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듣는 것과 떼어놓고서는 성립할 수 없는 존재
겨울방학이 되어 아이와 첫날을 보냈다. 7시가 훌쩍 넘어서야 일어난 아들은 눈을 뜨자마자 침대 곁으로 쪼르륵 달려와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 온기가 전해지고 나서야 나도 비로소 ‘이제 좀 움직여볼까’ 하는 마음이 생겼다.
어제 학원 픽업을 갔다가 칼바람을 피해 잠시 들른 빵집. 그곳에서 사 온 빵이 식탁 위에 놓여 있는 걸 보고, 괜히 안도했다. 아침을 준비해야 한다는 부담이 한결 가벼워진다.
빵을 나눠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다가 나는 한참 동안 아들을 빤히 바라보게 되었다.
‘얘가 언제 이렇게 조잘거리며 말을 잘 하게 되었지?’
필사 노트에 어제 적어 두었던 문장이 이 아침에 와 닿는다.
<그럼에도 육아>, 정지우
문득 깨닫는다.
아이가 갑자기 자란 게 아니라, 내가 이제야 아이의 말 속도에 맞춰 멈춰 섰다는 걸.
학교에 갈 시간도, 서둘러 재촉할 일도 없는 하루.
아들의 이야기는 목적 없이 흘러가고 나는 그 흐름 옆에 가만히 앉아 고개를 끄덕인다.
대단한 조언도, 깔끔한 결론도 없다.
그저 들었다.
가끔씩은 고개를 끄덕이고 빙그레 웃기도 한다.
어쩌면 아이의 말이 늘어난 게 아니라
내가 덜 바빠졌고, 덜 앞서갔고, 조금 더 인간다운 속도로 돌아온 것이 아닐까?
겨울방학 첫날, 나는 아이를 가르치기보다 아이의 말을 들으며 잠시 멈춰 서 있는 법을 배운다.
아이 앞에서 조급해지지 않는 어른으로 조금 더 천천히 서 있겠다고 다짐해본다.
<오래 바라보고, 끝까지 들어주는.>
아마도 아이에게 건넬 수 있는 것들 가운데
가장 먼저여야 할 것은 말보다 이런 태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내 말을 들려주기만 하며 정작 아이의 말을 놓치고 있진 않았는지 생각이 많아진 아침이었다.
@지혜롭게, 몌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