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 헤르만 헤세 <싯다르타>
이렇게 미친 듯이 줄 쳐가며 읽은 책이 있나 싶다. 지우가 추천해준 인생 책이자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까지도 칭찬을 아끼지 않는 싯다르타. 지와 사랑도 그렇고 특히 이 책에서는 헤르만 헤세의 인생에 대한 통찰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새삼 느낀다. 나도 그렇게 나이가 들어간다면 좋으련만,,,
누구든 한 번쯤은 이 책을 읽었으면 싶다. 지금이 아니라도 좋다. 나이가 조금 더 들어서 혹은 아주 나이가 들어서도 괜찮다. 지와 사랑과의 차이라고 한다면 젊은 시절의 고민이 많이 느껴졌던 지와 사랑과 달리 싯다르타가 좀 더 인생을 통째로 관통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책의 내용이 너무 좋아 나의 말발로는 감당할 수 없기에 이번에는 인용을 좀 해야겠다. 다만 한 가지 밝힐 것은 이 글은 종교적인 글이 아니며 책의 내용상 그렇게 느껴질 수밖에 없음을 밝힌다.
<사색>
요즘 말로 자아성찰이라고 하면 가장 비슷하려나. 싯다르타에게 묻는다. “자네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싯다르타는 대답한다 “나는 사색을 할 줄 아오. 나는 기다릴 줄을 아오. 나는 단식을 할 줄 아오.”
흔히들 철학을 왜 좋아하냐고 읽으면 뭐가 달라지냐고 묻는데 그에 대한 마땅한 답을 찾을 수 없었는데 가장 와 닿는 구절을 찾은 것 같다. 겉으로 바뀌는 것은 하나도 없고 실제 써먹으려면 한참 돌고 돌아 오래 걸릴지도 모른다. [진짜 상인도 아니고 결코 진짜 상인이 되지도 않을 거야. 그의 영혼이 정열적으로 사업에 몰두한 적이 한 번도 없거든. 그러나, 그가 좋은 별자리를 타고 태어나서인지, 마술을 부려서인지, 사문들한테 그 무엇인가를 배워서인지는 몰라도, 아무튼 그는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성공하는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 지니는 비밀을 지니고 있어.]
그렇단다. 정말 그렇다. 모든 일의 근간이 되고 시작이다. 시작이 불안하면 끝을 볼 수 없다. 단단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아주 견고해져서 몰락해서 떨어지더라도 부서지지 않고 다시 올라올 수 있게.
사실 거의 모든 철학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떠오르는 키워드는 자만과 고독이다. 지혜로운 자는 외롭다 고독하다. 영화 <월터 교수의 마지막 강의>에서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눈물을 흘리며 “I’m so fucking lonely”라더라. 지혜로운 자는 자질구레한 일들에 목숨 거는 사람들을 보며 애처로움을 느끼고 그들을 이해하기보단 경멸한다. 그러고는 그들의 작고 소중한 귀여운 모습을 사랑한다. 나는 경멸과 사랑 그 중간 어디쯤 있는 듯하다. 싯다르타는 그들 속으로 처절하게 내려간다. 내려가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고뇌, 고독의 고통에서 벗어나 그들처럼 아이 같은 모습으로 살고자 하는 욕구가 고독한 사람들에게는 항상 존재한다.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고 살면 편하다고. 또 다른 이유는 그들을 미워할 수가 없기 때문. 그들을 경멸할지언정 사랑한다. 그리고 그렇게 작은 일에도 열정을 불태우며 사랑할 수 있는 그 따뜻함과 그들이 사랑할 수 있음을 알기 때문에. 그 속에서 그들을 경멸함과 동시에 닮아가기 시작하고 결국에는 완전히 동화된다. 하지만 사색할 줄 아는 사람의 힘은 그 속에서 자신을 잃어가지 않는다. 다만 그러고 있는 나를 끊임없이 경멸하며 마침 극에 달했을 때 다시 뚫고 올라올 힘이 있다.
<단일성?>
시간이란 건 존재하지 않는다. 사실 정말 그렇지 않나. 어느 순간 옛사람들이 정해 놓은 걸 그냥 따르고 있을 뿐 아닌가. 이러한 맥락에서 과거 현재 미래의 경계가 없으며 삶과 죽음도 동시에 존재한다고 한다. 양자역학에서의 다중우주론과 비슷할지도.
가르침은 말로 전해질 수 없다. 지식은 말이고 지혜는 말이 될 수 없다. 아무리 말로 해도, 사실 그것을 다 말로 하는 것도 불가능하지만, 느끼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아마 죽을 때까지. 그것이 책을 읽고도 내가 삶의 동시성을 아직 이해할 수 없는 이유이며 싯다르타가 부처의 가르침을 듣고도 길을 떠난 이유이다. 부처도 그의 가르침을 말로 전파할 수 없는 것을 알지만 달리 어찌 전할 방법이 없어 그렇게나마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일 뿐. 그렇기 때문에 부처는 말 대신 손짓으로 뜻을 전하는 것 아니겠는가. 이를 두고 누군가는 지식의 한계와 지혜의 무한성이라고 표현하던데 매우 적절하지 싶다.
사실 나도 헤르만 헤세가 말하는 단일성이라는 것을 아직까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누군가 안다고 하더라도 나에게 알려줄 수도 없다는 것도 알고 있으며 다만 언젠가는 나도 느끼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