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겁지 않을 만큼만

언제나 청춘일 수 없다

by 명희




"화분 너무 많다 좀 치워라" 입바른 소리 잘하는 둘째 언니가 내 집에 와서 한 말이다.

1.5평 남짓한 좁은 베란다에 파키라, 홍콩야자, 금전수, 스투키, 홍페페, 줄리아 페페, 무늬벤자민, 마블링선인장, 우주목 등 크고 작은 화분들이 빼곡하다. 구석에 있는 세탁기에 가려면 게걸음으로 간신히 간다. '참나! 별꼴이야. 난 아침저녁 이 아이들 들여다보는 낙이 크구먼' 혼잣말하며 입만 삐쭉댈 뿐 난 언니 말에 대꾸하지 않는다. 본디 말본새가 예쁘지 않은 언니이다.


새 숨 답답했을 아이들, 창문 열어 바람 들여주고 머그잔 가득 커피 담아 책상에 앉은 아침 7시,

적당히 쓴 커피가 목젖을 타고 내려가 속을 적시자 가슴을 누르고 있던 바윗덩어리만 한 걱정거리가 조약돌만 해진다. 기껏 커피 한 잔에 부서지는 걱정거리로 잠을 설친 어젯밤이 억울하다.


이 드니 느는 게 주름살만이 아니다.

생각도 늘고, 눈치도 늘고, 작은 걱정 꼬리에 꼬리 물려 부풀려놓기 일쑤다. 몸 아파 수년을 고생하고 있는 신랑, 서른 끝나이에 결혼 안 한 큰아들, 걱정이라고 해봐야 일 년 삼백육십오일 끌어안고 사는 이게 전부다. 걱정으로 해결될 일 아니고 잠만 빼앗길 뿐인데 왜 자리에만 누우면 천장을 뱅뱅 도는지!


일 아침에 먹을 식빵 사러 집 앞 파리바케트에 가는 중이다.

횡단보도 녹색 신호등이 깜박깜박 5초를 남기고 있다. 뛸까 말까 고민하는데 내 두 발은 이미 노란 선 밖으로 나가 가지런히 모아져 있다. 건너편에서는 청년이 후다닥 뛰어 내 옆을 쏜살같이 지나간다. 안경 쓰고 모자 쓰고 마스크까지 썼지만 대충 입고 나온 내 차림새는 누가 봐도 중년 이상(굳이 노년이라 지칭하고 싶지 않다)은 거뜬히 보이고도 남는다. 그런 여자가 엉덩이 빼고 팔 휘저으며 파닥파닥 뛰어가는 모습은 청년의 달음박질과 달라 세월에 쫓겨가는 허름한 노인네일 거 같았다. 자존감이 자꾸 쪼그라든다. 나름 잘 발달되어 있는 승화의 방어기제도 요즘 들어 역할이 신통찮다. 老춘기인가!


생각과 다른 거울의 내 모습이 슬퍼지다가 문득 생각해 보니/마음은 스물 어디쯤에서 멈춘 듯 그대로/마음까지 주름지면 얼마나 서글퍼질까 그렇게 생각하니 내 마음이 소중해져/나는 오늘도 바람을 안아본다 그때의 나인 채로/스물 어디쯤에서 멈춘 마음의 나이 여전히 설레고 여전히 새로워 ......

로트 가수 장민호가 부르는 '마음의 나이' 일부분이다.


제나 청춘일 수 없다. 머리칼 하얘지고, 물기 빠져 퍼석해지는 피부를 두려워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것을 쉽게 들키고 싶지 않은 게 내 솔직한 심정이다. 스물 어디쯤은 아니어도 아직은 젊은 내 '마음의 나이'에 기대고 싶다.


밀식빵과 치즈스틱 한 봉지 사 들고 집에 오는 길의 횡단보도는 빵 봉지 폼나게(?) 들고 적당한 속도의 걸음으로 우아하게 건너왔다.


니멀리즘 라이프를 실천하겠다고 자질구레한 살림살이 가득했던 단독주택 생활을 마무리하고 20평도 채 안 되는 아파트에 둥지를 튼 지 만 2년이 됐다. 이사 올 때 작정하고 많은 물건을 버린 만큼 지난날에 아등바등 매달리던 욕심도 버렸지만, 작은 거 하나 못 버리고 가져온 것은 화초와 책이다. 이삿짐센터 아저씨들에게 특별히 부탁한 것도 책과 화초다. 심지어 화분 근처에 있는 돌멩이 하나도 다 잘 챙기라고 했다. 그런 내가 비좁다는 이유로 아이들을 구박할 일은 없다. 엄마(식집사) 닮아 환경에 잘 적응하는 내 아이들은 여전히 예쁠 것이고 숨을 같이 나눌 것이다.


제활동이 멈춰지자 변화가 거의 없던 체형에 살이 붙는다.

산책, 그림공부, 책 읽기, 글쓰기 등 버겁지 않을 만큼의 뇌와 몸을 써 자존감은 끌어올리고 살은 덜어내는 중이다. 마음과 신체나이도 가속도 붙지 않게 운행 중이다. 다소 허접해도 끈기를 무기로 장착했다.


<주관적 삶을 살기 위한 몸짓 게을리하지 않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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