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헤어졌지만 아직 헤어지지 않았다

어제 오후.

빗소리가 예뻐서 혼자 걸었다.


내집 앞은 온통 숲이고 공원이다.

양재천을 건너서 양재 시민의 숲과 서초 문화예술공원을 돌고 교육문화회관 공원을

걸었다.

내가 혼자 걸었던 건 동생만을 기억하고

싶어서였다.


오늘은 동생이 하나님 품으로 간 날이다.

동생이 떠난지 벌써 5년.

의사의 선고가 끝나고도 한동안 동생의 손은

따뜻했었다.

그리고 우리가 하는 말들을 다 듣고 있는듯

눈물도 주르륵 흘렸었다.

동생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참 평온한 모습이었다.


동생을 납골당에 두고 오던 날은 첫 눈이 내렸었다. 그 눈을 맞으면서 내려오는데

동생이 ' 누나, 잘가. 그리고 잘 지내 ' 하는것

같았다.


올케와 함께 동생의 유품을 챙기면서

동생의 휴대폰을 열어 보았다.

그런데....

연락처에 다섯명의 이름만 보였다.

올케이름, 큰 누나, 큰 매형, 작은 누나, 작은 매형.

이렇게 다섯명만 저장이 되어 있었다.

올케말로는 분명히 천명이 넘게 저장되어 있었다는데 .... 마지막 정신을 잃기 전에

그러니까 중환자실 들어가기 직전에 동생은 그 많은 연락처들을 모두 삭제하고 다섯명만 남긴거다.

스스로 떠날 준비를 했던걸까...

이 세상에 지내면서 잡고 있던 수천개의 연결고리들이 다 필요없다는 의미였을까...


그리고 제일 마지막 문자는 동생이 나의 남편에게 보낸 문자였다.

" 매형, 항상 고마웠어요. 앞으로 더 잘 할게요."

이게 마지막이었다.

진통제를 맞으면서 고통을 참느라 힘들었을텐데

정신이 들었다 까무러쳤다 반복하면서

매형에게 마지막 문자를 쓰느라 오타도 많았다.


많이 보고싶다.

내 생일이면 화장품과 카드를 써서 현관에

들어서던 잘생긴 내동생 목소리가 너무 듣고싶다.

길을 지날때 동생나이쯤 되는 사람들을 보면

멈춰 서서 한참 돌아본다


난 아직도 어제처럼 생생해서 슬프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동생만 생각하면서

보내고 싶은데 그럴수가 없다.

여전히 아침상을 차리고 세탁길 돌린다.

졸업작품 준비로 며칠째 밤새는 막내를 챙겨야

한다.


종종걸음으로 거실을 오가며

내 나름대로 추모의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https://youtu.be/7KlhuzJ4O04?si=XuKqiX_2R9A5fqAH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나는 환자이며 간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