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제부터 인간성을 상실하고 있었던 것일까
"어머! 이게 누구야?"
대학 동창들을 병원에서 만났다. 그들은 부부. 같은 과에서 친구로 지내다가 둘은 결혼하고 아기를 낳은 지 한참 되었는데 '둘째가 생겼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결혼한 지 1년이 넘었지만 아이가 생기지 않아 난 내심 신경이 쓰였다. 친정, 시댁 어느 곳에서도 서두르거나 뭐라 하는 사람 하나 없었지만, 내 주변에 아이를 갖지 못하거나 힘들게 갖은 아이가 유산되는 경우를 마주하면서 스스로 조바심을 느꼈던 것 같다. 이런 내 마음을 말해도 제대로 이해할 리 없는 남편은 함께 노력해주지는 않고 임신을 위해 신경 쓰는 나를 잠재우고자 여행을 떠나자고 했다. 그리고 그 여행길에서 그 두 줄을 마주하고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머! 웬일이야. 오랜만이다. 영수야, 소영이에게 잘해주고 있지?"
"어, 너도 얼굴은 그대로네. 검진 온 거야?"
삐쩍 말랐던 나는 배도 얼마 나오지 않았는데 커다란 임부복을 입고 다녔다. 그리고 허리를 제치고 내가 임산부인 사실을 내심 뿌듯해했다. 나도 엄마가 된다. 내 안에 생명이 있다.
내 이름이 불리고 떨리는 마음으로 누웠다. 배에 뭔가를 바르고 한참을 보던 의사가 "어....?"이러더니 여기저기를 보고 청진기를 대었다. 무슨 일이지.....?
"음.... 이런 일은 초기에 많아요. 계류 유산입니다. 절대 산모 탓이 아니에요......."
삐이...................................
이후로도 의사는 한동안 뭐라고 산모를 위로하는 듯한 말을 했고, 나는 습관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저 그럴 수 있다, 산모 탓이 아니다는 말이 떠오른다. 하지만 내 마음에서는 그럴 수 없다, 내 탓이다라는 말만 맴돌 뿐이었다. 의사에게 덤덤히 인사를 하고 진료실을 나왔는데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다. 퍽 하고 주저앉아 통곡하며 울었다. 간호사들이 여기서 이러면 안 된다고 하는데, 도대체 그렇다면 언제 울 수 있을까라는 생각만 짙게 들었다. 아마도 제정신이 아닌 얼굴로 꺼이꺼이 울고 있는 나를 동창부부는 보았을 것이다.
차가운 수술실에 들어가니 현실은 아무도 나의 상실감을 공감해 주는 이가 없었다. 몸무게가 너무 적어 마취약 투여량이 너무 과하게 많다는 이야기, 엄마가 너무 말라서 아이가 버티지 못했나 보다는 이야기, 그럴 수 있으니 너무 상심하지 말아라 금방 또 아이가 생긴다더라 등등의 이야기들을 해 주는데 생각해 보면 아픈 말들이었는데 나는 또 덤덤히 네네 그러면서 계속 울었다.
깨어나보니 입원실에 있었다. 말없이 그가 손을 포개어줬다. 그때 입원실 문을 열고 친정 엄마가 들어오셨다.
"엄마...." 그리고 엄마도 나도 계속 울기만 했다. "얘야, 사실은 엄마도....." 엄마도 유산을 했던 경험이 있었다고, 그래도 모두 다 임신하더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그리고 유산휴가를 5일 쓰고 친정 엄마의 보살핌을 받으며 먹고 쉬고 울다 웃으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그러다가도 계속 흘러나오는 울음은 멈출 수가 없었다.
그런데 유산 휴가를 쓴 주에는 학부모 공개수업이 있었다.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온 날 교감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학부모 공개수업에 어떠한 이유로 못한다고 학부모님들께 문자를 돌리세요.>
차가운 현실이었다. 몸은 괜찮은 지 묻는 것은 바라지도 않았지만, 학부모 공개 수업에 유산을 한 교사에게 어떠한 이유로 못한다고 학부모들에게 문자를 돌리라고? 유산으로 지금 몸을 추리는 중이라 공개수업을 못한다고 해야 하는 건가? 나보고 나와서 수업을 하라고 하는 건가? 옆에서 가족들은 정말 너무 한다고 분개했지만, 나는 억지로라도 웃음 지으며 원래 공직사회가 이런 분위기여서 그래 괜찮아라고 하고 학부모들의 전화번호를 물어보려고 동료 교사에게 부탁을 했다. 리스트를 받고 문자를 돌리며 뭐라고 해야 하는지 한참 고민하다가 개인적인 사유로 공개수업은 실시하지 않는다고 돌렸다. 학부모들은 그 개인적인 사유가 무엇인지 궁금해서 학교로 전화를 해서 물었나 보다. 교감이 나에게 개인적인 사유로 공개수업을 하지 못한다고 하면 학부모들이 궁금해하지 않냐고 그제야 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교감선생님, 제가 뭐라고 써야 될까요? 유산으로 인해서라고.."
"뭐 그게 자랑이라고 유산으로 인해라고 말해요? 그냥 적당히, 적절하게!"
적당히, 적절하게 가 어떤 것인지 물었지만, 그건 선생님이 알아서 눈치껏 쓰라고 말했다. 아마 그녀도 적당히 적절한 단어와 사유가 떠오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학부모들의 문의를 대응하기는 싫고, 뭐라고 말할 것인지도 몰라 평교사에게 직접 못한다고 문자를 써서 보내라고 공지를 하라니. 어른스럽지 못한 그분의 결정이었다.
학교를 나가기 이틀 전, 교감이 다시 전화가 왔다. 나는 그때 몸이 급작스레 너무 좋지 않아 응급실에 누워있는 상태였고 옆에서 엄마와 남편이 걱정스럽게 서 있었다. 친정엄마가 대신 교감의 전화를 받고 "교감선생님, 저희 애 지금 몸이 너무 좋지 못해 대학병원 응급실입니다. 안돼요. " 단호하게 말씀하시고 계셨다. 나를 바꿔달라고 했나 보다. 무슨 일이지...?
"0 선생, 유산 휴가가 남긴 했는데 그냥 내일 나와주면 안 되겠어? 내일 현장체험학습인데 애들 인솔해야 하잖아. 밖으로 나가는데..."
모든 정이 떨어졌다. 나는 한 번도 대충대충 살던 교사가 아니었다. 교육 활동에 진심을 다했고 주어진 업무도 충실하게 했던 교사였다. 그런데 이런 일을 겪고 나니 나는 그저 학교의 부품 같던 존재였구나라는 현실을 마주하며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토록 열심히 살았을까? 회의가 들었다. 유산은 내가 바랬던 일도 아니고, 내가 아픈 것도 내 의지가 아닌데, 괜찮냐고 말 한마디 없이, 체험학습 아동 인솔을 하라고 했다. 그때 정신이 들었다. 그리고 나를 챙기며 직장을 다니라던 부모님과 남편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아이들은 나 없이도 공개수업도 잘 끝났고, 나 없이도 체험학습도 잘 다녀왔다.
몸을 추스르고 나간 학교는 여전히 냉랭했다. 동학년에 교감승진을 앞둔 동료 교사가 할 말이 있다고 나를 불렀다.
"선생님, 우리가 얼마나 선생님을 위해 기도했는 줄 알아요? 선생님도 교회 다닌다며? 우린 선생님이 빨리 학교 오라고 많이 기도했어. 진짜로. "
"네.. 감사합니다."
"근데 요즘은 참 때가 좋아. 우리 때는 유산하고 바로 학교를 나왔지. 누가 유산 휴가 같은 걸 쓰겠어. 뭘 대단한 일 했다고. 좋은 일도 아닌데. 누구나 다 유산해. 유난 떨 일은 아니지."
바들바들 떨렸다. 이런 게 현실이구나. 학교는 누군가에게 아픔을 공감해 주는 곳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불편감을 주면 유난을 떠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 찍히는 곳이구나. 인간성을 키우고 올바른 교육을 하는 공간에서 조금의 인간성도 찾을 수 없는 차디찬 곳.
우리는 언제부터 인간성을 상실하기 시작했던 것일까?
내가 아니면 모든 게 혐오스럽기 시작하고, 나에게 조금이라도 불편함이 오면 타인을 이해하기보다 함부로 부정적으로 자신만의 잣대로 판단하기 시작한 걸까?
다행히도 그 이후로 나는 굉장히 단단해졌다. 정당하지 못한 지시도 관리자의 지시라면 네네라며 순응하던 내가 정당성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든 일을 옳고 그름의 시선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또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될 상황은 아닌가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나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어떤 상황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그의 시선으로 상황을 온전히 바라보려고 노력하기.
이렇게 아픈 과거를 마주하는 일이 쉽지는 않다. 십 년은 지난 후에야 나는 비로소 충분히 힘들었던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졌고 제대로 떠나보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과거가 타인의 상황들을 좀 더 깊게 이해하려는 자세를 갖게 만들어 준 것 같다. 내가 항상 옳지 않을 수 있으며, 내가 이러했으니 너도 이래야 해 가 아니라 나는 그러하지 못했지만, 너는 이렇게 돼서 다행이다라는 태도를 갖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를 지켜내는 건 나밖에 없다고, 나를 가장 소중하게 여기자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들은 좋지 못한 어른이었다. 그리고 그런 어른들도 있는 게 현실이다. 나의 아픈 과거의 상처를 꺼내는 이유는 누군가는 이런 아픔을 마주할 수 있기에, 당신만 그러한 일들을 겪는 게 아니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티다 보면 좋은 일이 더 많다고 이야기해 주고 싶어서. 인간성을 상실한 사회에서 살아가다가도, 따뜻한 인간성을 느끼는 순간들을 분명 마주할 것이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지혜롭게, 몌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