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 프로젝트#34
빨치산은 1945년 해방 이후부터 1948년 여순 사건과 1950년 6·25 전쟁을 거쳐 1955년까지 활동했던 공산주의 비정규군을 말한다. 빨치산이 빨갱이로 통용되는 경우가 있으나, 빨치산은 러시아어 파르티잔(partizan), 곧 노동자나 농민들로 조직된 비정규군을 일컫는 말로 유격대와 가까운 의미이다. 이것이 이념 분쟁 과정을 통하여 좌익 계통을 통틀어 비하하고 적대감을 조성하는 용어로 표현된 것이 빨갱이다. 흔히 조선 인민 유격대라고 부르며, 남부군이나 공비, 공산 게릴라라는 표현도 사용되었다. 출처: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아버지는 빨치산이다. 흔히 말하는 빨갱이.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주인공 고아리는 아버지의 장례를 준비한다. 아리라는 이름은 아버지가 빨치산 활동을 하던 백아산과 어머니가 활동하던 지리산에서 따왔다. 그 과정에서 고향을 오래 떠나 있었던 아리에게 아버지의 지인들이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자신은 잘 몰랐던 아버지의 가까운 지인들이나, 오래전부터 들어왔던 아버지의 동료들, 친척들이나 예상치 못했던 동네 주민들까지, 모두 장례식장에 와서 그들과 아버지의 추억을 이야기한다. 그들에게서 들은 아버지의 모습은 자신이 잘 알지 못했던 모습이다.
책은 강력한 두 문장으로 시작한다. 두 문장으로 주인공과 아버지의 차가운 관계를 드러내는 동시에 읽는 이들의 호기심을 일으킨다.
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p.7
아버지의 죽음과 장례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니 마냥 무겁고 슬픈 이야기일 것 같지만, 정지아 작가는 해학적인 문체로 순간순간 독자의 웃음을 자아낸다. 아버지의 진지함, 어머니의 신념, 딸의 차가움, 그리고 주변인의 오지랖. 웃음과는 거리가 있는 이런 속성들로 웃음을 풀었다. ‘사회주의자가 아닌 아버지의 모습은 알지 못한다’고 말하던 딸 아리는 장례식장에서 만나는 친척들, 아버지의 친구들로부터 이야기를 들으며 사회주의자로서의 아버지가 아닌 누군가의 남편이자 아버지, 아들이자 형제였고 친구였던 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한다. 정겨운 전라도 사투리로 사회주의와 유물론을 말하던 아버지 고상욱 씨와 그의 학창 시절 친구들, 예전 동지들, 동지들의 가족들이 끊임없이 나타나는데, 그 인물들도 아주 흥미롭다. 사람들에게, 그리고 그들과 얽힌 아버지와의 추억에 아리는 위로를 받는다.
죽음은 그러니까, 끝은 아니구나, 나는 생각했다. 삶은 죽음을 통해 누군가의 기억 속에 부활하는 거라고. 그러니까 화해나 용서 또한 가능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P.207
이 책에서 궁극적으로 해방되는 이는 딸이라고 저자는 한 인터뷰에서 이야기했다. 누구든 가까운 이를 잃어본 사람이라면 먼저 떠난이의 해방일지를 써보고 싶을 것 같다. 그 과정에서 이해하고 용서하고 사랑하고 위로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다. 내가 아는 단편적인 모습보다 여러 사람에게서 조각조각 모아 만든 그 여러 얼굴의 사람이 진짜 그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겠는가.
나는 아버지의 몇 개의 얼굴을 보았을까? 내 평생 알아온 얼굴보다 장례식장에서 알게 된 얼굴이 더 많은 것도 같았다.
P.222
이 소설을 펼친 자리에서 단순에 읽어 내려갔다. 책을 읽으며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이 책은 실제로 정지아 작가의 아버지에서 영감을 받은 소설이다. 작가의 고향인 전남 구례에서는 여순사건의 영향을 받은 가족이 많았고, 그런 사연들을 모아 주인공인 고아리, 그리고 아버지 고상욱과 친척, 지인의 이야기로 재구성한 것이다. 아주 개인적인, 한 아버지의 삶을 이야기하는 동시에 우리의 한 시대를 증언하는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억해야지. 먼저 세상을 떠난 이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