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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 Jan 05. 2021

새해에 만난 새

다짐이 +1 추가되었습니다

2021년 1월 1일 기상 시간 아침 9시.

새벽에 일어나는 아침형 인간이 되자는 다짐은 하지 않았으니 다행으로 친다. 유난히 적막하고 별다를 것이 없는 새해였다. 그저 31일에는 가족과 시상식 프로그램에서 하는 카운트다운 장면을 봤고, 입으로 '5,4,3,2,1!'을 외치자마자 어깨동무를 하며 새해 복 많이 받자 인사를 나눈 게 다였다. 다이어리도 급하게 31일 저녁에 사서 12시가 되기 전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 다짐이라고는 2020년에 세웠던 다짐과 거의 비슷하게 했다.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해가 되자, 균형 잡힌 삶을 살자' 정도로 다이어리 맨 앞 장에 적었다.


매일 지켰는지 지키지 않았는지 체크하지 않아도 되는 약간 두루뭉술하고 평생 숙제 같은 것을 다짐으로 삼았다. 며칠 못 가 못 지켰다며 음력 1월 1일을 기다리녜 마녜 하는 얘기는 할 필요 없는, 조금 부담 없는 다짐이기도 하다.


몇 시간이 흘러 뜻밖의 산책에서 만난 작은 새 때문에 다짐을 하나 추가했다. 우리 가족은 연례행사처럼 1월 1일에는 교외에 나가 산책을 하는데, 이번 연도는 산에 있는 둘레길 산책로를 걸었다. 마스크 안쪽이 축축해지도록 한참 걷다가 쉬어가기로 한 벤치 가까이에서 휘이이~ 새소리가 들렸다. 벤치에 가까워질수록 새소리는 커지고 작은 박새들이 나뭇가지 끝에 포르르 거리며 날아다니고 앉기를 반복했다.


다시 보니 새가 낸 소리가 아니었다. 새를 부르는 옆 벤치에 앉은 아저씨의 소리였다.

벤치에 앉아 손바닥을 펼치고 아저씨가 입으로 휘이~ 소리를 내니 조심스럽지만 빠르게 새가 와서 먹이를 물고 나무로 다시 돌아간다. 그렇게 두어 마리가 반복해서 아저씨의 손바닥 위를 스쳐 지나갔다.


가만히 있을 수 없지! 나와 동생은 당장 따라 해보고 싶었다. 작은 새가 손 위에 앉았다 가는 경이로운 순간, 약간의 '자연과의 교감'이라 일컬을 수 있는 순간을 놓칠 수 없었다. 푸드덕거리는 무서운 비둘기나 까치도 아니었고 아주 보드랍고 조그마한 생김새가 눈에 들어온 박새였다. 두 손으로 폭 가리면 안에 들어갈 법했다. 우리가 싸온 간식은 다 까진 귤과 석류 알 뿐이어서 급한 대로 동생이 먼저 손에 귤 조각을 올리고 기다렸다.


파르르 떨며 새가 동생 손 위에 잽싸게 앉았다! 성공인가?

옆에 서 있던 내가 너무 기쁜 나머지 소리를 질러서 앉자마자 도망갔다.


나는 급해진 마음을 진정시킨 다음 석류 한 알을 손 위에 올리고, 한 손은 뒷짐을 진 채 서 있었다.


- 감감무소식 -


엄마 왈, "먹이가 벌써 틀렸어~. 저 아저씨는 쌀을 준비해오셨으니까 잘 오지~"


그래 맞다. 박새는 내 손에 절대 앉을 리가 없다. 새를 부르려면 새가 좋아하는 소리를 내야 하고, 새가 먹고 싶어 하는 곡식류를 준비해야 한다.


나는 반대로 행동했다. 가까이 왔다고 놀래서 큰 소리를 질렀고, 박새의 부리보다 더 큰 귤 조각,

입에 넣으면 걸릴 것 만 같은 석류 알을 들고 있었으니 가능성은 희박한 게 당연했다.


문득 일이든 인간관계에서든 이 상황과 비슷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내가 원하는 대로, 내 방식대로만 고집하면
타인이 원하는 것이나 내가 얻고자 하는 것과 멀어진다.


박새도 나도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었다. 갑자기 새한테 무슨 깨달음이냐며 의아해 할 수도 있지만, 새를 손에 앉히기 위해 어리숙하게 시도했던 나의 행동에서 꽤 좋은 자극을 얻었다.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한다면, 누군가를 설득해서 내 편으로 끌어들여야 하는 상황이라면,

상대의 눈높이에 맞추는 것만큼 중요한 게 없다고 생각한다.


좋은 기획은 타인에 대한 배려에서 나오는 거예요.

에디터 수업에서 편집장님이 하셨던 말씀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한 마디를 되새겨 본다. 글 쓰는 일을 하다가 독자들은 다 안다고 생각하며 단어를 잘못 선택할 때도 있고,  인간관계에서도 내 맘대로 약속 장소를 정하거나, 메뉴를 골랐던 나를 반성했다.


다이어리 앞장을 다시 펴서 새해 다짐을 하나 더 적었다.

타인을 배려하기. 내 맘대로 생각하고 해석하지 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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