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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용대 Nov 13. 2020

감 따는 날

내가 일하는 아파트 단지 화단에 단감나무와 대봉감나무가 여러 그루 심어져 있다. 십 년이 된 단지다 보니 나무가 크고 탐스런 감이 많이 열린다. 올해도 어김없이 주민들 의견은 두 가지로 갈린다. ‘왜 안 따느냐?’고 하는 의견이 먼저다. 다음은 '보기 좋은데 왜 일찍 따느냐?’이다.  금년에도 십일월 초하루가 되자마자 여성 주민이 찾아왔다. 보기 좋으니 좀 있다가 따자고 설득해 보낸다. 나는 늘 천천히 따자는 편이다.

붉게 익어가는 걸 보노라면 고향집 감나무인 듯 마음이 여유롭고 풍요롭다. 새가 날아와 홍시를 쪼아 먹고 있는 것도 한 볼거리이다. 할 수만 있다면 두고두고 보고 싶다. 새순이 돋고 감꽃이 피었다 지면 열매가 열리고 자라 주렁주렁 달려 빨갛게 익어가는 감을 보면 어릴 적 고향집 사립문 옆 감나무가 떠올라 추억의 향수에 젖어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곤 한다.

이제 담장 밖으로 뻗은 나뭇가지 밑에 홍시가 떨어져 길을 더럽힐 지경에 이르렀으니 오늘은 감을 따야겠다. 경비원, 미화원과 함께 사다리와 장대, 감 담을 박스를 챙겨 감을 따기 시작한다. 어린 시절 긴 대나무 끝을 쪼개 그 틈새에 버팀 가지를 묶어 감 따던 때가 떠오른다. 키가 작아 발뒤꿈치를 꼰지세워 쩔쩔매기도 했다.

중학생 시절 전남 순천 선암사 절로 수학여행 갔던 일도 생각난다. 어둑어둑한 이른 아침 개울가로 세수하러 가는 길이다. 나무 밑에 감 홍시가 늘비하다. 그 크고 단 감 서너 개를 주어 먹고 나니 아침밥을 걸러도 배가 고프지 않다. 그때의 감 맛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이 아파트 단지에서 오 년째 감을 딴다. 첫해는 전체 세대에 두 개씩 나눌 수 있었다. 두 번째 해는 1,2호 라인 세대에, 세 번째 해인 작년에는 3,4호 라인 세대에 나누었다. 이번에는 5,6호 라인 차례다. 1,2호와 3,4호 라인 세대에는 연 이태동안 열 개씩 돌아갔다. 금년 태풍 때 어떤 나무는 가지가 부러지고 열매가 떨어져 감이 없어진 나무가 여럿이다. 바람을 덜 맞은 나무는 내려뜨려진 가지를 치켜올려 굵은 줄로 묶거나 버팀목을 세워야 될 정도로 많이 달려 있다.

사다리에 올라 가 낮은 곳은 손으로, 높은 곳은 길게 매단 매미채나 장대를 사용한다. 장대로 딸 경우 자칫하면 바닥에 떨어진다. 대봉이라 커서 무겁다. 떨어진 감은 영락없이 박살이 난다. 높은데 달려 따다 따다 못 딴 감은 까치밥으로 남겨둔다. 다 따지 않고 까치 따위의 새들이 먹을 수 있도록 남겨 둔 감을 까치밥이라 한다. 까치를 위하는 척 하지만 따지고 보면 남겨 두는 것이 아니라 딸 수가 없어 포기한 것이다. 가끔 이름 모를 작은 새가 찾아 올뿐 까치가 홍시 쪼아 먹는 것은 본 일이 없다. 정녕 까치가 들으면 기분이 떨떠름할 일이다.

감을 다 따서 새어보니 오히려 작년이나 재작년보다 개수가 많다. 무려 열두 개 이상씩 나눌 수 있어 걱정거리가 사라져 다행이다. 작년이나 재작년에 이미 받은 세대에서도 받은 걸 잊었는지 잊은척하는지, 왜 우리는 안 주느냐고 한단다. 내년부터는 번거롭고 개수가 적더라도 전체 세대에 나누어야겠다.

감은 중국 남부가 원산지이고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이 주 생산지이다. 크게 단감과 떫은 감으로 구분되는데 가장 많이 재배되고 있는 단감은 일본에서 도입된 품종이고 우리나라 재래종은 대부분 떫은 감이다.

감은 어떤 형태로 먹어도 맛있다. 단단한 상태의 단감으로 먹거나, 완전히 익은 홍시로 먹는다. 두고두고 말린 곶감으로 먹기도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쪽쪽 빨아먹는 홍시 맛이 최고 이리라. 홍시를 얼려 먹는 것도 별미이다. 요즘은 익은 감을 발효시켜 감식초를 만들어 먹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하고 있다.

감이 사람 몸에 좋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좋은 줄은 미처 몰랐다. 포도당과 과당, 비타민 C와 A, 칼륨과 마그네슘 등이 풍부하여 숙취 해소, 노화방지, 고혈압 예방, 눈 건강 등에 도움이 된다. 혈중 알코올의 상승률을 낮추는 효능도 있다. 또 감 꽃받침은 딸꾹질과 심한 기침이 멈추지 않을 때 특히 효과가 있다. 심한 트림, 복통, 구토, 위통, 위장출혈과 백일해 치료에 유효하다. 잎은 기침에 유효하고, 곶감은 토혈, 이질에 사용한다. 떫은맛을 내는 감을 많이 먹으면 변비를 일으키기도 한다니 조심해야 될 일이다.

항아리에 넣어 둔 단단한 대봉 감이 홍시 될 날을 기다려야겠다.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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