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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 Jan 21. 2019

커피를 듣고 보고 만질 수 있다면

<커피사회> 가 보여준 근대의 맛

'커피의 역사'라 말하지 않고 '근대의 맛'이라는 아주 그럴싸한 느낌에 첫눈에 반해 전시를 보러 달려갔다.

처음으로 한국에 들여온 커피는 어디에서 나고자란 원두로~~ 이런거 줄줄이 연혁만 보여주면 재미가 없지.


이 전시는 다방 - 찻집 - 카페로 진화해 온 과정 속 다양한 징후들과, 커피가 상징하는 한국 사회의 문화적 의미를 포착하여 전달한다. 동시에 당대 커피와 커피문화를 담은 시간과 장소에 대한 기억, 추억, 사물 ,사람들의 이야기로 커피 문화를 보여주었다. (팜플렛 참고)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들과 나만의 커피역사를 정리해보기로 한다.


< 커피,케이크,트리 > 선물 같은,  달콤한 케이크와 따뜻한 커피처럼 기분좋게 전실를 시작해보기


'근대의 맛'의 발상지

공간 기획과 경험 컨텐츠의 다양함 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문화역 서울 284에서 열린 것 그 자체부터가 꽤 흥미로웠다. 2004년까지만해도 기차가 들고나가던 구역사, 문화역서울284. 같이 간 친구의 나이 터울이 있던 언니가 고향에서 대학생이 되어 상경할 때 기차로 여기에서 내렸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랬다. 근대 시절 <그릴>이란 경성 최초 서양식 레스토랑, 1-2등 대합실 티룸에서 본격적인 커피문화가 시작된 장소라고 할 만큼 역사적으로도 이 전시를 열기에 가장 적합한 곳임을 알고, 내가 '대한민국 커피'를 공부한다는 느낌을 팍팍 줄 정도니 말이다.



함께 있지만 혼자 있는 곳, 다방


"당시 사람들은 다방에서 하루종일 지내는 사람을 빈정대듯이 '금붕어'라고 했다"


'바람으로서 바람을 물리치고 더운 것으로서 더운 것을 낫게 하듯이, 고독은 고독으로 고치지 않으면 안된다. 십오전만 던져주면 한시간이고 둣시간이고 좋은 음악을 들을 수 있고, 조용히 혼자 앉아서 생각에 잠길 수도 있는곳이 차방이다."


1930년대 다방 역시 그러했다. 누군가와 함께 마시며 예술을 논하는 공간이기도 했지만,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공간.  현대사회에서 잠깐 휴식이 필요할 때 가장 가기 쉽고 편한 곳은 아무래도 카페일거다. 커피 한잔 시켜놓고 책을 보든, 일기를 쓰든, 핸드폰을 보든, 잠깐 쏟아지는 햇빛이 주는 따스함 밑에서 약간의 낮잠을 자든. 이어폰을 꼽거나 약간의 소음만 피한다면 혼자서 즐길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다.



커피를 만지는 경험은 나를 어린이로 만들었다

원두풀장 원두풀



커피를 마시는게 아닌 듣고, 보고, 만지면서 기존과는 다른 경험으로 커피를 경험했다.

낯설지만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는 색다른 경험은 언제나 기억에 남는법.


내가 원두를 접해본 경험 중에 가장 신선했는데,  해수욕장에 달궈진 모래에 발을 담그는 것과는 달리 향이 나고 뾰족한 것에 발이 아플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아이들은 종이컵에 가득 원두를 담아 모래놀이를 하듯 놀고 있었고, 어른들도 뒤뚱뒤뚱 걷기도 하고 아이처럼 원두를 한움큼 쥐었다가 뿌리며 자체 연출 효과를 내어 사진을 찍기도 했다.  집에 와서 양말을 벗어보니 양말이 향기로운건 처음이었다.




근대의 맛은 어떤 맛일까

한번쯤 들어봤을법한 카페이름들이 보인다. '프릳츠커피','헬카페','매뉴팩트' 등.

다양한 카페 브랜드가 참여하여 근대를 주제로 새로 커피를 선보이는데, 안타깝게도 5분 늦게가서 마감된 이후라 맛보지 못했다.

곡선형으로 둥글게 된 구조가 인상 깊었는데,  팜플렛을 다시 천천히 읽어보면서  또 한번 감탄했다.

"승객들이 각자의 열차를 기다리던, 등받이가 높은 대형 대합실의자는 커피바를 중심으로 서로를 마주보며 둘러앉아 같은 커피를 기다리는 의자가 된다. 붉은 카펫 위에 한배를 탄 기분으로 서로가 한떄의 같은 맛을 기억하기 위하여"


디테일의 끝

먼저 다녀온 사람의 인스타그램 게시물에서 입장권 대신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종이컵을 준다는 점을 유심히 봤었는데, 조금 네모나거나 큰 테이블에 컵을 올려놓는다는 상상을 깨고, 딱 종이컵이 들어갈만한 촛대 수준의 스탠드가 있었다.  낑낑대며 테이블을 옮겨 자리를 만들지 않아도, 옆사람과 더 가깝고 편하게 앉아 커피를 마실 수 있게 해줬다. 테이블은 꼭 이래야돼! 하는 편견을 깨준점도 매우 멋지다.



관람하는 곳 중간중간 안내를 도와주는 스텝분들의 허리춤에는 바리스타처럼 앞치마를 휘릭 둘러져있었는데, 깨알 디테일에 감동했다.



나만의 커피역사

가만히 생각해봤다. 나는 언제 처음으로 커피를 마셨나? 그 때는 어떤 커피를 마시고,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마시지? 먹는 커피 제품도, 장소도, 의미도 모두 달랐다.


1) 자판기 커피 (200원)

: 초등학교 3~4학년 시절, 공부를 하겠답시고 친구따라 공립 도서관에 갔더랬다. 열심히 공부를 하려면 커피를 마셔야 한다며, 부모님의 눈이 없는 자유로운 시간이니 한번 마셔보기로 했다. 100원짜리 동전 두개를 넣고 '밀크커피' 버튼을 누르면 징~하고 종이컵에 반을 채워준 스틱커피같은 맛의 커피가 나왔다. 코코아와 율무차를 벗어나 본 희열의 맛이랄까.


2) 레쓰비 캔커피 (500원)

자주 먹지는 않았지만 손을 데펴주기에는 딱이었다. 검은 버튼을 똑딱 누르면 딱딱해지면서 열이 나는 핫팩도 있었지만 굳이 레쓰비를 택했다. 내가 먹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하나 더 사서 친구를 주기 위함이었다. 추우니까 손 좀 녹이라며 내 마음도 살짝 끼어서 줘봤다. (진짜 웃긴 꼬꼬마시절)


3) 쟈뎅 편의점 커피(700~800원)

발전했다. 고를 수 있는 맛이 많아졌다. 헤이즐넛, 프렌치 바닐라 등등 비싼걸 사먹을 순 없으니, 보습학원에서 공부를 하다가 편의점에 들러 커피컵, 뚜껑, 빨대를 챙기고 정사각 패치같이 생긴 비닐을 뜯어 만들어 먹는 재미가 있었다.  이때는 커피가 그냥 새로운 맛의 음료에 가까웠다. 그리고 다음 수업시간을 대비하는 의식(?). 수업시간에 먹어도 눈치안보고 쪽쪽 마시기만하면되니까 (소극적 팔움직임이 가능한)


4) 들어는 봤나, 엔하우스

중학생이 되어 친구와 교복을 입고 종종 독서실에서 탈출해 시내로 갔다. 과일쥬스 말고 커피라는걸 좀 시켜보고 싶었다. 때마침 아기자기하고 블링블링한 분위기에 약간은 프라이빗한 요상한 커튼으로 나만의 공간을 만들어주는 커피집이 있었다. 휘핑크림을 산더미처럼 올리고 모카 또는 카라멜 드리즐로 마무리한 커피를 마셨는데, 줄어만가는 음료를 보며, 다시 독서실에 들어가야 할 시간이라는걸 알때에는 조금 우울해지기도 했다. 이 때의 커피는 나에게 사치스러운 잠깐의 일탈이었다.


5) 프랜차이즈 커피 - 사진찍기 좋은 카페의 커피 - 평일 오후 2시의 커피


대학생이 되어서야 진짜 어른의 맛을 알게된마냥, 살이 찌지 않고, 텁텁함 없이 깔끔하다는 말을 몸소 느끼며 아메리카노를 접하기 시작했다.  카페에서 커피 하나쯤 사먹는걸 이때부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아까운줄도모르고)



-프랜차이즈, 특히 스타벅스를 간다는건 안전빵이 크다. 어딜가나 있으니까 찾기도 쉽고, 예상 가능한 커피의 맛, 눈치보지 않고 자리를 잡고 오래 있을 수 있는 분위기까지.

-사진찍기 좋은 카페는 주로 주말, 특별한 사람과 함께 가는 곳, 커피를 먹으러가는건지 찍으러 가는건지 분간이 안가지만, 요즘은 좀 나아졌다.


-평일 오후 2시의 커피:  점심을 먹고 난 뒤 나른함을 쫓기 위해 나만의 루틴을 정했다. 양치를 하긴 했지만, 한 시간 있다가 커피를 마셔주기. 안마시면 머리가 잘 안돌아가는 것만 같은 묘한 느낌을 지우기 위해서라도 마신다.


커피를 이렇게 진지하게까지 생각해본적은 없었는데 쭉 적어놓고 보니 생각보다 커피는 대단한거였다.


적어도 나에게 커피는 음료를 뛰어넘어, 나의 추억이자, 어른이 되고 싶은 마음이자, 일을 열심히 하고싶은 마음,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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