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능 스포츠맨의 꿈

by Sun

“자, 어깨에 힘을 빼고, 등근육으로 움직여 볼게요”

“…”

“어깨에 힘 빼세요”

“… 그건 어떻게 하는 건가요?”


재작년 처음으로 PT를 끊어 운동을 시작했을 때 일이다. 트레이너분이 아주 자세히 설명해 주셨지만 몸은 내 말을 듣지 않았다. 뇌에서 근육까지 중간중간 길이 끊어진 것도 아닐 텐데, 몸 어딘가의 근육을 어떻게 내 맘대로 움직일 수 있는지 방법을 몰랐다. 마치 혓바닥을 뒤집거나 귀를 마음대로 움직이는 것처럼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건 아닐까 생각했다.


생각해보면 어릴 때부터 그랬다. 체력장에서 윗몸일으키기를 하는데 발을 고정해도 하나 올라오기가 힘들었다. 턱걸이도 초시계를 시작하기도 전에 떨어졌다. 100m 달리기, 오래 달리기도, 멀리뛰기도 다 가장 늦은 편에 속했다. 몸이 약하진 않았는데 몸을 쓰는 방법을 몰랐던 것 같다. 그리고 따로 운동을 챙겨하지 않았으니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몸을 잘 쓰는 사람들을 늘 동경했다. 운동선수들은 물론이고, 달리기를 잘하는 친구, 줄넘기 2단 뛰기를 너무나도 쉽게 척척 해내던 친구, 배드민턴을 치던 할아버지, 축지법을 쓰듯 산을 오르던 큰아빠, 춤을 잘 추는 친구, 꾸준히 골프를 치는 아빠 모두 대단해 보였다.


고등학교, 대학에 가면서 조금씩 운동을 해보려 시도했다. 중국 대학교에는 졸업을 위해 각종 체육 수업을 4학점 이상 이수해야 했다. 그중 필수과목으로 태극권(남학생)과 에어로빅(여학생)이 있었다. 그 외에도 테니스, 펜싱 등을 들었다.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새로운 운동을 배우는 일은 즐거웠다. 테니스는 포핸드, 백핸드를 막론하고 헛스윙을 해댔지만, 가끔 스윗스팟에 공이 맞아 뻗어 나가면 그 순간만큼은 내가 테니스 선수가 된 것 같았다. 펜싱 선생님은 오래전 중국 국가대표를 하신 분이셨는데, 펜싱의 여러 종류를 모두 알려주시고 연습도 해보게 해 주셨다. 테니스와 펜싱 수업을 들으며 모든 운동을 다 잘하는 만능 스포츠맨이 되고 싶었다.




학생 신분에서 벗어난 이후로 시간을 만들어 운동을 하지 않으면 숨쉬기와 출퇴근 길 걷기 외에는 운동을 할 일이 없다. 다행히 이곳에서 만난 친구들 덕분에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되었다. 바로 요가, 하이킹과 마라톤!


흔히 떠올리는 빽빽한 빌딩 숲의 홍콩의 모습과 달리 홍콩에는 하이킹을 할 수 있는 산이 정말 많다. 30분에서 한 시간 정도 가볍게 올라가 홍콩의 야경을 내려다볼 수 있는 빅토리아 피크 하이킹부터 하루 종일 산봉우리를 오르내리는 코스까지 아주 다양하다. 홍콩 정부 웹사이트에는 이런 내용이 모두 잘 정리되어 코스를 골라 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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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킹 코스의 종류부터 난이도, 거리, 위치까지 정리되어 있고, 각 코스별 지도와 간략한 설명까지 포함되어 있다.

처음에 친구들이 하이킹을 가자고 했을 때는 내가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때까지 등산은 조금 더 전문적인 산악 동아리라던지 모임에서나 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친구들을 따라 몇 번 하이킹을 다녀온 후 생각이 바뀌었다. 멋진 경치를 찾아 산을 오르고, 또 자연 속을 누비고 다니며 소, 멧돼지, 원숭이 같은 야생 동물들을 보는 것도 새롭고 즐거웠다. 처음에는 두 시간짜리 코스도 너무 힘들었지만, 점점 세네 시간짜리 코스도 거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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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경치가 내려다 보이는 코스 | 초록색 계란후라이(!) 녹단도(綠蛋島)


물론 늘 예상대로만 흘러가지는 않았다. 블로그에서 발견한 새로운 코스는 네 시간 정도 예상으로 시작했지만 수풀에 가려져 제대로 길이 보이지 않고, 길이 험해 일곱 시간이 넘게 걸렸다. 마지막엔 거의 해가 져서 어두운 길에 야생 멧돼지 소리를 들으며 하나 남은 초콜릿 바를 나눠 먹으며 걸었다. 그런 경험도 하이킹의 즐거움으로 남았다.


하이킹 경력 8년 차, 이제 본격적인 하이킹 시즌이 되면 친구들과 함께 새로운 코스를 찾아다닌다.




동료들 덕분에 새롭게 시도해 본 운동 중에 마라톤이 있다. 달리기는 버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나 하는 것이었는데, 동료들과 함께 유니세프 마라톤에 참가하기 위해 운동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물론 풀코스나 하프 마라톤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10km 마라톤을 신청해두고 퇴근 후 동료들과 함께 달리기 시작했다. 홍콩섬 북쪽 하버를 따라 달리거나 산 중턱에 있는 산책로에서 5~8km 정도를 함께 달렸다. 처음에는 1km도 채 달리지 못해 뛰다 걷다 반복했지만 점점 쉬지 않고 뛸 수 있는 거리가 늘어났다.


참가 첫 해에는 9km를 달리고 나머지 1km를 걷는 바람에 총 1시간 17분 정도가 걸렸다. 두 번째 해에는 1시간 3분! 나에게는 너무나 대단한(!) 기록이다.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지 않더라도 동료들과 종종 점심시간, 혹은 퇴근 후에 같이 3-5km 내외의 조깅을 한다.




요즘 제일 열심히 하는 운동은 요가와 골프다.


한국에서는 작년부터 골프가 유행했다고 들었다. 나는 고작 두 달 전부터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대학시절부터 엄마가 골프를 배우라고 이야기를 여러 번 하셨다. 그때는 골프가 제자리에 서서 팔만 휘두르는, 운동이라고 부르기 힘든 것이라고 생각했고, 재미도 없어 보였다. 코로나로 여행도 갈 수 없고, 할 수 있는 일들이 제한적이라 생긴 시간적, 경제적 여유를 골프에 투자해보기로 했다. 언젠가 다시 여행을 할 수 있게 되면 부모님, 친구들과 골프 여행도 다닐 수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아니 그런데, 생각보다 너무 재미있었다. 내가 생각한 대로 몸이 움직이지 않고, 공이 가지 않지만 그래도 조금씩 달라지는 느낌을 즐기고 있다.


골프는 경력이 오래될수록 더 잘 치고 싶은 마음이 강해진다고 들었는데, 고작 배우기 시작한 지 두 달 된 내가 그 마음을 이해할 것만 같다. 여전히 내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아 고장 난 로봇처럼 느껴진다. 그래도 조급해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해보려고 한다. 내 꿈은 프로 골프선수가 되는 게 아니라 가족, 친구들과 칠 수 있을 정도로 하는 것이니.


가끔은 너무 큰 꿈이 내 삶의 즐거움을 빼앗아갈 때가 있다. 내가 마라톤을 풀코스로 완주하지 않는다고 해서, 혹은 프로 골퍼가 되지 않는다고 해서 실패한 것이 아님을 기억하자. 중요한 것은 그 과정을 즐기는 것, 그리고 나는 계속 발전하고 있다는 거다. 조금씩 즐거운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작은 꿈이 소소하게 이루지고 있는 걸 발견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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