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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깨는 일


( 새로 장만한 컵)


아침마다 남편은 원두를 내려 드립커피를 텀블러에 담아서 출근한다.

재택근무를 해도 정해진 시간에 커피를 내려서

쪼르륵 소리와 커피향이 집안 가득하다.

간혹 내 기분이 좋지 않은 날도

이 커피향은 어김없이 퍼져 얄밉기도 하고 불협화음같지만 이내 동화가 되어간다.


분주하던 차에 희안한 일이 발생했다.

내가 좋아하던 스타벅스 커다란 머그컵 위에

드리퍼를 얹었는데 그게 희안한 각도로 빠져버려서

드리퍼와 컵이 한몸이 되고 말았다.

이리 저리 굴려보아도 뺄  있는 방법이 없었다.

1년 전에 큰 맘먹고 내가 나에게 선물한 컵이다.


  없이 한 몸이 된 컵과 드리퍼를 신문에 싸고 비닐봉지에 넣어 망치로 두드려야 했다.

마침때 내가 좋아하는 컵이 두 동강 나고

무사히 드리퍼를 구해냈다.

내 손으로 내 사랑하는 컵을 깨버린 것이다.


사실은 망치를 들고서 잠시 갈등했었다.

내가 좋아하는 나의 컵을 두드릴것인가

이탈리아 여행에서 샀던  남편이 좋아하는 칼리타 드리퍼를 두드릴것인가....


 컵 속에 빠진 드리퍼를 깰 수도 있었으나

나는 나의 컵을 깨고 남편의 드리퍼를 구했다.

스스로 눈물나게 헌신적인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컵이 깨지는 순간 내가 부서지는듯

잠깐의 고통이 있었으니까.


인간관계  특히 부부관계에 대해 생각해본다.

상대에게 고쳐달라고 요구하고 재촉하는것보다

차라리 내가 깨지고 변하는게 속편하다는 것을 알겠다. 오래 살아보니 그것이 현명하다는걸

알겠다.


쓸데없이 입구가 커다란 컵을 사용해서 벌어진

사단이니

이번에는  드리퍼의 넓이에 꼭 맞는 컵으로

꿨다.


내일도 아무일 없었던듯

쪼르륵 똑 똑 똑  커피가 내려지고

집안은 이내  커피향으로 가득할 것이다.


내 마음이 쇼팽의 왈츠처럼 동동거린다.


https://youtu.be/9RXkTbuCuv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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