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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J Lee Jul 15. 2024

2024. 7. 7.

스물다섯 번째 ©Myeongjae Lee

KE1324.

19:50→20:05, 탑승구 6, 좌석 35A


아내는 육지에 볼일이 있어서 목요일 밤 김포행 비행기를 탔다. 나도 비슷한 시간 제주행 비행기에 올랐다.

아내와 나는 동시에 육지로 출장 가는 일만큼은 할 수 있다면 적극적으로 피했었다. 이곳 섬에 살고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급한 일이 생기면 아이들을 봐줄 친척이나 친구가 주변에 넘쳐나지만, 우리와 같은 소위 '육지것'들에게는 제주살이의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가 주변에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종종 난감한 상황이 생기곤 하고, 그 연장선상에서 외로움과 고립감을 느낄 때가 많다. 물론 정착한 지역에서 이런저런 네트워크를 만들고, 잘 정착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아주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그래도 이제는, 많지는 않지만, 제주에 반가워해주는 사람들도 있다.

단골 국숫집 사장님 내외분. 점심때 둘째와 비빔국수와 물만두를 먹으러 갔는데, 늘 그래주셨듯, 황송할 정도로 반갑게 맞아주셨다. 물만두도 몇 개 더 얹어주신 것 같다. 오래오래 운영하시면 좋겠다.  

B책방 대표님. 첫째의 하교 셔틀까지 무사히 마무리하고 남원에 있는 B책방으로 향했다. 책을 두 권 고르고, 계산한 뒤에 대표님과 커피 한 잔을 하며 한 시간도 넘게 야구 이야기를 했다. 제주에 거주하고 있는 한화 이글스 찐팬. (그래도 야구는 두산 베어스지). 공통된 무언가로 이야기를 해봐야 개인사도 나오고 친해진다며, 다음에는 낚시를 주제로 이야기하자 하셨다. 낚시는 하나도 모르는데 공부를 좀 하고 가야겠다. 다음에는 장 국장님, 한 선생님, 현 박사님도 같이 뵈면 좋겠다. 보드카 한 병과 함께.

며칠 전에는, H 지휘자님이 문득 생각나서 전화했다며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끔씩 생각난다는 말씀에 감사했다. 이번에는 인사를 못 드렸지만, 다음에는 꼭 대면으로 뵙고 이야기 나누고 싶다.


책방을 하고 싶은 이유가 이런 거 아닌가 싶다.

물론, 사람들과 늘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는 성향을 갖고 있지만,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을 또 만나고, 그 사람을 조금씩 더 알아가고, 오랫동안 못 보면 문득 잘 지내는지 궁금하고, 어느 순간에는 만나면 진심으로 반갑고, 그런 '연결됨'을 좋아하고, 그런 관계의 즐거움을 늘 지향하는 점 때문에 서점이 하고 싶은 것 같다. 단골손님으로 인사받고, 단골손님으로 기억해 주는 책방이 있는 게 좋고 위로가 되는 그 누군가들이 또 있지 않을까.  


©Myeongjae Lee


토요일 밤, 아내를 마중하러 공항에 가다가 평화로에서 계기판에 엔진과열 경고등이 켜지며 요란한 경고음이 났다. 자력으로 해결이 어렵다 싶어 결국 자동차보험 견인서비스를 이용해 집으로 되돌아왔다. 아내는 느지막이 버스를 타고 왔다. 일요일 오전, 전화를 열 통도 더 해봤는데 휴일이라 수리가 가능한 곳은 아무 데도 없었다. 렌트를 하려니 차를 가지러, 그리고 반납하러 제주시까지 넘어가야 해서, 일단, 급한 대로 쏘카 이용법을 테스트해 봤다. 나름 편리하기는 했는데 비용이 만만치는 않았다. 당장 월요일부터 아이들 라이딩에, 출장에, 출퇴근에, 병원에, 차가 없는 불편함을 가족들이 며칠이나 감내해야 할지, 큰 숙제를 남겨둔 채 비행기에 오르려니 마음이 천금만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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