빔 더 한 / 박태희 옮김 / 안목 / 2024
짧지만 강렬한 책.
소련의 유망한 피아니스트 유리 예고로프(1954~1988)가 1976년 연주를 위해 방문한 이탈리아에서 정치적 망명을 신청하고, 5월 19일부터 6월 15일까지 난민수용소인 파르마 수도원에 머물며 기록한 일기, 그리고 관련 기사들, 사진, 여권, 항공권 등을 모아 만든 작은 아카이브라고 할 수 있겠다.
그의 글에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 외로움,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죄책감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파르마 수도원에서 자신에 대한 처분을 기다리며 소형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옆에 두고 고개를 숙인 채 재즈음악을 듣고 있는 그의 사진 한 장이 모든 것을 말해주는 듯하다.
옮긴이의 말처럼 "지상에 남긴 흔적과 기록들을 온전히 보존"하는 행위가 왜 필요한지를 보여주는 책 같다. 나처럼 평범한 사람의 일상과 기록이 얼마나 의미가 있겠냐마는, 그래도 뭐가 될지 모르니 기록과 아카이빙을 게을리하지 말아야겠다.
5월 19일
어제 나는 정치적 망명을 요청했다. 우리 가족에게 일어날 일을 생각하면 끔찍하다.... 인생을, 모든 것을 끝내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만 몰려온다.... 두렵고 외롭고 불행하다.... 가족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 아닐까? 자러 가자. 마음이 무겁다. 신이여, 절 용서해 주세요.
5월 20일
하루가 슬프게 지나갔다.... 영사관에 편지를 보내 제발 내 가족을 괴롭히지 말라고 요청할 것이다. 가족들 생각에 눈물만 난다. 와인에 취해 망각을 구해야만 할까? 아니냐, 난 노력해서 위대한 피아니스트가 돼야만 해. 연습하자!!!
5월 30일
가족들이 너무 그리워서 머리가 터질 것 같다. 밤에는 울다 지치고 낮에는 안절부절이다. 하지만 내가 한 일이 가족들에게도 더 나은 일이란 걸 언젠가는 이해할 거야. 조만간 모든 일이 알려질 테지. 지금보다 백배는 더 상황이 나빠질 수도 있다. 나의 신이여, 절 구해주세요.
p.52 그들은 예고로프에게 박해를 받은 적이 없는데, 무엇에 대해 항의하는지 물었다. 자유국가로 정치적인 망명을 하려면 국제관습법에 따라 자신의 나라에서 받고 있는 탄압을 증명해야 한다. 피아니스트는 모스크바의 고스콘체르트가 레퍼토리, 작곡가, 콘서트홀 그리고 연주회 일정 등을 강요했다고 진술했다. 예술가로서 자신의 재능을 저당 잡혔다고 느낄 만한 충분한 이유가 아닐까? (일템포 1976년 6월 3일 목요일 / 프랑코발도 키오치)
p.83 기돈 크레머는 예고로프의 이른 죽음에 대해 ‘유리 예고로프는 그보다 오래 살았던 수많은 사람들보다 짧은 생에 훨씬 많은 흔적을 남겼다’고 말했다. (리뷰 / 파르한 말릭, 2008)
p.92 엘리제 마흐 Elyse Mach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소련을 떠났던 다른 예술가들과 마찬가지 이유로 망명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읽고 싶은 책을 읽고, 가고 싶은 곳을 가고, 연주하고 싶은 음악을 맘껏 연주할 수 있는 자유, 개인적 삶이 통제된 소비에트 연방 공화국은 감옥이었다. 동성애는 범죄였고, 5년 이상의 감옥생활, 정신병원 감금, 무엇보다 피아노를 칠 수 없게 될 것이란 두려움이 가장 컸다고 했다. (옮긴이의 글 / 박태희)
p.95 음악 자체가 되는 능력은 고통을 통해 이루어졌고 그 고통을 견뎌낼 수 있었던 비밀은 오직 그의 음악 속에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일기원본과 기사 외에도 세상을 떠나기 3년 전인 1985년이 되어서야 발급된 정식 여권, 1976년 밀라노발 모스크바행 비행기 티켓 등 유리 예고로프가 남긴 유품들로 만들어졌다.... 유리 예고로프가 지상에 남긴 흔적과 기록들을 온전히 보존하고 그래서 그의 음악이 선사한 가장 내밀하고 너그러운 공간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는 일에 온 힘을 다하는 저자를 보면, 음악은 연주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 모두에게 구원이자 생명줄이라는 생각이 든다. (옮긴이의 글 / 박태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