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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 Apr 21. 2022

마음

책 읽기 프로젝트 50 #15


무라카미 하루키가 가장 좋아하는 일본 작가로 꼽은 나쓰메 소세키는 근현대 일본 문학의 대표 작가이자 국민 작가로도 불린다. 소세키는 교직에 있다가 38세의 나이에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발표하며 문단에 등단했다. 이후 <아사히 신문>에 입사하여 신문에 연재하는 방식으로 작품을 발표했다고 한다. 이 책의 역자 해설에도 언급된 것처럼 연재소설은 대중을 의식하는 속성을 가지고,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재미'를 담아낼 수밖에 없다. <마음>은 1914년 4개월간 <아사히 신문>에 연재했던 소설이다. 이 소설을 읽으며 챕터 안에 잘게 나누어진 이야기에 점점 빠져들어 멈출 수 없었던 이유 역시 ‘재미’였다.


1910년대 초반, 메이지 말기의 급변하는 일본 사회를 배경으로 대학생인 ‘나'와 10살 정도 많은 지식인인 ‘선생님' 사이에 있었던 일을 다룬 소설이다. 방학을 보내러 간 해변에서 ‘나'는 우연히 ‘선생님'을 만났다. 도쿄로 돌아와서도 선생님을 찾아가 계속 우정을 이어간다. ‘선생님’은 당시 이미 대학을 졸업한 지식인이었지만, 아무런 일을 하지 않으며 세상과 단절되어 한정된 관계 속에서만 지내고 있었다. ‘나'는 ‘선생님'의 과거와 현재, 그의 삶과 생각에 대해 알고 싶었고, 점점 파고든다. 시골에서 상경한 ‘나'에게는 비슷한 점이 별로 없는 친아버지보다 오히려 ‘선생님'에게 더욱더 친밀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아버지의 병환으로 고향에 돌아간 사이 ‘선생님'은 ‘나’에게 아주 긴 편지를 한 통 보낸다. 편지로 주인공이 그동안 궁금해했던 선생님의 과거와 고독한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그의 내면을 모두 고백한다. 그와 동시에 ‘나'는 ‘선생님'이 이 세상을 떠났음을 알게 된다.


소설은 크게 ‘선생님과 나’, ‘부모님과 나’, ‘선생님과 유서’ 세 파트로 나누어져 있다. 처음 두 파트는 ‘나'의 시선으로 본 선생님과 부모님, 그리고 나의 생각을 보여주고, 마지막 파트는 선생님의 고백으로 그의 내면을 정교하게 묘사하고 있다.

“나는 나 자신조차 믿지 않아. 즉 나 스스로를 믿지 못하니까 남도 믿을 수 없는 것이지. 나 자신을 저주하는 것밖에 달리 어쩔 도리가 없어.”
“...나는 미래의 모욕을 피하기 위해 지금의 존경을 물리치려는 것이지. 지금보다 한층 더 외로운 미래의 나를 견디는 것보다 지금의 쓸쓸한 나를 견디려는 거야. 자유와 자립과 자아가 넘치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그 대가로 하나같이 이런 외로움을 맛보지 않으면 안 되겠지.”  p.45-46


‘나'의 눈에 비친 ‘선생님’은 똑똑하지만 더 이상 책을 읽거나 일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생활에는 별 부담이 없을 정도로 재산은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나’와의 대화 중에 언뜻 비치는 사람에 대한 불신과 미움, 사랑에 관한 시선은 ‘나’로 하여금 그의 과거에 더 관심을 가지게 한다. ‘나'는 ‘선생님’에게 왜 과거에 관해 이야기해주지 않느냐 따지기도 한다. 그런 모습을 보는 ‘선생님'은 어쩌면 ‘나'에게서 과거 자신의 모습을 보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쁜 사람이라는 부류의 인간이 이 세상에 따로 있다고 생각하나? 틀로 찍어낸 듯한 그런 악인은 이 세상에 없어. 평소에는 다른 착한 사람들이지. 적어도 다들 평범한 사람들이야. 그러다가 여차할 때 갑자기 악인으로 돌변하니까 무서운 것이지. 그러니 더더욱 방심할 수 없다는 거야.” p.84


소설은 100년도 전에 발표되었다고는 생각되지 않을 만큼 요즘 사람들의 마음과도 비슷하다. 편지를 주고받는 시간이 카톡을 주고받는 것보다는 조금 더 시간이 걸린다는 것 이외에는 큰 차이점이 없다고 느껴졌다. 우리는 종종 과거의 내가 내린 결정을 통해 현재의 모습을 만들어간다. 과거의 선택을 돌아보지 않고 나아가는 사람도, 또 과거에 얽매여 나아가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선생님'은 자신의 선택에 따른 결과로 보이지 않는 감옥을 만들어 스스로를 가둔 것처럼 보였다. 그것이 죄의식일 수도 있고, 자기 스스로에 대한 실망일 수도 있다. ‘선생님'은 자신이 생각한 이상적인 인간상에서 먼 인간이 되었고, 주변 사람들에 대한 기대조차 잃었다. ‘나'와의 우정을 나누는 사이에도 어쩌면 자기가 감추고 있던 모습이 들키면 어쩌나 걱정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 모든 것을 고백하고자 한 것은 고백 이후에 ‘나'를 마주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과거를 언젠가 모두 이야기해주겠노라 약속하기도 했지만, 자신의 허물을 벗어버리고 단 한 사람에게라도 솔직해지고 싶었던 것일 테다. 그가 했던 “죽기 전에 단 한 사람이라도 좋으니 남을 신뢰하면서 죽고 싶다”는 말처럼. 책을 덮은 후 ‘나'는 선생님의 편지를 받은 후 어떤 삶을 선택할 것인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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