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내 취향이 아니야

에비 산도( 새우튀김 샌드위치)



에비 산도 ( 새우 샌드위치)


며칠 전에 마켓컬리에서 배송비 무료

금액 맞추느라  노바시 새우를 샀다.

껍질과 내장이 깨끗이 제거 되어 있는

가느다란 새우이다.

30마리 7900원이고 가격이 너무나 훌륭하다.


밤새 바람불고 비가 주룩거리며 내리더니

새벽에는 온 세상이 비에 젖어 있고

비는 그 사이 멈췄다.

오늘은 태풍때문에 식구들 모두 재택근무이다.

덕분에 느긋하게 7시에 일어나 노바시 새우 녹여서 깨끗이 씻은 후 꼬리까지

물기를 깨끗이 닦아내고

 소금, 후추, 파프리카 가루 뿌렸다가 밀가루, 계란, 빵가루 묻혀서 기름에 두 번 튀겨냈다.


통밀식빵은 바싹 구운후 소스를 양쪽에 바르고

( 소스는 마요네즈, 레몬즙, 메이플시럽 조금 섞어 만들었다.)

냉장고에 있는 자투리 야채들 모두 채썰어 두껍게 펴주고 ,튀긴 새우 몇 마리씩 올린 후 샌드위치 페이퍼에 단단히 감아준다.

양상추를 넣어야 맛있는데 요즘 너무 비싸다. 그래서  양배추, 상추, 적양배추,양파 등등을 곱게 채썰어 넣었다.


식구들 일어나자 마자 한 개씩 물려준다.

아이들은 새우가 바삭해서

너무 맛있다고 호들갑이다.

식탁에 마주 앉은 남편에게 물었다.

“ 맛이 어때?”

“ 음…. 먹을만 해.”


남편은 늘상 맛있다는 표현을 하지 않는다.

그냥 ‘ 먹을만 해’ 라고 하면 그게 최고의 표현이란걸 나는 안다.

근데 오늘은 왠지 다시 한 번 묻게 되었다.

“ 맛이 어떠냐구.”

“ 사실… 내 취향은 아니야…. 사실, 나는 튀김을 안 좋아해. ㅎㅎㅎ”


어이없어 웃음이 터져나왔다.

튀김을 싫어한다고?


결혼하고 어느날 시댁에서 시어머니가

무언가를  만들어 주셨는데

시댁의 온 식구들이 맛있다고 머리를 맞대고 먹는데…… 바로 ‘덴뿌라’ 라는 기이한 음식이었다.

나는 결혼전까지 그 ‘덴뿌라’라고 일컫는

 소고기 튀김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어떻게 보면 탕수육에서 소스만 뺀 음식인데 나는 그 덴뿌라가 너무 싫었다.

어머니는 두 세번 튀겨야 바삭하다고

 여러번 튀기셨는데

기름에 젖은 그 덴뿌라볼때마다 울렁거리고 별로 먹고픈 마음이 들지 않았지만

그래도 시어머니가 해주시니  맛있다고 해가며 먹었었다.

그때마다 남편을 보면  얼마나 맛있다고 먹는지 얄밉기까지 했었다.

나는 무엇이든 잘 먹는 사람이니 입맛에 맞지 않아도 그런대로 감사하며 먹었던 것 같다.


그렇게 ‘덴뿌라’를 좋아하고 맛있게 먹으면서

 자기 어린시절에도 그 덴뿌라가 그렇게나 맛있었다고 했던 남편이

오늘 아침에 자기는 튀김을 안좋아한다니  

 기가 막혔다.

사실, 튀김은 내가 싫어한다. 하지만 비도 왔고 단백질 풍부한 새우도있고 하여

새벽부터 바삭하게 튀겨서 에비산도를 쥐어줬건만.

다 먹고나서 튀김을 싫어한다는 그 말에 나도 순간 삐짐이 올라와서

앞으로는 우리 셋이서만 맛있는거 해먹고

당신께는 김치찌개만 드리겠노라고 버럭해버렸다.


나는 한동안 남편 공대생이어서

 표현이 마음과 달리 서툰것 이라고 생각해왔는데 곰곰 생각해 보니

옛날 옛날에 스무살때 소개팅했던 아무개씨는 공대생이어도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그 소개팅남은 바지 뒤에 도끼빗을 꽂고 나오는 바람에 내가 질색을 하고 두 번도 만나지 않고 끝을 냈지만.)

남편은 공대생이라 표현이 드라이한 것이 아니고 원래가 그런 사람인 것이다.

아들 3형제인 집에서 어머니가 딸 키우듯

 살갑게 하지는 않으셨을테고,

아버님도 남자이니

한 집에 남자 넷과 여자 한 명이 살면서 말캉거리는 대화는 이어나가기 어려웠을 듯 하기도 하다.

그렇다!  남편은 자라면서 섬세함을 배우지 못한 것이다.


반면에 나는 자라면서 부모님으로부터

 무한대의 사랑표현을 들으면서 자랐고,

 늘 칭찬속에서 살아왔다.

생일이면 온식구가 축하해주고 결혼할때까지도 아버지가 안아주고 뽀뽀해주고 그렇게 자랐다.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도 그렇게 한다. 아직도 궁둥이 툭툭 두드려 주고 안아주고 강아지 품듯 부비고…. 사랑한다, 예쁘다, 기특하다, 잘한다…를 입에 달고 산다.

남편에게 슬쩍 알려주면 너무너무 쑥스러워 하면서 어렵게 한 마디 거든다.


오늘 아침 사건은,  어찌보면 별 일이 아니고

남편도 그냥 내가 묻는 말에 낚여서

해맑게 웃으며  솔직하게 말했을 뿐인데

내가 그냥 욱 하고 올라왔다.

남편이 “ 아이고, 바삭하게 잘 튀겨졌네. 그런데

난 에그샌드위치가 좀 더 맛있더라.  고생했어.” 라고 했다면 얼마나 고마웠을까.

30년 가까이 내가 '섬세함' 을 가르치고 있건만

아직도 제자리인 듯.


오늘 점심은 김치찌개 한 솥단지 끓여서

안겨 줄 작정이다.

말 한마디로 천 냥빚 갚는게 아니라

남편은 김치찌개 한 솥을 얻었다.


이게 '나'란 여자의 복수이다.


https://youtu.be/VPeXz0OIuCY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꽃밭에 찾아 온 구조조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