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학창시절부터 집안 사정으로 혼자 자취를 했다. 처음엔 자유가 좋았다.
누구의 간섭도, 소리도 없는 공간.
오직 내가 만들어내는 생활의 소리만이 내 하루를 채웠다.
컵에 물이 떨어지는 소리,
전자레인지 돌아가는 소리,
새벽에 울리는 냉장고의 진동음까지도
내 일상의 배경음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다시 가족과 함께 살게 되었을 때, 그 ‘소리’들이 내게 낯설게 다가왔다.
아침부터 분주하게 식사 준비를 하시는 엄마의 냄비 소리,
출근 준비로 분주한 아빠의 문 여닫는 소리,
새벽 기도회에 다녀오시는 할머니의 발걸음 소리.
나는 고요한 아침을 사랑했기에,
그 모든 소음이 때로는 내 평온을 깨뜨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다시 혼자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리고 마침내 독립했을 때,
그토록 원하던 ‘고독의 시간’이 내게 주어졌다.
청계천을 따라 걷던 고요한 오후,
남산의 잔잔한 풍경 속에서 나는 나만의 무인도에 도착한 듯했다.
고독은 자유였다. 그 자유는 나를 단단하게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느 날부터인가 그 ‘소음’들이 그리워졌다.
부엌에서 들리던 엄마의 칼질 소리,
아빠의 재촉 섞인 목소리,
그리고 할머니의 낮은 기도 소리.
그때는 분주하다고 느꼈던 일상의 소리들이,
이제는 나에게 삶의 온기를 전하는 파도 소리처럼 느껴졌다.
결국 고독이란 완전한 고요가 아니라,
내가 사랑했던 모든 소리들을 품고 있는 상태인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나는 그 소리들과의 거리에서
나만의 ‘완벽한 무인도’를 만들어가고 있다.
결국 삶이란, 수많은 소음 속에서 사는 것이라고
내 앞에 펼쳐진 풍경들이 이야기 해주고 있었다.
<나의 완벽한 무인도>, 박해수
@지혜롭게, 몌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