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빨간 옛사랑


< 홍옥이 사라지기 전에  딸래미가 찍어 준 사진>


제가 말입니다...


홍옥을 너무 너무 좋아한답니다.

복숭아 다음으로 사랑하는게

바로 새빨간 홍옥입니다.


어릴땐 백설공주 사과라서 좋아했어요.

이걸 먹으면 백설공주가 되는 줄 알았지요.

엄마 늘 한 궤짝씩 사서 항아리에 보관해 두셨어요.

옛날 , 그러니까 70년대에는 지금처럼 마트가 있던 시절이 아니었어요.

동네 청과물 가게 희영이네 ( 초등학교 동창) 에 가면  콩나물에서 과일까지 모두 논스톱으로 살 수 있었어요.

손이 컸던 엄마는 과일 좋아하는 삼남매를 위해

아이보리색 나무 궤짝에 담겨 있는 걸

짝으로 사오셨는데…..

우리집 금성냉장고에 그 많은 사과가. 모두 들어가질 않았어요.

결국 아파트에는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항아리를 구하셔서

그 안에 사과, 강정, 튀밥 이런걸 가득 담아 두셨답니다.

현관을 들락거리면서 항아리 속에 손을 넣는

기쁨은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거에요.


저는 사과를 먹기 전에 어떤 의식같은걸 치렀는데요

사과를 끗이 씻은 다음

반드시 옷소매에 슥슥 닦아서

먹기 직전에 반짝반짝 윤이 나게 해주어야

먹는 맛이 제대로 났어요.

엄마는 , 기껏 닦아서 지저분한 옷소매에

왜 다시 문지르냐고 매번 혼을 내셨지만

저는 옷소매에 윤기나게 닦지 않으면

맛이 없었어요.

크게 한 입 베어 물면

사과즙이 주르륵 흘러 내리면서

밀도 있게 새콤하고 아삭한 과육이

입속에서 춤을 추었지요.


그런데 말이지요..

요즘은 홍옥을 구하기가 왜이리 어려운걸까요.


갑자기 홍옥에 꽂혀서

몇날 며칠 인터넷을 뒤져서

홍옥을 발견하고 3kg 3만원이란 거금을 주고서

주문을 했지요.( 제정신 아니었습니다.ㅠㅠ)


스스로 먹고 싶은게 떠오르는 일은 극히 드문데

아, 이 홍옥은 갑자기 너무 먹고 싶어서

주문하고 보니

콩알만한거 열개 남짓 저의 손에 들어왔지 에요.


3kg이 요만큼이었단 걸 저는 몰랐어요.

어제 받아서 하루에 3개씩

우적 우적 먹다보니 벌써  다 먹어가요.ㅠㅠ

그래서 곧 슬퍼질 예정입니다.


떨어지지 않게 항아리에 홍옥을

꽉꽉 채워 주시던 엄마 생각 나는군요.

우리엄마라면 내가 먹고 싶다고

생각도 하기 전에

희영이네 가게 가서 주문을 하셨을텐데요.

입안에서 요동치는 홍옥만큼의 그리움이 터져 나오네요.


그래요.

요며칠 저는 홍옥보다

엄마가 많이 보고 싶었나 봅니다.

좀 더 나이들면  직접 홍옥을 심고 키워야겠어요.

알알이 맺히는 빨간 홍옥을 보면

엄마랑 함께 있는 기분일 것 같아요.


홍옥은 빨갛고 충만했던 엄마의 마음이었습니다.

어느 가수의 노래처럼

엄마는  붉은 옛사랑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https://youtu.be/wWOky-2Ab9Q




매거진의 이전글 잊을 수 없는 계절인데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