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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 Jul 04. 2022

친절한 발걸음

인정(人情) 행진 Kindness Walk

몇 주간 이어지던 비가 드디어 멈췄다. 사무실에서 바라보는 파란 하늘과 뜨거운 햇살이 근사하다. 금요일이지만 오늘은 더 바쁘다. 미팅도 여러 개가 잡혀 있었고, 참가하기로 한 봉사활동에 늦지 않기 위해서는 일을 빨리 끝내야 했다. 약속 시간이 다가와 미쳐 마지막 이메일을 다 보내지 못하고 급히 회사 티셔츠로 갈아입은 후 사무실을 나섰다.


사내 봉사활동 포털에서 본 설명에 따르면 오늘은 임팩트HK(ImpactHK)이라는 단체와 노숙자들에게 음식을 나누어주는 일을 한다고 했다. 이렇게 음식을 나누어주며 걷는 일을 Kindness Walk라고 칭하겠거니 짐작했다. 마침 예전에 다른 단체와 함께 가본 적이 있는, 노숙자들로 유명한 공원으로 간다. 회사에서 나와 NGO 사무실로 가는 길, 체감 온도가 족히 35도 정도는 될 것 같은 뙤약볕 아래를 걸으니 시원한 사무실이 그리웠다.


홍콩에 있는 많은 봉사단체 사무실이 그러하듯, Impact HK도 공업용 빌딩에 자리하고 있었다. 25명은 거뜬히 들어갈 엘리베이터에 몸을 싣고 사무실로 들어갔다. 사무실에는 먼저 도착한 동료들이 탁구대 주변에 간이 의자를 두고 앉아있었다. 봉사단체 대표로 보이는 사람이 "#KindnessMatters"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고 앉아있었다. 우리가 도착하자 그는 곧 ImpactHK와 그가 하는 일, 그리고 오늘 우리가 할 일에 관해 설명했다.


출처: ImpactHK 홈페이지


대표 J는 한 번도 노숙자(Homeless)라고 그들을 지칭하지 않았다. J는 오늘 만날 사람들을 그의 친구(friend)라거나 집이 없는 상태를 겪고 있는 사람들 (people experiencing homelessness)라고 말했다. (이 글에서는 편의를 위해 노숙인이라 서술한다) 노숙인들은 그들을 혐오하거나 기피하는 사회적 시선을 모두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고 했다. 보통 사람들은 노숙인들은 게으르거나, 책임감이 없거나, 노력하지 않아서 길거리에 앉아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보다 더 복잡하다.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은 없지만, 개개인이 받아들일 수 있는 아픔과 고통, 실망과 좌절은 모두 다른 법이다.


공원으로 나가기 전 J는 그가 만난 한 친구 K에 관해 이야기를 했다. K는 ImpactHK 사무실 공원 근처 작은 벤치에 있는 노숙인이다. 그는 언제나 거기에 있다. 낮이나 밤이나 춥거나 덥거나 언제나. K 주변에는 늘 쓰레기가 쌓여있고, 지나는 사람들은 늘 그에게 혐오와 공포의 눈빛을 보낸다. J는 그와 친구가 되었고, 그와 함께 거리에서 잠을 자 본 적도 있다. J는 채 2시간도 자지 못했고, 이 경험을 통해 노숙이 (당연히) 쉽거나 편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어느 날 K는 그의 과거를 들려준다. K는 어느 대학에서 십수 년간 중국 문학을 가르치는 교수였다. 안정적인 수입과 존경받는 직업, 그리고 사랑하는 부인과 아들이 있었다. 어느 날 8살 난 아들이 하늘로 갔다. K의 잘못이 아니었지만, 여느 부모가 그러하듯, 그는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무언가를 다르게 했다면 아들이 여전히 여기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들이 없는 삶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자신을 혐오하기 시작했다.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그렇게 길거리에서 살아가게 되었다. 공원 멀찍한 곳에서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나와 노는 모습을 보면 아들을 생각한다. 그에게 그의 삶은 더는 의미가 없다. 더 이상 자신을 돌보기를 포기했다.


J는 그런 K의 밤을 하루 경험해보았다. 하늘이 뻥 뚫린 길거리 벤치에서 하루를 보내는 것은 쉽지 않았다. 겨우 두 시간 남짓밖에 잘 수 없었다. J는 두 시간 봉사활동을 하러 온 우리에게 말했다. 노숙인들은 길거리 생활이 더 쉽기 때문에 선택한 것이 아니라고, 그만큼 자기 삶이 고통 속에 있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이다. 물론 이것이 모든 이들에게 적용되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세상을 판단할 수 없다.


우리는 홍콩 남청역 근처에 있는 공원으로 갔다. 홍콩에서 노숙인들이 가장 많이 살기로 유명한 공원이고, 상대적으로 조금 더 "빡센" 곳이라고 했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공격적이라거나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이곳에서는 노숙인의 마지막을 더 많이 보기 때문이다. 특히 밤에 가면 싸구려 마약을 하는 모습이나, 죽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했다. 곳곳에 있는 노숙인들의 쉼터에는 한계가 있다. 정부의 지원을 받는 쉼터는 약을 한 노숙인들은 받아주지 않는다. 정부에서 직접 운영하는 곳은 폭염, 태풍, 한파가 있을 때만 한시적으로 열고, 나머지 시간에는 늘 문을 잠가둔다. 홍콩 정부는 공원에 있던 정자나 햇볕이나 비가림막이 있던 공간에서 지붕을 떼어가거나 출입 금지 표시를 세워뒀다. 비를 피해 잠을 자던 노숙인들이 더는 비를 피할 수 없게 만들기 위해서다. 고가도로나 육교 아래의 공간에도 철망을 세워 사람들이 들어갈 수 없게 만들었다. J는 그저 땅을 지키기 위해 그런 철망을 세웠다는 것에 대해 분노했다. 사람들을 공원에서, 육교 아래서 몰아낸다고 해서 노숙인들이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하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정부의 지원을 받지 않는 ImpactHK같은 단체는 노숙인에게 중독 상담이나 치료, 그리고 다른 여러 가지 수업을 제공한다. 우선은 그들의 자존감을 되찾아주고 주변 사람들에게 존중받을 만한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오늘처럼 음식을 나누어주는 Kindness Walk도 이러한 활동 중 하나다. 일시적으로 참가하는 자원봉사자가 노숙인들에게 다가가 말을 걸고, 선을 넘는 질문이나 충고를 하고, 사진을 찍는 행동은 도움을 주는 것이기보다는 그들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일일 수도 있다. Kindness Walk에서는 조금 작은 그룹을 이루어서 가벼운 인사와 함께 음식을 건네고 떠나는 일이다. 어떤 사람은 고맙다는 말과 함께 받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잠들어 있거나, 등을 돌리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이렇게 매일 (아마도 다른 봉사자들이) 꾸준히 온다는 것을 그들이 알면 된다. 그렇게 얼굴을 익히고 나면, J의 단체에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중독치료를 받기도 하고, 명상이나 가라테 수업을 듣기도 한다. 그렇게 자신의 힘으로 벗어나야만 자기 삶을 지켜나갈 수 있다. 누군가 갑자기 길거리에 있는 사람에게 일자리를 연결해 줬을 때, 아직 그런 일을 해낼 힘이 없는 경우가 많고, 거기서 또 실패하면 더 큰 좌절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꾸준하게 공원으로, 거리로 나가 노숙인들을 만난다. 노숙인들이 찾아와 자신의 문을 두드릴 때까지. 그리고 그들이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J의 단체에서 풀타임으로 일하는 사람 중 40%가 과거 노숙인 출신이라고 한다. 캐나다에서 홍콩으로 와 8년째 이 일을 하는 J와 ImpactHK의 직원들이 존경스러웠다. 다음에도 같은 활동에 참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작은 걸음이 세상을 조금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바꾸는 데 도움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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