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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 Jan 18. 2022

아몬드

책 읽기 프로젝트 50 #2

아몬드 by 손원평 (창비, 2017)


텅 빈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소년, 그리고 그 뜻을 알 수 없는 제목 때문일까. 서점 앱에서 늘 상위권에 있었지만 선뜻 책에 손이 가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이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책은 한 단어를 설명하며 흥미롭게 시작한다.


알렉시티미아(Alexithymia)는 감정을 느끼는데 문제가 있는 것을 두루 표현하는 말로, 그리스어에서 감정을 표현할 말이 없음(No words for emotions)을 뜻하는 단어에서 유래했다.(1) 뇌에서 아몬드처럼 생긴 부위인 편도체가 작을 경우 감정을 느끼거나 표현하는데 문제가 생긴다. 주인공 윤재의 ‘아몬드’는 아주 작았고, 감정표현 불능증을 앓았다. 특히 공포와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고, 사람들은 그런 윤재에게서 되려 공포와 두려움을 느꼈다. 엄마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느끼는 감정과 그런 상황에 해야 할 적절한 말을 윤재에게 가르쳐주었다. 윤재는 보통사람은 견디기 힘들 정도의 고통을 겪고도 평소와 다름없이 살아간다. 윤재는 사람들 사이에서 눈에 띄지 않고 섞여 들기 위해 주로 침묵했다. 주변에서는 그를 용감하다고 생각했고, 또 때로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실은 공포와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것은 용감한 것이 아니라 생존 본능에 반하는 일이다. 윤재는 살기 위해 남들과 다르다는 걸 들키지 않아야 했다. 어느 날, 곤이를 만난다. 자신과 정반대인 곤이를 보며 윤재는 감정에 대해 조금 더 알아가기를 바랐다. 일련의 사건을 겪은 윤재가 여러 사람을 만나며 조금씩 변해간다.


너무 감정이 요동쳐서 힘들고 괴로울 때, 감정을 느낄 수 없다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쯤 있을 것이다. 순간의 고통을 피하기 위해서. 하지만 윤재를 보며 감정을 느낄 수 없는 상태의 답답함과 괴로움을 독자가 대신 느낄 수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느낀(다고 생각하는) 감정들을 윤재는 사전을 찾아가며 이해하려 노력해본다. 이런 주인공의 노력은 사람들이 말하는 그 감정들을 우리가 정말 느끼고 있는지, 우리가 그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하는 단어가 정말 우리가 느끼는 것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가끔은 우리가 어림짐작으로 쓰는 감정을 표현하는 단어들이 주인공에게는 너무나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내가 이해하는 한 사랑이라는 건, 어떤 극한의 개념이었다. 규정할 수 없는 무언가를 간신히 단어 안에 가둬 놓은 것. 그런데 그 단어가 너무 자주 쓰이고 있었다. 그저 기분이 좀 좋다거나 고맙다는 뜻으로 아무렇지 않게들 사랑을 입밖에 냈다.


우리가 사랑이라고 표현할 때 정말 감각적으로 느끼는 것은 어떤 것일까. 체온과 맥박이 올라가고,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는 것. 아니면 엘리베이터가 멈춰있다 갑자기 내려갈 때처럼 뱃속에 뭔가가 철렁하는 느낌. 그것도 아니면 가슴에 돌덩이가 내려앉는 유쾌하지 않은 기분일까. 사람마다 다 느끼는 방식이 다른데 누군가, 혹은 무언가를 향해 그런 감정을 느낄 때, 우리는 ‘사랑’이라고 표현하기로 약속한 것이다. 하지만 그 단어는 항상 같은 뜻이나 의도로 사용되지 않는다.


어쩌면 언어를 이해하는 건 상대의 표정이나 감정을 알아채는 것과 비슷한지도 몰랐다. 편도체가 작으면 대게 지능이 떨어진다고 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기본적인 맥락을 이해하기 어려우니 추리력도 떨어지고 지능도 낮아진다는 거다.


상대의 감정뿐만 아니라 나의 감정도 마찬가지다. 나의 감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내가 느끼는 것들을 관찰하고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언어로 내 기분을, 느낌을 정리해나가는 것이 내 감정을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손원평 작가는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영화 연출을 전공했고, 영화평론가로 데뷔한 뒤 단편영화도 연출했다. 2017년, <아몬드>로 창비청소년문학상을 받으며 소설가로 등단했다. 그래서인지 소설 속 장면들이 영화처럼 눈앞에 펼쳐지기도 했다. 책은 윤재의 시선을 따라가며 빠르고 쉽게 읽힌다.


책이 가볍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내가 윤재였다면 느꼈을 감정을 곱씹으며 읽으면 조금 더 다르게 다가올지도 모른다. 국어사전에서 어떤 감정의 정의를 찾아보는 윤재처럼, 내 감정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어졌다.


나는 부딪혀 보기로 했다. 언제나 그랬듯 삶이 내게 오는 만큼. 그리고 내가 느낄 수 있는 딱 그만큼을.


(1) https://www.healthline.com/health/autism/alexithym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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