큼 열심을 다했다. 개업행사는 경기도 이천에서 도자기 쟁반을 구해 와 멋지게 치렀다. 연말연시나 개업 기념일이 되면 현수막을 걸고 머그잔을 나눠주며 행사를 한다. 기념일 등 뭐든 건수를 만들어 별나게 장사를 했다. 매장 제품 관리도 상당히 신경을 써야 한다. 회계분야 재고 자산관리 용어로 ‘선입선출(先入先出)’이라는 게 있다. 빵도 가장 먼저 만든 것부터 순차로 팔아야 버리게 되지 않는다.


  우리 제과점은 버스가 들어오지 않는 아파트 단지 입구 택시 종점이다. 입구 밖에 커피 자동판매기가 있다. ‘이 자판기는 최고의 수질을 자랑하는 정수기 물을 사용하므로 맛이 더 좋습니다.’고 써 붙였다. 실제 정수기 물 넣는 것을 보여준다. 청소할 때도 보란 듯이 문을 활짝 열고 닦는다. 택시기사들이 커피를 많이 마신다. 기사들은 맛있다면서 다른 곳에서 마시지 않고 찾아온다. 실제 맛이 좋은지는 잘 모르겠다. 자판기 한 대가 직원 한 명 봉급 정도를 벌어주니 재미가 쏠쏠했다. 날씨가 무더우니 빵 오븐기 앞에서 비 오듯 땀 흘리던 아내 모습이 떠오른다. 힘들어도 열심히 일한 덕에 그런대로 살림살이가 나아졌다.        

 

  1997년 말 IMF를 맞았다. 리어카에 빵을 싣고 빵집 앞에 와서 장사를 한다. 천 원에 두 개짜리를 세 개에 판다. 어떤 재료를 썼는지, 맛이 어떤지는 별 상관없이 우선 싸야만 살 때다. 빵에는 밀가루와 계란, 우유가 많이 쓰인다. 계란의 경우 양계장 또는 유통 시 깨지거나 신선도가 떨어지는 것을 써도 알지 못한다. 유통기간이 지난 우유를 써도 그렇다. 리어카 장사를 당해낼 재간이 없다. 하루라도 빨리 문 닫는 게 돈 버는 것이다. 웃돈까지 주고 시작한 사업 시설을 고철로 처분하고 문을 닫은 아픈 경험을 맛보았다.    


  나는 빵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아내는 참 좋아한다. 십 년 전 다섯 가정 열 명이 유럽여행을 갔다. 나는 2~3일을 지낸 뒤로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힘들었는데 아내는 빵만 먹고도 얼마든지 지낼 수 있다고 할 정도이다.  실업자 신세일 때 나 대신 네 가족을 책임져 준 아내가 고맙다. 아내는 빵 장사하던 때가 아쉬운지 아기자기한 빵틀 몇 개를 지금도 보관 중이며, 을지로 방산시장에서 소형 믹서기를 사다 놓고도 빵 구워 먹기가 쉽지는 않다. 대신 샌드위치나 햄버거는 자주 먹는다.


  사람들은 하던 사업이 안 되거나 직장이 여의치 않으면 “식당이나 한번 해볼까?”, “빵집이나 차려 볼까?”라고 한다. 식당이나 빵장사가 그리 만만하게 생각하고 덤빌 사업이 아닌데 말이다. 장사는 무슨 장사건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다. 경험, 취급품목, 입지조건, 운영 마인드 등 여러 가지이지만, 운(運) 또한 빼놓을 수 없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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