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신가영' 노랫말에서 살포시 밑줄 쫙
삶이 장난을 치는 것 같은 순간이 있다. 내 몸은 A를 향해가고 있는데 내 마음은 Z로 나아가고 있을 때, 나는 내일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데 상대방 그 누군가는 과거를 되짚어서 거꾸로 걸어가려 하고 있을 때, 이곳은 아침이 다가오는데 그 어딘가는 저녁을 맞이하려 준비하고 있을 때. 아, 생각만 해도 그 부딪치는 풍경에 찌릿찌릿 편두통이 일어나는 것만 같다. 각각이 향해 선 방향이 '반대'라서 때론 어떨떨하고 혼란스러운 순간들. 반대로 서지 않았다면 그야말로 심심함이 느껴질 만큼이나 평화로웠을 상황이다. 내가 1이면 그대도 1이요, 여기가 아침이면 그대도 아침인 '얌전한' 흐름이 그리워진다. 내가 청군에 섰다면 누군가가 백군을 모아 대립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내가 꼬들꼬들한 라면을 좋아한다고 밝혔다면 그 누군가가 푹푹 삶아서 내 신경을 거스르지 않았으면 좋겠다. 안타깝게 늘 그럴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반대'라는 단어는 때론 얄밉다. 나를 둘러싼 시간, 공간, 분위기 모두 나란히 내 삶의 방향성을 존중하며 부단히 협조해줘야 할 것 같은데 꼭 살다보면 누군가, 그 무언가의 존재는 내가 하고자하는 바에 반기를 든다. "야, 쫌, 그냥 따라와주면 안되겠냐?" 투덜거려도 소용없다. 가고 싶던 회사 최종면접에서 목에 핏대세워가며 눈에 새빨개지도록 열혈파워를 보여도 심사위원 중 누군가의 마음에 쏙 차지 않는다면 결국나는 '반대'해야하는 대상으로 도장 꽝 찍히고 만다. 나는 파스타가 먹고 싶은데 저사람은 냉면이 먹고 싶다고 하네. 모든 음식 다 있는 푸드코트에 가지 않을 거라면 그 사람과 나와의 취향은 '반대'로 가는 거라서 결국 그 관계는 단거리에서 종료.
혼자지만
혼자가 아니라고 느꼈던 순간과
혼자가 아니지만
혼자라고 느꼈던 순간에서
가수 안녕하신가영은 <반대과정이론>에서 이렇게 노래부른다. "혼자지만 혼자가 아니라고 느꼈던 순간과 / 혼자가 아니지만 혼자라고 느꼈던 순간에서 / 내가 너를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면 / 너도 나를 사랑했을텐데." 살면서 무수히 느끼는 '반대'의 심정 중에 특히 관계에 초점을 맞췄다. 이것은 이것이고, 이것이지만 이것이 또 아니다... 대학교 1학년 때 외솔관에서 들었던 '철학입문' 강의가 갑자기 불현듯 스쳐가면서 "오오, 이게 무슨 선문답인가" 생각했다. 가사를 곱씹어보다가 약 3분 정도 눈알을 팽글팽글 회전시켜본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 노래, 누구에게나 한번쯤은 있을 법한 경험치에 근거했구나. 혼자 떨어져있지만 마음은 결코 외로움을 휘휘감고 있지 않아서 신기했던 순간들, 누군가와 물리적으로는 함께 꼭 붙어있지만 마음만큼은 덩그러니 놓여져 오히려 추위에 오싹 떨어야 했을 순간들. 이 노랫말 이론에 따르자면 늑대목도리 부재한 모태솔로도 외로움에 허덕거리지 않을 수 있다. '반대'로 24/7 꼭 붙어있어서 커플 신세임에 안도하지만 '싱글'만도 못하게 상처투성이라 "에라이, 이럴 바엔 차라리 혼자인 게 낫겠네" 부르짖을 수도 있다. 물 같은 하루가 될 것 같았지만 실은 불 같은 하루였고, 짜장면스러울 것 같은 기분이었지만 실은 짬뽕같은 하루였을 때, 어김없이 그 '반대과정이론'이라는 꽤나 고개 끄덕여지는 법칙이 스르륵 스쳐간다.
그토록 '입사'하고 싶던 회사가 '퇴사'를 해야하는 대상이 되어가는 요즘같은 분위기, 반대과정이론이 또한번 빈번하게 들어선다. 들어가고 싶어서 안달이 났던 순간들은 어느새 나오려고 출구를 찾아 헤매는 몸짓으로 변주되어버리니까. 함께하고 싶었던 가족같던 팀원들은 때로는 나의 워라밸을 해치는 시꺼먼 야수로 모습을 달리하고 있네. 그토록 드나들고 싶었던 회사의 정문은 어느날 칼퇴하고 싶어서 안달난 직장인의 그저 그런 '통로'로만 인식되고 있만다. 자, 그런 거라면 안녕하신가영의 '반대과정이론' 살짝 개사해서 이런 노래도 부를 수 있겠다. "들어가고 싶었지만 들어가기 싫은 회사와~ 백수가 싫었지만 백수라서 좋았던 순간에서~ 네가 나를 혹사시키지 않을 수 있었다면~ 나도 너를 퇴사하지 않을 텐데" (오오, 입으로 불러봤는데 박자도 딱딱 맞네)
소설과 미드에도 반전이 있고, 그 스토리 안에 녹아든 주인공도 때론 참 별나게도 성격을 달리 바꿀 때가 있어서 반동을 꾀하는 때가 적지않다. 그 어느 가상의 세계보다 더 스펙터클한 '삶'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반대과정이론'은 어찌보면 당연할테지. "도대체 왜 꼭 내가 마주하는 일들엔 반대과정이론이 더 잦은가." 왜 남들보다 내가 겪는 반대과정이론의 현실판은 강도가 센 것 같아서 날 이렇게 괴롭게 만들고 마는 것인가. 저...저기, 툴툴대지는 말자. 고뇌하고 심통부릴 겨를이 없다. 애초에 거부할 수 있는 원칙이었다면 찾아온 초기부터 뿌리부터 엄하게 다잡았을테니까. 다만 그 피할 수 없는 원칙을 마주하는 간격에 조금 더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고 반대의 강도가 너무 심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작은 소망을 품어본다. 이왕이면 내심 기다렸던 반대였으면 좋겠고.
배고파도
배고프지 않았던 든든한 나날과
배부르지만
또 배고팠던 허기진 순간에서
내가 너를
한번 더 먹어볼 수 있었다면
너도 나를
배불릴 수 있었을텐데.
배고프지 않은데 배고픈 순간, 배고픈데 배고프지 않은 순간. 허기에 적용되는 '반대과정이론'이라고 해두자. 이거 꽤나 자주 느끼는 기분이다. (나만 그런 건 아니겠지?) 아무리 배를 채워 그득히 먹어도 "아... 왜 계속 배고픈 거야." 도통 그 이유를 모르겠을 순간들이 등장할 때가 있다. 이런 걸 '감정적 허기'라고 해야하나. 본능적인 먹성은 채웠어도 마음이 배고프면 자꾸자꾸 배고파질 때가 있어서 난감할 때가 있다. 자꾸자꾸 채우기만 하면 안될 것 같은데 채운 칼로리의 양과 달리 만족감의 '반대'로 가니 속상하다. 그와 달리, 안 먹어서 꼬르륵 소리에 난리가 났는데 배가 안 고픈 순간이 있었더랬다. 이를테면 2010년 여름, 아나운서에 최종합격했던 딱 그 오후 시간이 그러했다. 꿈을 드디어 기필코 이뤄냈던 그 성취감의 기분이라는 게 너무나도 거대해서 무엇을 씹어 소화시키지 않아도 마음이 배불렀다. 아마 그 포만감이 위까지 전염시키고도 남았던 모양. 작년 겨울, 남편과 결혼식장에서 반나절을 쫄쫄 굻으며 배고파했지만 마주보기만 하면 배고프지 않아지는 것만 갔던 순간들도 떠오른다. (아차차, 결혼식 끝나고 친구가 선물 준 마카롱 한 박스를 한밤중에 둘이 먹어치운 건 글의 자연스러운 맥락을 위해 감히 '비밀'이라 말하고 싶습니다만.)
이왕 내 삶에 '반대과정이론'이 나타나 줄 거라면 최대한 좋은 쪽으로 타격을 줄 '반대'였으면 한다. 내맘대로 돌아가 줄 리 없는 하루하루이지만 그래도 말이지, 이왕이면 기대치 못했던 '반대'라서 벌떡 일어나 반길 수 있는 느낌이라면 더 좋잖아! 혼자가 아니지만 혼자라서 싫었던 순간보다는 '혼자지만 혼자가 아니었던 순간'들이 많았으면 좋고 배안고프지만 배고팠던 무수히 많은 순간들보다는 '배고파도 배고프지 않은 순간'들의 차오름을 더 자주 보고 싶다.
코 앞에 있어도
애틋하고 간절하기를 바란다
한 존재지만
귀하고 정성스럽게 시간을 들이기를 꿈꾼다
내 곁에 있는 취준생, 퇴준생들이 '취직하지 아니 하였어도 취직한 것보다 더 생기가득한 날들'을 꾸려가고 있었으면 좋겠다. 늘 단짝친구 같았던 엄마 '딸이 한국에 없지만 곁에 있는 것보다 더 귀하게 애정하는 시간들'을 지어가고 있었으면 한다. 반대로 나 역시 친정엄마가 곁에 있지 않지만 '그 아련한 부재감에도 불구하고 큰 존재감을 쌓아가며 마음으로 지켜줄 날이 많다'는 걸 깨달아가고 있는 중. 남편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 같은 집에서 누구보다 가까운 존재가 되어 살고 있지만 '코앞의 거리에 있어도 가깝게 자리하고 있지않은 것처럼 때론 애틋하고 간절하기'를 바란다. 누구보다 '스스럼 없어 편안한 존재지만 가끔은 어렵고 먼 존재를 대하듯 귀하고 정성스럽게 시간을 들이기'를 꿈꾼다.
하루에도 몇 번씩 '반대과정이론' 속에서 맴돌곤 한다. 때론 그 이론의 길목에 들어서 서성거리고 헤맸다가 결정하고 후회하고 '반대과정이론' 특유의 어긋나야만 하는 성질, 그 자체를 원망하기도 하겠지. 또 반대로 그 이론, 거참 기묘하다며 하늘 한번 바라보고 '인생이란!' 중얼거리며 가볍게 한탄 섞인 감탄을 해보기도 한다. 그 누구의 특별한 의식이 아니다. 나도, 너도 우리 모두 마주치고 흘려보내는 이론. 그래서 참 보편적인데 워낙에 아이러니 가득한 날들과 겹치다보니, 잊고싶거나 존재하지 않는다고 합리화할 때도 있는 반.대.과.정.이.론.
글을
끝내고 싶지 않았지만
글을 마무리 해야하는 순간
글을 끝내려고 맘 먹었지만
글 끝내기 싫었던 지금 이 순간에서
오늘 오후엔 어떤 반대의 지점을 맞닥뜨리게 될까. 햇살이 너무 좋은데 마음은 그만큼 밝지 않아 속상한 오후? 월요일이라서 Monday Blues에 침잠해있어야 할 것만 같은데 생각보다 방방떠서 주체 안되는 정오를 만나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미국의 아침 바람을 맞으며 모닝커피를 마셨지만 그 쓴 맛은 때때로 한국 새벽녘에 안 오는 잠을 억지로 달래며 들이켰던 쓴 감성일 수도 있겠지. 곁에서 쫑쫑 거리는 참새의 지저귐이 참 평온하다고 느꼈으나 좀 이따 오후 3시 30분쯤엔 성가시다고 느낄 지도 모를 일. 만약 그러하다면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 꼭꼭 챙겨서 귀를 단단하게 틀어막고 이 노래를 들어야겠다. 안녕하신가영이 부릅니다. '반대과정이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