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네 번째 ©Myeongjae Lee
KE1211.
19:20, 탑승구 10, 좌석 36A
백팩을 짐칸에 넣고 자리에 앉으려고 하는데, 37열에 서계시던 여성 분이 36C 자리를 가리키며, "이 자리면 자리를 좀 바꾸어 주실 수 있으세요?"하고 물었다. 36B에 예닐곱 살로 보이는 소녀가 천진난만하게 앉아있는 것을 보니, 체크인이 늦었는지 아이와 나란히 앉을 수 있는 좌석을 구하지 못하신 것 같다.
나도 아이들 어렸을 때 이런 경험이 종종 있어서, "저는 저기 36A인데요"라고 하고, 바로 "저 자리도 괜찮으시겠어요?"라고 말하려 했는데, 그 말을 시작하기도 전에 "아, 그러면 아닙니다." 하셨다.
여전히 의문이다.
꼭 36C에 앉으셔야 할 이유가 있으셨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외국인으로 추정되는 남편 분도 바로 근처에는 보이지 않았다. 36A도 창가 좌석이지만 딸과 나란히 앉을 수 있는 자리인데. 내가 더 적극적으로 양보를 했어야 했나, 바꾸어드리겠다는 말이 한 템포 늦게 나와서였을까. 괜히 마음이 불편하고 미안했다. 착륙 이후 서둘러 이동하려고 복도자리에 앉으려고 하셨나 싶기도 했다. 아무튼, 뒤늦게 들어온 36C 남자분이 흔쾌히 자리를 바꾸어주셨다. 왠지 인색한 사람이 된 기분이 들었다. 의문의 1패를 당한 것 같은 느낌도.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안전벨트 해제 '딩동' 소리와 함께 음료 서비스가 시작되었고, 36B 소녀는 **를 마셔도 되냐고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는 안 된다고 했다. 잘 못 들었지만, **는 '콜라'였던 것 같다. 커피는 아니었을 거고, 그 외 서비스되는 음료는 토마토주스, 감귤주스, 생수, 보리차였으니 콜라만 남는다. 아이는 결국 감귤주스를 마셨다.
그런데, 나는 눈치도 없이 콜라를 달라고 했다. 잠시 망설였지만, 그 순간 콜라가 너무 마시고 싶었다. 모녀에게 민망했다. 콜라를 마신 뒤에도, 승무원이 들고 지나가는 쓰레기봉투에 종이컵을 버리려고 했는데, 아이 엄마는 다소 멀어 보였는지, "버려드릴까요?" 하며 손을 살짝 내밀었는데, 나는 웃으며 고개 인사를 하고 직접 버렸다. 조금 무안하셨으려나.
뭔가 선의가 계속 엇갈리는 기분이었다. 친절을 적절하게 베풀지도, 친절에 적절하게 반응하지도 못한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며칠 전 아내의 말마따나, '타인과의 작은 접촉과 호의가 고단한 일상에 한줄기 시원한 바람이 되는' 그런 순간을 나도 주변 사람들도 드물지 않게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글을 쓰며 둘째에게 일련의 상황을 이야기해 주었더니, 콜라는 정말 너무했다고, 마트에서 하나 남은 레고 아이템을 아이가 가리키며 저거 사달라고 했는데, 그 옆에서 같은 아이템을 지켜보고 있던 다른 어른이 그걸 집어가 버린 파렴치한 상황과 다를 게 없다며 격하게 반응했다.
제주에 거주하는 분들 같지는 않았는데, 아무튼 즐겁고 행복한 가족 여행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집어등을 켜고 조업하는 한치잡이 고깃배 무리가 유난히 아름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