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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J Lee Jul 20. 2024

2024. 7. 12.

스물여섯 번째 ©Myeongjae Lee

KE1227.

20:30→20:45, 탑승구 10→6, 좌석 38F


긴 여정이었다.

출근 후 짧은 회의를 마치고 세종시로 향했다. 업무협의를 끝내고 바로 다시 고속버스에 올랐다. 갈 때는 두 시간 남짓 걸렸지만, 돌아올 때는 금요일 오후라 길이 막혀 세 시간 반이나 걸렸다. 버스터미널에서 김포공항까지 서둘러 가면 그래도 20:30 비행기, 그리고 22:20 마지막 버스는 탈 수 있을 것 같았다. 급히 항공권을 예매했다.

 

오늘 아침 집을 나서면서도 어떻게 될지 몰라 갈지 말지 결정을 못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충전이 덜 된 무선 이어폰과 책 한 권을 출근가방에 얼른 구겨 넣었다. 컨디션도 좋지 않아 비행기를 탈 수 있는 상황이 되더라도 갈 수 있을까 확신이 없었다. 간다 해도 급성장염으로 고생하고 있는 둘째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있을까 싶기도 했다.


그래도.

다음 주 제주에 갈 수 없는 상황이기도 했지만, 아이가 아파서 내내 마음이 쓰였고, 자동차 수리에, 출장에, 큰 아이 시험기간에, 둘째 간호에 심신이 지친 아내가 걱정되기도 했다. 이번 주, 많은 일이 있었다. 미안했다. 허튼소리로 둘째에게 헛웃음이라도 한 번 주고 싶었고, 책상까지 정리해 가며 기말고사를 준비한, 기특하기 그지없는 큰 아이에게도 수고했다 살포시 토닥여주고 싶었다. 아내에게 맛있는 커피라도 한 잔 사주고 싶었다.


도착하니 23:45.

다음날 새벽 6:30 비행기를 타고 당일치기 육지 볼일을 보러 가는 아내를 공항에 데려다주고, 돌아오자마자 큰 아이 셔틀기사로 학교-집-학교-학원-집-학원-집을 돌았다. 둘째의 빠른 쾌유를 기원하며 서귀포 “치유의 숲” 산책(왕복 총 17분)도 했다. 모명(母命) 완수.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개키고, 묵은 음식쓰레기와 재활용쓰레기를 버리고, 전기 파리채로 초파리도 십 여 마리 사냥했다. 그리고 시외버스 정류장으로 가서 아내를 픽업해 왔다. 나름 바빴다. 식구들을 위해 할 수 있는 뭐라도 할 수 있어 기뻤다.



©Myeongjae Lee


사진을 끊은 지 오래되었지만, 비행기에 오를 때마다, 매번, 어떻게든 탑승하는 비행기를 핸드폰 카메라에 담고 있다. 어떨 때는 전면, 어떨 때는 측면, 어떤 때는 날개. 어느 날은 비행기 안에서, 또는 밖에서. 찍을 수 있는 앵글이 극히 제한적이라 사진이 늘 비슷비슷하고 밋밋하다. 그래서 마음이 자꾸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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