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 식물 키우기
아보카도. 처음 이 과일에 대해 알게 된 것은 <미스터 초밥왕>이라는 만화책을 보고 나서였다. 그 만화에서 나온 캘리포니아 롤을 처음 먹어본 것은 아마도 고등학생 때였던 것 같다. 신기한 맛의 과일이라고 생각했다. 본격적으로 내가 아보카도를 직접 요리해 먹기 시작한 것은 홍콩에 오면서부터였다. 잘 익은 아보카도를 반으로 가르면 연두색의 크리미한 과육이 짠하고 나타난다. 가운데 있는 큰 씨는 칼날을 톡 하고 꽂아 돌리면 쉽게 빠진다. 칼집을 내어 숟가락으로 긁어내고, 소금, 후추, 레몬즙을 약간 뿌려 잘 섞어준다. 약간 으깨어도 좋다. 그리고 따뜻한 토스트 위에 올려 먹으면 완벽한 아보카도 토스트가 된다. 또 가끔은 과카몰리를 만들어 나초 과자에 얹어 먹기도 한다.
회사 팬트리에서도 아침에는 아보카도를 제공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가끔 아보카도 씨앗을 키우는 동료들을 본 적이 있다. 나는 식물을 키우기만 하면 죄다 죽어나가서 식물을 키우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홍콩에 코로나가 다시 심각해지던 지난 12월, 친한 친구들과의 채팅방에 C가 사진을 하나 올렸다. 작은 유리병 위에 올려진 뽀얀 아보카도 씨앗을 반으로 가르고 물속으로 돌진하는 하얀 뿌리의 모습이었다. 아보카도 씨앗을 틔웠다고 했다. 아보카도를 반으로 갈랐을 때 보았던 씨앗만큼 색이 어둡지도 않고 매끈하지도 않았지만 그 모양으로 아보카도 씨앗인 것을 알 수 있었다.
오랫동안 만나지는 못했지만, 워들(Wordle)이 유행하기 시작한 이후로 우리는 매일 아침 각자의 게임 결과를 채팅방에 공유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보카도에 대해 잊어가던 3월 초, C가 초록초록 한 잎이 주렁주렁 달린 아보카도 나무 사진을 공유했다. 세 달 여 만에 이렇게나 자라다니! 며칠 뒤, L이 키우기 시작한 아보카도 씨앗 사진과 이미 키운 지 한참 된 길쭉한 아보카도 나무 사진을 공유했다. 그러자 교외에 사는 D는 자신의 마당 화분에 옮겨 심은 아보카도 나무--이건 진짜 큰 나무였다--사진을 보내주었다. 아니, 이 사람들 언제 이렇게 아보카도를 열심히 키운 거야?! 나만 없어 아보카도 나무.
나만 뒤쳐질 수 없다! FOMO(Fear of Missing Out)의 느낌을 가득 풍기며 아보카도를 하나 사 왔다. 마음이 급해 덜 익은 아보카도를 반으로 갈랐다. 칼이 너무 잘 들어서 그런지 갈색의 겉껍질도 함께 잘려 떨어져 나왔다. 그 속에는 C의 사진에서 본 뽀얀 아보카도 씨앗이 들어있었다. 사실 이 큰 덩어리가 어떻게 싹을 틔울지 몰라 열심히 검색을 했다. 실패담이 많이 나왔다. 그중 눈에 띈 미국 아저씨의 조언에 따르기로 했다.
우선 겉껍질이 벗겨진 씨앗을 젖은 키친타월로 감싸 지퍼백에 넣는다. 땅 속에 있는 것처럼 촉촉한 환경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리고 따뜻한 곳에 두라고 했다. 전 세계 아보카도의 1/3이 멕시코에서 오는 것을 생각해보면 당연한 말이다. 마침 홍콩의 기온이 뚝 떨어져(봐야 15도 전후였지만) 혹시 아보카도가 싹을 틔우지 않을까 봐 걱정했다. 지퍼백을 햇볕이 잘 드는 곳에 두었다가, 밤이 되면 창틀보다 조금 따뜻한 곳을 찾아 옮겨 주었다. 며칠에 한 번은 키친타월을 바꿔 주었다. 며칠 지나지 않아 아보카도 씨앗이 갈라지기 시작한 것을 보았다. 그 속에서 더 작은 씨앗 모양의 무엇인가가 보였다. 일주일 정도 지난 후, 아기 첫니가 나듯 하얀 뿌리가 빼꼼하고 나온 것을 보았다. 이렇게 빨리 나오다니!
아직 상표와 성분표가 덕지덕지 붙은 요거트 유리병을 깨끗하게 씻고 미지근한 물을 담았다. 아보카도 씨앗이 빠지지 않도록 이쑤시개 3개를 씨앗 바깥쪽으로 꽂고 물이 가득 찬 유리병 위에 올려두었다. 초등학교 때 방울토마토를 키우며 관찰일지를 썼던 후로 싹을 틔워서 무언가를 키우는 것은 처음이다. 언제쯤 되면 파란 잎이 날까 기다려진다. 꼭 초등학생으로 돌아간 것처럼.
*대문 이미지: Photo by Estúdio Bloom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