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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J Lee Feb 16. 2018

안드레옙스키 스푸스크 - 우크라이나의 몽마르트르

005. 우크라이나, 러시아를 낳다

안드레옙스키 스푸스크 초입의 야외 갤러리. 미술작품의 경우, 과거 소련 시절에는 6점까지 합법적으로 복제, 판매가 가능했다고 한다. ©Lee Myeong Jae


안드레이 사도는 스코틀랜드, 러시아, 우크라이나, 루마니아, 그리스 등 몇몇 나라의 수호성인으로 받들여지고 있다. 원래 직업이 어부였던 만큼 어부들의 수호성인이기도 하다. 안드레이 사도는 X자 십자가에 매달려 순교했기 때문에 이를 성 안드레이 십자가라고 부르는데, 스코틀랜드의 경우, 국기 자체가 성 안드레이 십자기(十字旗)다. 파란색 바탕에 하얀색 십자가가 X자로 그려져 있다. 러시아 해군을 상징하는 성 안드레이 기(旗)는 하얀색 바탕에 파란색 X자 십자가가 그려져 있다. 표트르 대제가 러시아 제국의 해군을 창설, 운용하기 시작한 18세기 초부터 안드레이 기가 등장했다고 알려져 있다. 성 안드레이 사도 훈장은 러시아 제국 최초의 훈장이었고, 현재 러시아 연방의 최고 등급 훈장이기도 하다. 우크라이나 해군도 성 안드레이 십자가를 차용한 깃발을 사용하고 있다. 

세바스토폴의 한 박물관에 걸려 있는 러시아 해군의 성 안드레이 깃발 ©Lee Myeong Jae

우크라이나 이야기를 하겠다고 하면서 다소 뜬금없이, 몇 차례나 장황하게 안드레이 사도 이야기를 하는 것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더 나아가 동방정교회와 동슬라브 문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그가 나름의 시작점, 또는 기준점이 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성경 속에서 안드레이 사도의 존재감은 그렇게 크지 않다. 가톨릭에서 추앙받는 친형 베드로 사도에 비하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동방정교회 맥락 속 안드레이 사도는 그리스, 마케도니아, 흑해 인근, 키예프 등 동방 지역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순교까지 한 매우 의미 있는 인물이다.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 역시 안드레이 사도를 계승하는 것으로 인정받는다.



아무튼. 

안드레이 교회에서부터 안드레옙스키 스푸스크라는 이름의 길이 시작된다. 직역을 하면 '안드레이 내리막길' 정도가 되겠다. 번지수가 위쪽으로 올라올수록 커지는 것으로 봐서는 오르막길이라고 하는 것이 옳을지도 모르겠지만, 보통은 도심과 가까운 안드레이 교회에서 시작해 아래쪽으로 내려가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는 것 같다. 영어로도 descent(높은 곳→낮은 곳)라고 표기하고 있다. 720m 길이의 이 가파른 길은 과거 키예프 루시 대공의 거주구역인 고지대와 저지대의 포돌을 연결하는 길이었다. 포돌은 당시 키예프의 상업, 무역, 수공업 지구였다. 


예술과 문화의 거리, 우크라이나의 몽마르트르라 부르기도 하는 이 길은 사계절 내내 관광객들로 붐빈다. 우크라이나를 찾는 외국인들에게는 통과의례와도 같은 곳이다. 안드레옙스키 스푸스크에는 각종 기념품, 골동품, 전통의상, 수공예품들이 넘쳐난다. 길 양 옆으로 옹기종기 자리 잡은 다양한 갤러리에서는 우크라이나 예술가들의 아름다운 작품과 감상할 수 있다. 곳곳에 맛집도 숨어있다. 5월 마지막 주 토, 일요일의 키예프 날과 8월 24일 우크라이나 독립기념일에는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온갖 부류의 예술가들과 각종 수공예품을 만날 수 있다. 덤으로, 발 디딜 틈 없는 엄청난 인파도 경험할 수 있다.


키예프의 날 안드레옙스키 스푸스크의 인파 ©Lee Myeong Jae 


이곳에서는 쉬엄쉬엄 걷는 것만으로도 눈과 귀가 즐거워진다. 추운 겨울날 역광을 받으며 꼿꼿이 서있는 이젤과 캔버스, 그 위로 떠다니는 흥정하는 사람들의 하얀 입김. 그림이 따로 없다. 머리 속에 각인되어 있는 안드레옙스키 내리막길에 대한 가장 인상 깊은 기억이다. 이따금씩 시야에 들어오는 시퍼런 드녜프르 강의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돌길을 내려가다 보면 마음이 개운해지는 것이, 마치 순례자가 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우연히 마음에 드는 물건을 하나 찾아 주인아주머니와 밀당을 하며 값을 깎는 데 성공하면 금상첨화.


                                                                        

©Lee Myeong Jae


조금 걷다 보면 키예프와는 왠지 어울리지 않는 어색한 건물이 하나 눈에 들어온다. 워낙 부조화스러워서 자연스럽게 눈길이 간다. 1904년 스코틀랜드 성을 본떠 만든 사자의 심장 The Castle of Richard the Lionheart이라는 성이다. 이 성에는 12세기 잉글랜드 왕 리처드의 이름까지 붙였다. ‘~카더라’ 통신에 따르면, 건물 자체를 잘못 지어서 유난히 바람소리가 많이 났고, 이 집으로 이사 오는 사람들마다 이를 유령 소리로 생각해 모두가 길게 버티지 못하고 떠났다고 한다. 꽤 오랜 기간 동안 빈 상태로 있다가 1983년 누군가가 호텔로 개조했다. 사진을 찍다가 우연히 만난 관광 가이드 한 명은,

“저 집은 태생이 그래서 그런지, 개보수 공사를 시작한 지 10년이 넘었는데도 마무리가 안 되고 있어요. 호텔을 개장하더라도 사람들이 아마 안 갈걸요.”


라며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다.


안드레옙스키 스푸스크 13번지. 미하일 불가코프 박물관에 걸려 있는 그의 사진 ©Lee Myeong Jae

구불구불한 길을 조금 더 내려가면 키예프 태생의 유명 작가 미하일 불가코프(1891-1940)가 살았던 집이 나온다. 안드레옙스키 스푸스크 13번지. 사람들은 여전히 그의 생가를 그렇게 부르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다소 생소하지만 불가코프는 <거장과 마르가리타>, <백위군>, <개의 심장> 등 탁월한 소설과 희곡을 집필한 작가다. 지금도 러시아, 우크라이나의 많은 극장에서 그의 작품을 무대에 올리고 있다. 1991년 탄생 100주년을 계기로 개관한 이곳 불가코프 박물관에는 그의 흔적을 느끼기 위한 문학도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콘퍼런스 참석 차 키예프에 오신 두 분의 은사님과 함께 한 번 들어가 본 적이 있었다. 문학을 전공하신 K교수님은, 약간 과장해 말하면, 매우 감격해하셨다. 다음에 여유 있게 혼자 와서 둘러보고 사진도 찍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처음이자 마지막 방문이 되었다. 한국에 돌아와서 보니 '앞으로 1년은 족히 더 있을 텐데.' 하고 미루다 놓친 것들이 많이 있었다. 너무 잘 하려고 하지 말고, 무엇이든 생각났을 때, 할 수 있을 때 하는 게 정답인 듯하다. 


불가코프 박물관 아래쪽, 2b번지에는 작지만 강한 원 스트리트 One Street 박물관이 있다. 이 박물관에는 1900년대 이 집을 거쳐갔던 여러 사람들의 소장품 6,500여 점이 보관되어 있다. 그들이 수집했던 다양한 희귀본 고서뿐 아니라 사진, 엽서, 가구, 소품 등이 전시되어 있다. 안드레옙스키 스푸스크의 역사, 문화,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일종의 아카이브라고 볼 수도 있겠다. 좁은 공간, 붉고 어두운 조명, 해독할 수 없는 문자 때문에 답답하긴 했지만, 키예프에 왔다면 만물상 같은 이 곳을 한 번 즈음은 둘러보면 좋을 것 같다. 


사실, 이 길의 공식 명칭은 안드리입스키 우즈비즈 uzviz다. 안드레옙스키 스푸스크는 러시아어, 안드리입스키 우즈비즈는 우크라이나어다. 10월 혁명 이전까지 이 길은 안드리입스키 우즈비즈라고 불렸다. 하지만, 1920년 소비에트 혁명가 중 한 명인 게오르기 리버 우즈비즈로 명칭이 바뀌었다. 1944년에 원래 이름을 되찾았지만, 1957년 다시 러시아어인 안드레옙스키 스푸스크로 변경되었다. 1991년 독립 후 다시 안드리입스키 우즈비즈가 공식 명칭이 되었지만,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이 길을 안드레옙스키 스푸스크라고 기억하고 있고, 그렇게 부르고 있다. 길 이름의 변천사에서 우여곡절 많은 우크라이나 역사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다.   


안드레옙스키 스푸스크는 12세기 <원초 연대기>에 보리체프 우보즈라는 이름으로 언급되었을 정도로 유서 깊은 길이다. 하지만 길 자체가 워낙 가파르고 좁아서 다니기가 쉽지 않았고, 거주지로서도 부적절했기 때문에 17세기가 되어서야 주변에 건물이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했다. 네모진 형태의 건물다운 건물은 19세기 말부터 세워졌다. 다만, 안드레옙스키 스푸스크의 우아하고 활력 있는 모습 뒤에는 100여 년 전 그대로의 급수 및 하수 처리 시설로 인한 불편이 숨어 있다고 한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모두에 과거와 현재가 뒤섞여 있는, 바로 안드레옙스키 스푸스크야말로 과거와 현재가 진정으로 공존하는 장소가 아닐까 싶다.


안드레예프스키 스푸스크에서는 소련 시절의 물건, 혁명 이전의 골동품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길 건너에는 레닌 얼굴을 수놓은 양탄자가 보인다. ©Lee Myeong J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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