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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 Jan 28. 2019

[diGEST]하루 묵기 위해서라기보다 경험하러 갑니다

도쿄 스테이 브랜드 이야기와 고객경험

여행의 시작은 숙소선택에서부터.

항공권과 숙소를 예약하면 여행 준비 다한거라고 우리는 얘기한다. 호캉스처럼 전적으로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 경우는 좀 다르겠지만, 숙소를 고를 때 룸 컨디션, 가격, 위치,부대시설 이런것들보다 오감으로 좀 색다르게 감동 받을 수 있는 '경험'이 남다른 곳이 나에겐 1순위다.


특히 도쿄 여행의 목적이 디테일과 기획력이 깃든 공간을 경험하는데에 있어서 유독 그런 곳만 골라 가고 싶어했을지도 모른다.


호텔 이름 다 떼고 객실 사진만 보여주면 어느 호텔인지 구분하기 어려울만큼 일반적인 호텔은 개성이 거의 없는 쪽에 가깝고, 미니바, 금고, 욕조처럼 굳~이 내가 필요로 하지 않은 것 없이 좀 더 재미있고 실속있는 곳은 없을까 고민 끝에 숙소를 골랐다.


물론 혼자가는 여행이니까 거창할 필요도, 넓을 필요도 없었겠거니와 현실적인 부분도 고려했었고, 머물렀던 5개의 숙소 중 가장 인상깊었던 곳을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책에 파묻혀 잠드는 상상이 현실이 된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책에 둘러쌓여 있는 분위기도 좋아한다. 우연히 인스타그램에서 BOOK&BED라는 숙소를 발견했는데, 밤을 새워 포근한 소파에서 책을 읽는 아주 따뜻한 풍경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책을 보다 침 자국을 남기며 잠드는 것 말고, 한편의 영화처럼 은은한 불빛아래 책과 함께 스르르 잠들어보고 싶었다.


여러 지점 중 가장 먼저 생긴 본점을 가보는게 좋을 것 같아 '이케부쿠로점'에서 하루를 묵었다.

로비, 상가건물의 한 층이라고 믿어지지 않을정도로 전혀 다른 분위기가 펼쳐진다

첫 느낌은 낯선 '은밀함'이었다. 암호를 대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이내 아이패드를 쓱쓱 넘기며 안내를 받고 스테이 전용 공간에 입장했다.

봐온 이미지대로 엄청난 책들이 꽂혀있었고, 천장에도 그럴싸하게 책들이 장식되어 있었다. 편안한 느낌을 주는 노래가 흘러나오고, 다락방에 올라가는 느낌처럼 나무로 된 책장 사이 사다리 역시 그 분위기를 더해줬다.


책을 좀 보려 했는데, 일본어 책이라 읽을 수 없는게 99%, 한국 손님들이 기증하고 간 한국어로 된 책은 1%정도 있어 보물찾기 하는 느낌이랄까. 매거진B 영문판도 놓여있고, 표지가 독특하거나 영어로된 제목들을 떠듬떠듬 읽으며 혹시나 읽을만한 책이 있을까하고 구경하는 재미는 좀 있었다.


좁은 통로를 따라 책장 사이사이 침구가 놓여져있는 칸들이 보인다. 이 곳이 바로 잠을 잘 수 있는 곳인데, 책장벽과 천장이 모두 나무로 되어있다보니 미세한 움직임에도 삐걱거렸다. 내 윗층에 있는 사람에게 혹시나 방해가 될까봐 작은 뒤척거림도 신경쓰였다. 여기에 다소 천장이 낮아 편하게 이 안에서 책을 읽기에는 어려울 뿐더러, 커튼을 여닫는 형식이다 보니 하나뿐인 통로에 사람들이 왔다갔다하며 내는 소음은 (미안하지만) 매우 신경쓰였다.



구입가능한 굿즈 상품 / 한켠에 이용 가능한 주방용품들과 쓰레기 처리함


책의 느낌을 살려 책갈피 모양의 화장실 표시판 같은 것들은 귀엽긴했지만. 딱히 한 컷의 사진을 건지는 것 이외에 어떤 특별한 즐거움을 준다는 느낌은 주지못했다. 내 기대가 컷던 탓일까.

Have a book day!


이 북앤베드 스테이 브랜드가 고객에게 느낌을 전달하는 요소는 이 정도다.


빽빽하게 꽂혀져 있는 책, 책이 꽂혀져있는 나무로 된 책장과 다락을 연상하는 사다리, 그리고 편안한 패브릭 쇼파, 조도가 낮아 은은한 감도를 주는 느낌. 이게 어우러져서 'cozy'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샤워를 마치고 편안한 카우치에서 맥주 한잔하며 책을 읽었었는데, 그래 그 때만큼은  ‘이게 바로 북스테이지~’하는 기분이 들어서 만족했다.


도미토리의 특성상 불편함을 감수해야 되는 부분은 있지만, 잠자는 곳의 공간 구성이나 소음 문제를 보안해서 '편안한 분위기'를 끊이지 않고 지속적으로 전달해준다면 참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좀 더 '북스테이'스러운 느낌을 주기 위해서 '나'라면 어떤 서비스를 더 주었을까? 하고 생각해봤다.


-웰컴티 같은 '웰컴 phrase' : 책 속에 한 구절을 일본어+영어로 적어 제비뽑기 하여 손님에게 제공하기.

  아 북앤베드스럽구나 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게, 고된 하루 일정을 마치고 숙소를 찾아왔을 때 받는 소소하지만 웃음짓게만드는 감동을 투숙객은 절대 잊을 수 없을테니까.


-북앤베드만의 관점으로 책 큐레이션하기 :투숙객의 국적과 성별 등을 고려하여, 센스있게 큐레이션하면 어떨까 싶었다. 일본의 전통문화가 궁금한 관광객, 일본의 라이프스타일이 궁금한 관광객, 일본의 소설을 보고 싶은 관광객 등 세세하게 나눠서 책장과 책을 구분했더라면, 투숙객들이 훨씬 관심을 가지고 비치된 책을 들여다보지 않았을까?


-일본 소설 속 음료를 메뉴로: 이미 한국에서는 이런 방법으로 사람들을 모으는 책방이 있긴하지만, 일본 소설에 나온 간식이나 음료를 파는 것이다. 예를 들어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에서 만든 위스키의 방법을 고대로 따라해서 메뉴 이름은 '하루키의 한잔' 이런식으로 만들어준다면, 어디서나 먹을 수 있는 음료가 아니니까, 투숙객은 메뉴판을 흥미롭게 읽기 시작하겠지?



다음 묵었던 곳은 북앤베드와 사뭇 다른 분위기다.

마치 SF에나 나올법한 새하얗고 첨단스러운 곳에서의 하룻밤을 소개해보려고 한다.



우리가 하룻밤을 보내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

이름은 9 HOURS.  왜 9시간일까? 궁금했다. 투숙객들이 평균 9시간 정도 머무르기 때문에 9시간이라 했을까? 하고 짐작해봤는데, 비슷했다.



이미지 출처: 나인아워스 공식홈페이지



하룻밤 숙박에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3가지 행동. 여행을 끝마치고 돌아와 '샤워를 하고 -잠을 자고 -옷을 입고 다른 것들을 하며 준비하기'. 호텔에 머무르는 가장 단순한 개념을 바탕으로 9hours는 새로운 도시 생활을 제공한다는 모토 아래 이 캡슐 호텔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다.

 


나름의 이론도 있다.



호텔 숙박의 패턴을 크게 2가지로 나누면, 하나는 즐거움과 여가를 즐기기 위해 스테이가 긴~ 숙박 시설이다. 현실적 느낌은 지우고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마음을 푸는 방법이다. (호캉스에 가깝겠다) 두번째는 출장 처럼 특정 목적을 위해서 장소에 방문하는 방법.  9Hours는  '도시 환경에서의 짧은 체류'에서 만족을 발견하는 새로운 패턴을 수립한다는 이론을 얘기하고 있다.



그림으로 말해요, 구구절절 설명은 필요없습니다.


앞에서 말한 9시간이란 개념이 꽤 간단한것처럼, 이 캡슐호텔에 있는 모든 것들 역시 군더더기 없이 간단명료하다. FLAT 하거나, FORM 규칙적이거나 기능적이거나, TEXTURE 감촉이 괜찮은것(?).

장식적인것은 다 빼고, 새로운 형태로 실용성만을 생각하며 구성되었다고 보면 된다.



첫느낌부터 매우 질서정연했다.

투숙객의 여정이 프로세스화 되어있어서, 우리는 리셉션에 체크인-체크아웃을 하는 순간 이외에 직원과 마주치는 일은 거의 없다. 픽토그램이 안내하는대로 엘리베이터로 층을 오르내리면 되니까.



층별 안내도다.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픽토그램으로 그려져있고, 층별로 남성/여성을 구분 할 수 있게 엘리베이터도 확실하게 색칠이 되어있다.


경험1: 리셉션에서 얇은 카드를 받는다 -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간다.


누구나 읽기 쉽게 일목요연하게 표현됨. 어딜 가든 안내표시를 볼 수 있다.


경험2: 카드에 적힌 번호의 락커를 찾는다 - QR코드를 인식한다 - 문이 열린다 - 짐을 놓는다.


카드에 적힌 번호는 나의 락커룸 번호이자 잠을 잘 수 있는 캡슐의 번호이기도 하다. 간단히 인식만 하고 문을 열면, 수건과 슬리퍼 등의 어메니티가 널직한 그물가방에 담겨있다.  




이건 나중에 어떻게 처리하지? 하고 걱정 할 필요 없이, 락커룸 옆에 친절하게 설명이 써져있다.

2개의 칸으로 분리되어 있지만, 긴 외투를 고려해 칸 사이 홈이 있어서 그 사이로 외투를 잘 정돈해 옷걸이에 걸 수 있다. 이런게 바로 디테일 아닐까(만족)


마치 찜질방처럼 위아래 검은색 유니폼을 준다. 모두가 그 옷을 입고 돌아다니면, '여기는 어디인가,단체 합숙소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짐은 최대한 락커에 맡겨두고, 캡슐에서는 잠만 편하게 주무시면 됩니다의 의미로 받아들였다. 왜냐? 캡슐이 옷을 갈아 입을만큼 넓거나 걸어놓을만한 공간이 마땅치 않을테니까.


너무 다닥다닥 붙어있어서 바로 옆자리 사용자가 문을 열때마다 기다려주고 ,캐리어를 열때마다 구석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후다닥 짐을 뺴내야 하는 곤란한 상황은 좀 불편했다.



경험3: 옷을 갈아 입고 - 샤워, 세수를 한다

나인아워스의 어메니티다. 참고로 콜라보한 어메니티는 120년 전통의 SOAP 브랜드 TAMANOHADA


모든것이 반듯반듯 빌트인되어 규격화되어있다. 바닥에는 역시 픽토그램과 화살표가 큼직하게 써져있어 투숙객의 목적에 따라 동선을 자연스럽게 유도한다.

간단한 세수나 손 씻기, 양치, 머리 말리기 가능 / 체크아웃 직전에는 온 국적의 투숙객들이 화장하느라 바쁜데, 그게 참 진풍경이다.


샤워 부스와 화장실 부스도 규칙적으로 배열되어있다. 굳이 문을 열어보지 않아도 픽토그램 표시 하나만 보고 사용하면 된다.





경험4. 캡슐방으로 간다 - 숙면을 취한다

매우 넓지만 번호별 안내가 벽면과 바닥에 큼직하게 써져있다. 카드에 적힌 번호의 캡슐을 찾아가면 된다.



미래도시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북앤베드가 1-2층에 사람이 누울 공간이 있으면, 서로 오르내릴 때 동선이 꼬이거나 소음이 신경쓰이겠지만, 이곳은 1층 베드만 따로 /2층 베드만 따로 분리되어 있어, 그런 부분은 꽤 깔끔하다.



캡슐이 이런건가.

CT촬영하러 들어가는 줄 알았다.

새하얗게, 덩그러니 나 혼자 들어가서 문을 닫고 자면 된다. 딱 '잠'을 위한 곳. 무언가를 올려놓을 수 있는 선반 따위는 없다. 핸드폰을 충전 할 수 있는 간단한 USB 구멍과 콘센트 구멍1개, 빛의 밝기를 조절할 수 있는 스위치뿐.


오롯이 혼자 딱 독립된 느낌은 받았지만, 아늑하다거나 편안한 느낌보다는 낯선 경계를 쉽사리 풀지는 못했다. 갇혀서 자는 기분이었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눈을 말똥말똥 뜨고 있었는데, 지진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콧방귀 낄만큼 미~세한 바닥의 떨림이 느껴졌다. 순간의 떨림이지만 머릿속은 빠르게 굴러갔다. '지진이 나면 어디에 숨어야하지? 캡슐 밖으로 뛰쳐나가나?' 하고 네이버에 황급히 '도쿄 지진'을 검색해봤다. 아무 일도 없었다. 폐쇄된 공간에서의 아주 작은 움직임은 엄청난 공포로 다가왔다. 내가 겁이 많은 것도 있긴했지만.


하루의 짧은 숙박일정이었지만 나인아워스가 지향하는 '군더더기없는 딱 필요한 9시간'을 제대로 경험했다. 문을 들어선 순간부터 잠을 자기까지. 마치 누가 그렇게 하라고 시킨것처럼 픽토그램의 설명대로 따라하면, 그 공간이 그런 행동을 할 수 밖에 없게 유도되어졌으니까.  관리자 입장에서는 게스트가 이탈하지 않고 정해진 프로세스 안에서 딱딱 움직이니 효율적으로 동선을 파악 할 수 있을거고.



색다른 경험을 의도하고 잡은 두 숙소에서 충분히 느끼고 경험했다. 그들만의 컨셉대로 투숙객이 느낄 수 있게 하려면 전제되어야하는게 있는데, 그게 바로 '기능의 충실함' 과 '편안함' 이다.



숙소는 내가 여행지에서 보호 받을 수 있는 휴식처이자 안정된 공간의 역할을 하는 곳이니까.



기본적인 기능이 해결되지 않거나 고객이 불편함을 느낀다면 아무리 좋은 컨셉이어도 사용자에게 좋지 않은 경험을 줄 수 있다.브랜드에 대한 호감도 역시 떨어지겠고, 여행의 좋은 기억으로 남기는 어렵겠지.


앞서 말한 북앤베드는 따뜻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보여'주지만, 정작 수면 공간의 쾌적함과 사용자간의 소음처리 문제는 아쉬웠다.


나인아워스는 일관되고 미니멀한 디자인으로 규칙을 만들고 고객의 동선을 시스템화했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굉장히 효율적이고 괜찮다고 생각한다. 다만 락커룸과 세면대가 다닥다닥 붙어있어 공간을 효율적으로 쓰는 부분은 공급자 관점에서 좋지만, 사용자 입장에서는 매우 불편한 부분이었다. 큰 캐리어를 끌고 오거나 바로 옆 락커의 사용자가 사용 중이라면, 비좁은 공간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서로 불편해하는 장면이 연출되니까. 그리고 폐쇄적인 침실이 사람에게 공포감을 느낄 수 있으니, 이런 부분을 개선해줘야 심리적으로 편한 상태로 오래 머무를 수 있겠다 싶었다. 나에게 만약 하루 더 묵어도 괜찮다 했어도, 정말 미안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을 거다.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완벽한 경험과 숙소의 제기능을 모두 다 충실히 할 수 있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스테이 브랜드라고 할 수 있을텐데. 아쉬운 소리만 조금 늘어놓은 것 같지만,  더 좋은 스테일를 위해 한번 더 생각 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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