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속 개인의 책임감 있는 태도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몰랐어요”라는 말을 너무 쉽게 듣게 되었다.
정치인이 비리를 저지르고는 “그건 보좌관이 알아서 한 일”이라며 몰랐다고 말하고, 대기업의 회장이 하청 노동자의 죽음에 대해 “그런 사고가 있는 줄 몰랐다”라고 해명한다. 어떤 이들은 환경오염이나 식품안전, 개인정보 보호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면 “그런 건 뉴스에서 보지 못했다”라고 말한다. 몰랐기 때문에 책임이 없다는 듯, 혹은 알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말하지 않겠다는 듯, 무지는 종종 도피처가 된다.
하지만 정말로 그들은 몰랐던 걸까? 아니면, 알고 싶지 않았던 걸까?
무지(ignorance)라는 말은 단순히 ‘모름’을 의미하지 않는다. 어떤 무지는 태도이고, 선택이며, 책임을 회피하는 방식이다. 특히 오늘날 우리가 가장 심각하게 마주하고 있는 것은 바로 ‘적극적 무지’, 즉 알 수 있었고 알아야 했지만 알려하지 않은 태도다.
철학적으로 무지는 대체로 세 가지 형태로 나눌 수 있다.
1. 소극적 무지
정보에 접근할 기회 자체가 없었던 상태다. 교육이나 자원, 사회 구조적 한계로 인해 어떤 사실을 인지할 수 없는 경우가 해당된다. 예컨대, 문해력이 없는 이가 디지털 권리나 법률 개념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것은 개인의 태도보다는 구조의 책임이 크다.
2. 적극적 무지
정보가 주변에 넘쳐났고, 접근성도 충분했으며, 학습 능력도 갖추고 있었지만, 무관심하거나 태만하여 알아보지 않은 상태다. 이 무지는 몰랐다는 사실 자체보다, 몰라도 된다고 여긴 태도에 문제가 있다. 현실에 대한 외면, 불편함을 회피하는 심리, 사회적 책임에 대한 무관심이 바로 이 영역에 속한다.
3. 선택적 무지
알고 있었거나 충분히 알 수 있었지만, 알고 나면 감당해야 할 책임이 두려워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경우다. 이는 적극적 무지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간 의식적 방어 기제이며, 종종 개인이 아니라 집단 전체가 공모하는 회피 구조이기도 하다.
이 글이 다루고자 하는 가장 중요한 문제는 바로 적극적 무지다. 정보의 홍수 속에 살면서도 아무것도 몰랐다고 말하는 태도, 보지 않았고 듣지 않았고 알 필요도 없었다는 식의 무관심, 그리고 그 무관심이 만들어내는 사회적 책임의 공백이 오늘날 우리 사회를 좀먹고 있다.
우리는 스마트폰 하나로 세계의 뉴스를 실시간으로 접하고, 무료 강의와 리포트를 통해 전문 지식까지 쉽게 얻을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그건 몰랐다”라고 말한다. 이는 정보의 부족 때문이 아니라, 정보를 받아들이는 데 드는 주의력, 노력, 감정적 에너지를 기울이지 않겠다는 무언의 선택 때문이다.
적극적 무지는 더 이상 무해한 상태가 아니다. 그것은 책임 회피의 구조적 조건이자, 사회적 약자에게 피해를 전가하는 도구가 된다.
정치적 무지가 대표적인 적극적 무지의 사례다. 지하철 요금, 대학교 등록금, 건강보험, 주거 정책, 기후 대응, 노동 조건. 이 모든 것은 정치의 산물이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정치엔 관심 없어”, “나는 그런 거 잘 몰라”라고 말한다.
하지만 정치에 대한 무관심은 중립이 아니다. 기득권에 대한 암묵적 동의이자,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 방기다. 민주주의란 결국 정보를 알고, 토론하고, 감시하고, 판단하는 시민의 행동을 통해 작동한다. 그 행동을 거부한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의 삶을 타인에게 맡기겠다는 선언에 다름 아니다.
현대는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다. 그러나 너무 많기 때문에, 우리는 이제 정보를 선택적으로 소비한다. 소셜 미디어는 우리가 보고 싶어 하는 것만 보여주고, 알고리즘은 불편한 진실을 걸러낸다. 우리는 “모르겠다”는 말로 방어할 수 있는 더 정교한 장치를 손에 쥐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 시대의 ‘몰랐음’은 더 이상 면책이 되지 않는다. 몰라서가 아니라, 알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몰랐던 것이라면, 그것은 무지이기 이전에 무책임이며, 그 무책임은 사회 전체에 파급력을 가진다.
적극적 무지는 아래 조건이 충족될 때, 도덕적·사회적 책임으로 전환된다
.
접근 가능성: 정보에 도달할 수 있는 위치와 수단을 가지고 있었는가?
인지 능력: 그것을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는 기본적인 교육과 능력이 있었는가?
실천 가능성: 알고자 하는 의지와 여건이 있었음에도 그 기회를 스스로 포기했는가?
결과의 중대성: 그 무지로 인해 타인이 예측 가능한 피해를 입었는가?
이 질문들에 “예”라고 답할 수 있다면, 그 무지는 더 이상 단순한 상태가 아니라, 회피된 책임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물론 모든 무지를 개인에게 돌릴 수는 없다. 교육의 불평등, 언론의 편향성, 알고리즘의 필터 버블, 제도의 차별성 등은 여전히 강력하게 작동한다. 그러나 구조가 정당화되지 않는 지점, 즉 스스로 그 구조를 넘을 수 있는 기회와 조건을 가지고 있음에도 행동하지 않은 경우 그때부터는 적극적 무지가 된다.
우리는 구조의 산물이지만, 동시에 그 구조를 반성적으로 물을 수 있는 존재다. 그것이 인간의 윤리성이다.
기술 시대의 무지, 더욱 치명적이다.
오늘날 우리는 기술이 지배하는 세계에 살고 있다. 인공지능은 채용, 대출, 보안, 교육 등 모든 영역에 침투해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알고리즘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어떤 편향을 내포하는지, 어떤 사회적 결과를 초래하는지에 대해 무관심하다. 아니,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기술과 무지의 결합은 단순한 정보 부족이 아니라, 권력의 집중과 불평등의 자동화를 낳는다. 무관심한 사이, 알고리즘은 누가 혜택을 받을지 결정하고, 데이터는 누구의 권리를 침해할지를 판단한다.
적극적 무지를 넘어서려면, 먼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한다.
“나는 정말 몰랐는가, 아니면 알아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인가?”
그리고 그 질문에 정직하게 답했다면, 다음 행동은 분명하다.
“그때는 몰랐지만, 이제는 알고자 노력할 것이다.”
‘안다’는 것은 머릿속에 정보를 쌓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행동의 변화, 태도의 전환, 책임의 수용이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인간은 단순한 정보 소비자가 아니라 윤리적 주체가 된다.
우리는 모두 완전하지 않다.
그러나 무지에 머물겠다는 의지와, 무지에서 벗어나겠다는 의지는 전혀 다른 것이다.
오늘날의 가장 위험한 윤리적 태도는 무지 그 자체가 아니라, 적극적 무지에 안주하려는 삶의 방식이다.
적극적 무지의 시대에, 알고자 하는 태도, 알고자 하는 삶이야말로
우리가 지켜야 할 마지막 윤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