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세 번째 ©Myeongjae Lee
ZE228.
19:45, 탑승구 3A, 좌석 22A
제주에 오면 아이들, 주로 큰 녀석이지만, 셔틀차량 기사 역할이 주요 과업 중 하나다.
주말이지만 학교, 학원, 친구약속 등 공사가 다망하시다. 동승한 친구들을 적당한 곳까지 모셔다 드리는 서비스도 물론 포함된다. 어떤 날은 집에 왔다가 갔다가를 수차례 반복하기도 하고, 어떤 날은 차를 세워놓고 끝날 때까지 주변 산책을 하거나 책, 드라마를 보며 기다리기도 한다. 드물게는 사이사이 작은 아이와 비브레이브 아이스크림 데이트를 하거나 드라이브를 한다.
스물네 번째 비행을 며칠 앞둔 화요일, 아내와 통화하다가 기분이 급 좋아졌다.
"엄마는 볼일이 있어 목요일에 서울 갈 거고, 아빠가 목요일 밤에 제주 내려올 거야."
"아, 그럼 오랜만에 아빠가 학교 데려다주겠네."
라고 했단다. 원래 큰 아이 등굣길은 내 담당이었다. 웬만해서는 기득권을 넘겨줄 수 없는 꿀템 같다고 할까. 버스 시간이 애매하기도 하고, 아침부터 버스를 한 번 갈아타고 학교 가는 게 마음 쓰이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10분이 채 안 되는 그 짧은 수다 시간이 좋았다. 지금도 육지 와서 가장 그리운 것 중에 하나다. 나만의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큰 아이도 아빠와의 그 10분을 좋은 시간으로 기억하고 있는 거 아닐까.
빨리 금요일이 왔으면 좋겠다.
스물세 번째 비행을 몇 시간 남기고 머체왓숲길을 걸었다.
유럽 작은 나라에 살고 있는 아내의 친구가 그 주 제주를 방문한 덕분이었다. 14년 만의 만남이란다. 누가 소울메이트가 아니랄까 봐, 각각의 손목에 찬 애플워치 모델도, 동종 아이폰을 감싸고 있는 핸드폰 케이스까지 똑같은 거였다. 서로 어이없어하며 깔깔대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친구, 나이가 들수록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당초 계획과 달리, 결국 머체왓소롱곳길을 완주하게 되는 바람에 조금은 시간에 쫓겼지만, 걷기를 마치고 족욕으로 마무리를 했다. 잠시나마 이런저런 괴로움이 잊혔다.
일요일 떠나기 전에는 시간이 애매해서 아무것도 잘 못했는데, 마음이 다소 바쁘기는 하지만 이렇게 무언가를 하니, 그 무언가를 해서도 기분이 한결 나아지고, 그 시간을 야무지게 쓴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그래도, 뭘 해도, 돌아갈 때가 되면 늘 가족이 고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