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초이렛날(正月初七日), 사람의 날
지난밤 먹은 스테이크만큼의 칼로리를 소비하기 위해 무거운 몸을 이끌고 나가 10km를 뛰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 메시지를 확인하는데 친구들과의 단톡방에 생일축하 메시지가 와있었다. 순간 누군가의 생일을 잊은 건가 걱정이 되어 급하게 메신저를 열었다.
Happy birthday everyone! 다들 생일 축하해!
그리고 다른 친구 C도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닌가. 오늘(1월 28일)이 무슨 날인지 알 수 없었다. 검색을 해도 별 내용이 없었다. 우리 단톡방의 이름과 우리끼리 부르는 별명 때문에 혹시 오늘이 세계 돼지의 날인지 검색도 해봤다. 참고로 세계 돼지의 날은 없지만, 미국 돼지의 날(National Pig Day)은 3월 1일이고 미 중서부에서 이 날을 기념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L까지 의문을 가지지 않고 같이 축하한다는 말을 건네는 것을 보고 홍콩에서 특별한 날이라는 것을 알았다. 친구들에게 물어보기 전 몇 번 검색을 더 해보고 답을 찾아냈다.
정월 초이렛날, 음력 1월 7일을 사람의 날로 기념한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사람 인(人), 날 일(日)을 써서 인일(人日), People's Day.
홍콩의 영자신문인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outh China Morning Post, SCMP)의 한 기사에 따르면 중국 한漢나라 시대부터 이어져온 풍습이라고 한다. 도교의 신선처럼 여겨지는 동방삭(東方朔, Dongfang Shuo)이 하늘과 땅의 창조에 대해 저술한 책 점서(占書, Book of Divination)에서 그 기원을 찾는다. 참고로 이 동방삭이 바로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삼천갑자 동방삭'에 그 동방삭이다(!)
이 책에 따르면 중국 신화에 등장하는 여신인 여와는 6일에 걸쳐 닭, 개, 돼지, 양, 말, 소를 만든 후 7일째에 사람을 만들었다고 한다.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이야기 같은데..) 전설에 따르면 여와는 세상을 외롭게 여겨 진흙으로 각기 다른 모양과 크기로 사람을 빚었다. 그 사람들은 여와의 손으로 직접 빚어졌기 때문에 나중에 귀족과 사회의 상류층이 되었다. 하지만 일일이 진흙을 손으로 빚어 사람을 만드는 게 힘들었기 때문에, 여와는 줄로 진흙을 내려쳐 나머지 인류를 만들었고, 이들이 아래 계급이 되었다.
이렇게 사람을 만드는 일은 7일째에 끝이 났고, 그래서 한나라 때부터 사람들은 정월 초이렛날 인류의 "생일"을 축하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고대 중국에서는 금과 리본으로 장식된 머리장식을 쓰고 이 날을 축하하기도 했다고 한다. 광둥성이나 쓰촨성 일부 지역에서는 아직도 종이를 사람모양을 잘라 창문에 붙여두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또 새해 며칠간은 앞서 말한 6종의 동물을 먹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나쁜 기운을 없애주고 새해에 풍년을 기원한다는 일곱 가지 야채로 만든 국, 칠채갱(七菜羹, Seven vegetable soup)을 만들어 먹는 사람들도 있다. 말레이시아나 싱가포르 화교들은 일곱 가지 색깔의 생선회 샐러드(撈魚生, Seven-colored Raw Fish)를 먹는다고 한다. 생선을 뜻하는 어(魚)는 여유, 나머지를 뜻하는 여(餘)와 발음이 같아서 환영받는 새해 음식 중 하나다. 홍콩에서는 더 이상 특별한 음식이나 풍습이 남아있지 않지만, 여전히 서로 '생일 축하'를 해준다. 홍콩 온 지 10년 만에 처음 알았지만 말이다.
궁금해서 검색을 하다 보니 한국에도 사람날 풍습이 있다고 한다. 한국민속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음력 정월 초이렛날은 사람날로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는 날이다. 이날에는 외출을 삼가고 근신하며 일하지 않고 노는 풍습이 있다! 고려시대에 이미 이날 어떤 의식을 거행한 기록이 있었다. 그리고 지역별로 비슷하면서도 서로 다른 특징이 있었다. 전남에서는 정월 첫 호랑이날(寅日 인일)을 사람날(人日 인일)이라고 부르면서 일을 하면 호랑이가 나타난다고 하여 놀았다. 전북에서는 원숭이날을 사람날로 불렀는데, 이 날은 칼을 안 만지거나, 일을 안 하고 놀았다고 하고, 경남에서는 사람날이므로 일하지 않고 놀며 "바느질하면 생손가락 앓는다"거나 "칼질하면 다친다"는 금기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경북에서는 사람의 발생을 축하하는 날이자 질병을 예방하고 친목을 도모하는 날로 여겼다고 한다. 충북에서는 이날 남의 집에 가서 자지 않고, 손님이 와서 자면 그 집의 운이 일 년 내내 불길하다고 했다고.
사실 많은 곳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는 풍습인 것 같지만, 여전히 "생일 축하"인사를 건네는 홍콩 사람들이 참 다정하다는 생각이 든다. 혹시 설 연휴에 홍콩에 놀러 왔다가 생일 축하 인사를 들어도 놀라지 마시기를.
여러분 모두 생일 축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