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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천원의 행복

쌈밥♡

쌈밥♡

상추는 깨끗이 씻어서 물기를 쏙 빼놓았다.


된장, 고추장, 고춧가루 조금, 참기름, 견과류 , 깨소금,  다진 마늘, 다진 양파매실청을 섞어서 쌈장을 만들었다.


상추에 잡곡밥을 동그랗게 빚어서 감싸고 고소한 쌈장을 조금씩 얹어 주었다.

요즘 한창 맛있는 딸기 몇 알을 더하여 낸다.


우수가 지나고 나서 봄볕이 완연하다.

곧 거리에서도 꽃을 볼 수가 있을듯 하다.

오늘은 내 밥상에 꽃을 피우고 싶었다.

그래서 상추쌈을 만들고 빨간 딸기를 더하였다.




쌈을 좋아해서 자주 사는 편인데

가장 간단해 보이는  이 먹거리가

내게는 제일 신경쓰이는 먹거리이다.


생야채로 먹어야 하니 우선 깨끗이 씻어야 해서

베이킹 소다를 풀어 준 물에 담가 두었다가

흐르는 물에 한 잎 한 잎 찢어지지 않게 씻어서

채반에 가지런히 줄세워 놓고 적어도 한시간은 두어야 물기가 쏙 빠진다.

그러니 쌈밥을 한번 먹으려면 적어도 한시간 전에는 씻고 물빼는 작업을 해야한다.


전에 친구들과 이야기하다가 채소 물빼기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었다.

친구들은 흐르는 물에 씻어서

 바로 먹는다고 했다.

물기를 모두  제거하고 먹는다는 나의 이야기에 친구들은 “ 도를 닦아라!” 라고 했다..




8살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예전엔 국민학교 (지금의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왼쪽 가슴엔 명찰을 오른쪽 가슴엔 손수건을 달고 다녔다.

콧물이 흐르면 닦으라는 취지였던듯한데

난 콧물도 흘리지 않았을뿐더러

그 꽃무늬 커다란 손수건은

고무줄 놀이할때 펄럭여서

 여간 성가신게 아니었다.

“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입니다~~”  

고무줄을 넘을때면

유난히 긴 손수건이 얼굴을 막아서

짜증도 났었다.


그날도  현관문을 열자마자

내일부터 손수건을 달지 않겠다고

버럭대며 소파에 드러누웠다.

빨리 씻고 집에서 입는 옷으로 갈아입으라고 성화이신 엄마를 약올리기라도 하듯…


매일 담임선생님이 그 손수건 검사를 하셨기때문에

그걸 달지 않겠다는건 ‘ 등교거부’와 같은 것이었다.

엄마는 한마디 던지셨다.

“ 오늘은 삼겹살 먹을거다. 그리 알아라.”


삼겹살을 먹는다는 것은 상추쌈도 함께 등장한다는 것이다.

어릴때부터 나는 상추쌈을 좋아했고,

고추를 씻어서 쌈장에 푹 찍어 먹는걸 좋아해서 여름이면 물만난 고기처럼

상추를 먹어댔었다.


자칭 ‘ 블란서 여배우 손’ 우리 엄마는 가늘고 길다란 손가락으로

상추를 한 잎씩 집어 구멍이 촘촘한

노란 양푼이에 나란히 세우셨는데

그 모습이 마치 꽃꽂이 하는것 같다고 느꼈었다.


문제의 그날도 소파에 길게 늘어져 누워서 엄마의 상추꽃꽂이를 감상하면서

상추쌈을 먹을 기대에 지치는 줄 모르고 있었다.


드디어 엄마가 오동나무 밥상을 펴자

나는 잽싸게 일어나

밥상차리는 일에 동참했다.

그것은 엄마를 돕기위함 보다는

내가 제일 먼저 먹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나를 그렇게 만들었던 것 같다.  

( 지금은 안그러는데 그때는 정말 식탐이 대단했던 것 같다.)


파릇한 사귀에 밥을 얹고

엄마만의 달큰한 쌈장을 찍어 올리고

커다랗게 싸서 입에 넣으면

 손수건이고 뭐고 기억도 안나고

세상이 다 내꺼같았다.


한참을 맛있게 먹다가 배가 서서히 불러오면

한입에 먹던 쌈을 슬슬 반입씩 나눠 먹기시작하는 순간이 온다.

마지막에 반을 물었는데

무언가 내눈에 들어왔다.

하얀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었다.

밥알이 움직일리는 없었다. 그럼 뭐지?

벌레였다. 징그러웠다. 징그러웠다. 징그...

어쩜 내 뱃속에 들어갔을지도 모른다.


엄마는 괜찮다고 하셨지만

걱정되서 앓아 누운 나는

결국엔 회충약을 먹고 조금 안심을 했다.

내가 자란 후에 엄마에게 물어봤었다.

회충약이 상추벌레도 죽이느냐고….

엄마는 “ 몰라. 그냥 그때 니가 하도 울어서 집에 있던  회충약 하나 준거지. 벌레 잡는건 다 똑같지 않겠냐?” 라고 하셨다.

난 그 약을 먹고 얼마나 안심이 됬었는데…


그날 이후 식당에서 나오는 상추를 먹지 못한다.

그리고 집에서도 몇단계에 걸쳐

세척을 하고 물기를 쏙 빼야 먹을수가 있다. 일종의 트라우마인것이다.


( 3천원짜리 물빼기 기구)


얼마전에 딸들이랑 외출했다가 다이소에 갔는데

득템을 한 것이 있다.

야채 물빼기 기구이다.

여러번 사려고 알아보았는데

가격이 제법 비싸서 이제껏  사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3천원이라니…..

비까지 오는날이었는데

 한 손엔 우산, 한 손엔 이 커다란

기구를 껴안고 돌아오는데 창피한것도 몰랐다.


일일이 씻어서 손으로 탈탈 털고 물빼는건  쉽지가 않다.  여러장 씻을때는 팔도 아프다.

그런데 이 기구로 물을 빼니까

 얼마나 편하고 안심인지  모른다.


3천원이 내게 가져다 준 이 기쁨은

최근 내가 느낀 기쁨중에

가장 커다란 기쁨이었다.


오늘도 굿모닝^^

https://youtu.be/HiJvzBtVSj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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