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수리해 드립니다

주말에는 비영리단체 직원

by Sun

중학생 때 한비야 씨의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이라는 책을 읽었다. 와, 여자 혼자 세계여행이라니. 그것도 배낭을 메고! 그렇게 저자의 팬이 되었다. (그 당시에는 책이나 저자에 대한 논란에 대해 잘 알지 못했으니 그 부분은 잠시 넣어두도록 하겠다) 세계일주는 얼마나 멋진 이야기인가. 바람의 딸 시리즈 속에 여러 에피소드들을 읽으며 지도를 찾아보기도 하고, 또 내 나름의 루트를 그려보기도 했다. 지금도 세계일주를 꿈꾸는 사람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을 것이다. 그 꿈은 지금 잠시 접어두고……




시간이 더 지나 고등학교 때 같은 저자의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그러면서 NGO에 대해서, 국제 긴급구호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알게 되었고, 나도 그런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유니세프, 월드비전, 세이브 더 칠드런 같은 전 세계 어린이 구호활동을 하는 단체에 대한 이야기도 미디어를 통해 더 많이 접하게 되었던 시기였기도 했다. 대학에 입학하면서 월드비전에 적은 금액이지만 후원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해외 후원 아동의 사진을 우편으로 받고 설레었던 기억이 선명하다. 후원 아동이 성인이 되면 다시 다른 나라 혹은 지역의 아동과 연계를 맺어준다. 지금 나와 연계된 아이는 콩고 민주공화국에 살고 있다.


책을 읽고 시작된 관심이었지만 대학 졸업 시기가 다가오면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그 시기는 정말 혼란스러웠다. 한 때 꿈꿨던 국제 구호단체 혹은 다른 NGO에 지원해볼까, 아니면 석사를 지원해 공부를 조금 더 해볼까, 그것도 아니면 일반 기업에 취업을 해야 하나. 명확한 목표도, 대단한 능력도 없던 내게는 너무 어려운 선택이었다.


졸업논문 지도교수님께도 잠깐 상담을 받았을 때 교수님은 세상을 바꾸는 세 가지 그룹에 대해 이야기하셨다. 첫 번째는 기업가. 일자리를 창출하고 또 큰 기업이 되면 이해관계에 따라 한 국가의 법안이나 국제단체의 규칙 등을 바꿀 수도 있다. 둘째는 정치가. 정치가는 새로운 법안을 내놓거나 기존 법안을 변경하는 방식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 마지막은 비영리단체. 소외된 사람들, 국가나 사회 복지 시스템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는 사람들을 돕는 이 단체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마지막 그룹이라고 했다. 세상을 바꿀 수 있다니 얼마나 멋진 이야기인가.


그즈음 현대자동차와 해비타트 Habitat for Humanity에서 함께 주관하는 한중 대학생 교류 중국 지역봉사, 해피무브에 참여하게 되었다. 처음으로 중국 대학생과 한국에서 오는 봉사팀이 함께 봉사활동을 가게 되는 프로그램이라 베이징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던 나와 동기들이 함께 통역으로 광저우로 가게 되었다. 해비타트는 "모든 사람에게 안락한 집이 있는 세상 A world where everyone has a decent place to live"이라는 비전을 가지고 집을 짓거나 수리하는 활동을 하는 단체다. 광저우 교외지역에 있는 마을에 흙으로 지어져 비가 내리는 여름이 되면 무너질 위험이 있는 집들 대신 벽돌집을 만드는 프로젝트였는데 봉사단은 일주일간 지역에 머물며 집을 지었다. 물론 일주일 만에 완성할 수 없기에 해비타트 측을 통해 장기간 여러 봉사 단체가 오는 형태였다. 처음으로 맛보는 "육체적 노동"이었다. 하루 종일 땀을 흘리며 시멘트와 모래를 섞어 "공구리"를 치고 벽돌을 나르고 또 쌓고. 숙소로 돌아오면 씻고 밥을 먹고 나면 한중 대학생이 함께 장기자랑 준비를 했다. 이 기간에는 몸이 힘들어 다른 고민을 할 여유가 없었다. 그러면서 나의 이 일주일 간의 짧은 노동이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에 정말 보람을 느꼈다.


해비타트 홍콩팀과 함께 광저우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대학원을 거쳐 일반 회사를 다니는 직장인이 되었다. 하지만 해비타트와 함께 한 일주일의 경험은 나에게 새로운 꿈을 만들어 주었다. 내가 누군가를 도와줄 수 있는 능력을 만들어 언젠가 돌아오겠다는 그런 꿈 말이다. 내가 의미 있는 일을 한다는 느낌, 내 존재의 이유가 생기는 느낌은 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멋진 말로 포장했지만 결국에는 이기적인 이유로 나는 이 꿈을 꾸기 시작했던 것이다. 직장인이 되고 첫 휴가를 해비타트에 쓰기로 했다. 처음 해비타트 활동을 다녀오고 3년이 지난 후 나는 다시 광저우에 갔다. 다른 마을이었지만 여전히 비슷한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었다. 이번에는 홍콩에서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과 함께였다. 3박 4일의 비교적 짧은 기간이었지만 여전히 고되고 그만큼 보람찬 여정이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해비타트와 연계해 진행하는 프로그램들이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해비타트는 "모든 사람에게 안락한 집이 있는 세상"을 비전으로 삼고 있는데, 홍콩에서는 집을 새로 지을 수 있는 공간은 거의 없다. 그래서 해비타트 홍콩은 집을 새로 짓는 대신 노후된 공공주택 내부를 수리해준다. 대부분 정부 지원금 이외에 수입이 없는 어르신을 대상으로 집 내부 페인트 칠을 다시 하고 청소를 하는 정도이다. 어르신이 아니라도 각 지역 복지단체와 연계해 혜택 대상을 고르기도 한다.


해비타트는 거의 매주 해당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고, 내가 다니는 회사에서는 분기에 한 번 정도 20-25명 정도 자원하는 직원들을 참가시킨다. 나와 봉사활동에 자주 참여하는 몇 동료들은 이제 반 전문가가 되었다. 우리의 “작업복”을 챙겨 입고,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천장에 페인트를 벗겨내고 다시 프라이머, 페인트를 칠한다. 그리고 화장실, 주방 등 어르신들의 손이 닫기 힘든 곳을 깨끗하게 청소한다. 새롭게 페인트칠을 한 천정과 깨끗하게 청소한 집을 보고 즐거워하시는 어르신들을 보면 주말을 의미 있게 보낸 것 같아 뿌듯해진다. 오랜 시간 여러 번 참여하다 보니 이제 자연스럽게 마스크와 수술모를 챙겨간다. 한 동료는 이제 조그만 청소기와 청소 및 소독용품을 챙겨 오기도 한다.


오래된 페인트를 긁어내고 다시 깨끗하게 칠한다


지금은 코로나로 이렇게 집을 수리하는 프로그램은 거의 없지만 그 이외에도 주말마다 참여할 수 있는 봉사활동이 많다. 그래서 주중에는 회사원으로, 주말에는 가끔 NGO 직원이 되어 여러 활동에 참가하고 있다. 비록 용기가 없어 풀타임 NGO 직원이 되지는 못했지만 조금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함께 노력 중이다. 나의 큰 꿈을 소소하게 이루어 가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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