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찢어진 사진이 아니라 다행입니다

이 노래를 기억하세요?

https://m.youtubecom/watch?v=FXfyvQl2bD0&feature=share

회상 remembrance ; 지난 일을 돌이켜생각함.


지난 일을 되돌아 보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나의 경우 잊어버리려고 노력할수록 더 또렷해지고 박제가 되어버린다.


그래서 오히려 떠오르는대로 또는 생각나는대로 자연스럽게 두면 서서히 ‘망각’이란 이름으로 포장이 된다.

그렇게 잠시 또 잊고 살아간다.


우리가 기억하는 것들 중에 끔찍하게 잊고 싶은 것이 있는 반면

오래 기억하고 싶은 일들도 있다.

그러한 것들을 우리는 ‘추억’이라 부른다.

웃으면서 추억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슬프지만 가끔 추억할 수 있는 일들도 있는데

나는 그것을 ‘회상’이라고 말하고 싶다.


1993년 11월 세쨋주 토요일 저녁.

남편을 소개받고 세번째 만났던 날이었다.


그때는 휴대폰이 없었던 시절이라 집전화로 서로 통화하며 만날 약속을 정했었다.

나의 직장이 명동이었기때문에 남편은 늘 나에게 약속장소를 정하도록 했었다.

지금처럼 카페가 많던 때도 아니고

간혹 카페라는 곳에 가보면 불빛이 어두컴컴하고 주로 술을 파는 곳이었다.


명동에 내가 알고 있던 카페는

유네스코 회관 옆골목에 깊숙이 자리잡은

‘ 숲속의 빈터’ 라는 곳이었다.

그 곳은 제법 맛있는 커피도 팔았고 주인이 아주 지적인 여사장님이어서 마음에 들었던 곳이다.

나는 남편을 그곳에서 만나기로 했다.


일부러 약속시간 5분 늦게 약속장소에 도착했는데 이 남자가 안보인다.

그렇게 앉아서 10분, 30분……기다리면서

쌓은 성냥개비성이 여러 개.

1시간이 지나면서부터는 테이블 위에 한 뼘은 쌓여 있던 냅킨에 ‘ 감히 나를 이런식으로? 나타나기만 해봐라. 보란듯이 정강이 한

발로 차고 끝낼 것이다’ 라고 수도 없이 쓰면서 억울해서 눈물을 뚝뚝흘리다가 2시간이 흘러버렸다.


욕하면서 2시간을 보냈는데 그때부터는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이사람이 오다가 혹시 교통사고라도?

별별 생각이 다 들면서 일단 집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카페를 나오는데 ….

그 엘레강스한 여사장님이 나를 불러 세웠다.


“ 누군가를 오래 기다리신것 같은데 …”

“네. 소개받은 남잔데 안나타나네요.”

“ 아! 그래요? 명동성당 쪽에도 숲속의 빈터가 한 곳이 더 있어요. 거기 전화해서 혹시 계시는지 물어보세요.”

라면서 내 손에 30원을 쥐어 주시는 거였다.


됬다고 손사래치다가 그 사장님이 어찌나 강력하게 30원을 쥐어 주시는지…..

난 카페 한쪽으로 가서 주황색 공중전화기에 동전을 넣었다.

다이얼을 드르륵 돌리면서

‘ 아니야, 절대 그럴리 없어. 내가 분명히 유네스코 회관 옆이라고 수도없이 외쳤거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곳에 있다면……

둘 중 하나다. 난청이거나 아님 내 말을 흘려 들었거나.’


수화기 너머로 “ 김 ㅇㅇ 씨 계시나요? “ 쩌렁쩌렁한 사장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잠시후 “ 여보세요…” 어디서 많이 듣던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좌절의 순간이었다. 난 차라리 이 남자가 그곳에 없길 바랬다.


우여곡절 끝에 명동 한복판에서 만났다.

그런데 이 남자 말이 너무 웃긴다.

유네스코 회관은 기억도 못하고 있고

막연하게 명동 숲속의 빈터만 물어 물어 갔다는 것이다.


난, 그날 저녁에 많은 고민을 했었다.

만난지 얼마 안됬으니 그냥 헤어질까? 싶었는데

갑자기 내 손을 잡고 자기 주머니 속으로 가져가는 것이다.

“ 춥지?”


그때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노래가 있었다.

바로 김성호의 < 회상 > 이었다.

옆에서 남편이 뭐라 뭐라 계속 변명아닌 변명들을 늘어놓고 있었는데 하나도 들리지 않았고

내 귀에는 이 노래의 한 소절이 딱 박혔다.

‘ 찢어진 사진 한 장 남지 않았네….’


그래서 마음 먹었다.

좋아, 헤어질때 헤어지더라도 사진 한 장 남길때까지는 만나보자고.

나중에 이 귀중한 시간들을 그냥 흘려 보냈다고 생각들면 그게 더 억울할 것 같아서였다.

내나이 스물 여섯 겨울이었다.


그렇게 만나고, 만나고 하다가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돌이켜 생각하면 난 그날 귀인을 두 명이나

만난셈이다.

카페 여사장님과 <회상> 을 불러주어

내마음을 말랑말랑하게 해주었던 김성호.


지금은 찢어진 사진이 아니라 둘이서 가정을 이루어서 아이들과 함께 찍은 사진들을 보면서 그날을 회상한다.


얼마전에 우연히 김성호씨의 ‘회상’ 영상을 보게 되었는데

아….. 그에게서도 나만큼이나 세월의 흔적이 보인다.

건축학도였던 김성호씨는 곱게 나이가 들었구나 싶다.

목소리는 그 시절 그대로였다.


남편은 아직도 여전히 나의 말을 귀기울여 듣지

않는다.

그럴때마다 이 노래를 듣는다.

그래.... 지금 남길 수 있는게 찢어진 사진이

아니라서 다행이다... 이러면서.


< 김성호 / 회상 >


바람이 몹시 불던 날이었지

그녀는 조그만 손을 흔들고

어색한 미소를 지으면서

나의 눈을 보았지 음

하지만 붙잡을 수는 없었어

지금은 후회를 하고 있지만

멀어져가는 뒷모습 보면서

두려움도 느꼈지 음

나는 가슴 아팠어

때로는 눈물도 흘렸지

이제는 혼자라고 느낄때

보고싶은 마음 한이 없지만

찢어진 사진 한장 남질 않았네

그녀는 울면서 갔지만

내 맘도 편하지는 않았어

그때는 너무나 어렸었기에

그녀의 소중함을 알지 못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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