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아슬아슬했던 산타놀이



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


20년 가까이 사용하던 내 키만한 커다란 트리가 있었는데  막내가 고3때 학교행사에 잠시 사용하고 가져온다고 하고선 그냥 졸업을 해버렸다.

그 후부터는 작은 리스 하나 걸고 우리 가족을 상징하는 인형들을 앉혀 둔다.


루돌프는 남편, 눈사람은 나, 토끼는 큰아이, 제일 예쁘게 차려입은 공주는 막내.

그리고 양 한마리는 호주여행에서 모셔 온 것이다.

그런데 자고 일어나면 저 인형들의 위치가 수시로 바껴있다.

아이들이 자신들의 인형을 루돌프와 눈사람 사이에서 이리 저리 옮겨둔다.


인형의 위치를 보고 아이들의 감정상태를 파악해 본다.

자매끼리 다투기라도 한 날은 토끼와 공주가

 뚝 떨어져 있고,

내가 잔소리를 하면 루돌프, 토끼, 공주가 붙어 있고 눈사람과 양은 뚝 떨어져 있다.

그리고 모두 사이가 좋을때는 저렇게 누가봐도 이상적인 모습으로 앉아있다.


크리스마스를 떠올리면 아이들 어릴때의 추억이 참 많다.

큰아이가 4살때쯤부터 남편과 나는

 ‘ 산타놀이’를 했었다.

나는 남대문시장에 가서 빨간 천, 하얀 천,

솜을 사서 며칠을 밤새면서 산타옷을 손바느질로 박음질했었다.

그렇게 큰 산타옷을 어떻게 손으로   바느질했던건지

지금은 그렇게 못할 것 같은데,

그때는 오로지 아이를 기쁘게 해주겠다는

 신념 하나로 밤을 새도 힘든걸 모르고

 쪼그리고 앉아서 만들었다.


시댁과 친정의 문화는 너무나 달랐다.

친정은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축하할 일이 생기면  서로 과할 정도로 축하하고 선물해주고 안아주고 그랬다.

그런데 남편은 군인이셨던 아버님, 아들만3형제

그사이에서 어머님은 물까지 떠다 줘야 하는 입장이셨다.


이렇다 보니 늘 뭔가 이벤트를 만들고 서프라이즈를 즐기는 나를 따라오느라 남편은 꽤나 진땀을 흘렸으나

그래도 고마운건 한번도 거부하지 아니하고 내 뜻을 따라 움직여 준 것이다.

나중엔 본인도 즐기는듯 했다.


암튼 크리스마스 전날 산타옷은 완성되었고

이제 남편이 그 옷을 입고 산타역할을 완벽히 해주기만 하면 되었다.

우리의 계획은 이러했다.

내가 잠시 전등을 끄면 남편이 안방으로

 후다닥 가서 얼른 산타옷으로 바꿔 입고 선물보따리를 둘러메고

안방 베란다를 넘어서  쿵쾅 쿵쾅 하면서 산타느낌의 스텝으로 거실로 걸어 와야 했다.

그리고 음성변조하여 차분하고 격조있게

카드를 읽어주고 크리스마스 케잌의 불도 함께 끄고 기념촬영까지 해주어야

산타의 역할이 성공적으로 끝나는 것이다.


우리는 아이에게 “ 예림아, 크리스마스는 아기예수 탄생하신 아주 기쁜 날이야.  그리고 착하고 건강하게 잘 지냈으니

산타클로스라는 할아버지가 선물도 주고 가실거야.  우리 눈감고 기도하자.” 라고 일러주고 불을 탁 껐다.

그리고 남편은 잽싸게 소리죽여 안방으로 가서 단 5분만에 환복을 하고 수염도 붙이고 낑낑거리며 선물보따리를 끌고 나타나 주었다.


그런데……..

동화책에서만 보던 거대산타를 보는 순간

아이는 기절할듯 울며 아빠 어디갔냐며 찾기 시작했다.

나도 산타도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우는 아이를 달래느라 진땀이 났다.

계속 무섭다며 우는 아이를 위해 산타는 잠시 퇴장을 했다.

그리고 다시 아빠의 모습으로 돌아와 아이를 진정시켰다.


산타의 선물을 감사히 받으라고.

산타할아버지는 무섭지 않다고.

아빠는 잠시 일이 있어서 밖에 나갔다 와야 한다고.

그렇게 달래주고 남편은 다시 후다닥 사라져 산타가 되어 돌아왔다.

두번째 다시 돌아온 산타를 보고는 아이가 울지 않고 선물도 받고,  산타가 읽어주는 카드도 받고, 이렇게 기념촬영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임무를 완수한 산타는 내년에 또 보자며 홀연히 안방으로 사라졌다.


그후로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이 행사를 했던것 같다.

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간 후 그동안 산타와 찍은 사진을 보다가

아무래도 산타눈이 아빠랑 너무 닮았다면서

슬슬 의심하기 시작해서 우리의 아슬아슬하고 긴박했던 산타놀이도 조기 마감을 해버렸다.


막내에게도 해주려 했는데 5살 차이나는 언니를 둔 덕에 세상을 너무나 일찍 알아버려 산타고 뭐고 실제 존재하지 않는다는걸 이미 알아버린 막내에겐 그냥 자고 있을때

머리맡에 마로니 인형놓아주는 걸로 대신했다.


자식을 키우면서 힘들고 벅차고 두려운 일들이 많았지만

한편으로는 아이와 함께 했던 수많은 일들이

그 시절의 우리들로 머물게 해주어 참 고맙고 다행스럽다.


올 크리스마스에는 성탄예배후  가까운 곳으로

여행을 갈 계획이다.

넷이서 함께 할 수 있는 시간들이 점점 소중해 지고 있다.

그 시간들 동안 정성을 다해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누군가의 절망 누군가의 기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