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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리티 Jan 18. 2024

자전거를 타, 이제 너의 길을 가거라

시드니 루멧의 <허공에의 질주>

1. 베토벤과 마돈나, 춤추는 오후


템포와 리듬을 배우는 교실. 음악을 들려주고 선생님이 묻는다. 두 곡의 차이는? 

학생들이 장르나 취향을 말하고 있을 때 대니에게 질문이 온다. 

"베토벤은 춤추기에 맞지 않죠."

선생님은 베토벤 음악에는 일정한 박자가 없기 때문에 춤을 추기 어렵다고 설명한다. 대니는 베토벤도 알고 춤도 아는 소년이었다. 여자친구를 초대한 엄마의 생신 날 가족 모두가 춤을 춘다. 

https://www.youtube.com/watch?v=V5Ztq4icMGU


2. 삶이 던지는 수많은 질문 속에서


박자가 일정하지 않은 일상. 모든 순간 춤을 출 수는 없다. 

대니의 가족은 쫓겨 다니는 신세다. 1971년 베트남 전쟁 당시 부모님은 반전운동을 하다가 실험실을 폭파하여 FBI의 추적을 받는다. 언제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는 하루하루가 15년이 넘었고 전국 각 지를 돌아다니며 가족 모두 이름도, 직업도, 학교도 바꿔가며 살얼음판 걷는 듯한 생활의 연속이다. 그러다 FBI의 흔적이 느껴지면 다 버리고 낡은 트럭을 타고 떠나야 한다. 어린 동생 스티브는 신문에 등장하는 엄마 아빠의 이름이 신기하지만, 대니에게는 더 새로울 것도 없는 일이다. 대니는 때로 거울에 보이는 자신이 진짜 누구인지 질문해 보지만 답을 찾을 수가 없다. 

사춘기 즈음 한창 방황해도 모자랄 시기에 자신이 선택하지도 않은 일로 고생을 하는 것일까. 생의 대부분을 어느 한 곳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산다면 누군들 삐뚤어지지 않을 수 있을까. 가족의 떠돌이 생활을 알게 그녀가 질문한다. 누군가의 삶의 짐을 네가 지어야 하는지를. 이번에는 바로 대답할 수 있다.

"그는 내 아버지야"  


3. 배우와 극 중 인물의 경계가 모호해질 때


대니가 가족과 함께 도주할 때 반드시 챙기는 것이 있다. 전자피아노 건반이 든 가방. 

베토벤과 마돈나의 차이를 단번에 설명할 수 있는 센스는 하루아침에 얻어진 것이 아니었다. 집에 피아노를 둘 수는 없지만 건반은 꼭 들고 다닌다. 대니의 재능을 알아본 선생님은 그를 집에 초대하여 스타인웨이 피아노를 경험하게 하고, 줄리어드 진학을 권한다.

음악실에서 베토벤 비창 소나타를 연주하는 모습은 배우가 잘 맞는 옷을 입은 듯한 장면이다. 실제로 밴드 활동을 했던 리버 피닉스는 피아노를 직접 친다. 나도 비창 소나타 2악장을 좋아하는데 어딘가 이 장면이 잠재되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우리는 이 영화에서 드문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있다. 낡은 피아노 선율 위로 그의 내면이 드러난다. 대니와 리버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https://www.youtube.com/watch?v=Bl4tGsOGw_0


4. 내가 버렸던 인생을 아이에게 되찾아주는 일


리버 피닉스가 온통 시선을 빼앗고 있을 무렵, 영화는 전혀 기대하지 못한 방식으로 관객을 얼얼하게 한다. 아들의 재능을 확인할 무렵 부모의 고민은 시작된다. 이대로 떠도는 생활을 계속한다면 유학을 시킬 수 없다. 그렇다고 유학을 시키면 영영 다시 볼 수 없을지 모르는 앞날을 감당해야 한다.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까?

엄마 애니는 14년 동안 등지고 살았던 아버지를 만난다. 이런 식으로 연락을 다시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고 그녀가 아버지를 떠나며 마지막으로 했던 말은 '자본주의의 돼지'였다. 

좋은 영화는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다. 리버 피닉스의 갈등이 이 영화의 전부였다면, 그토록 이 영화가 오래 기억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애니는 아버지에게 손자를 맡아달라고 부탁한다. 그녀의 어린 시절은 아들과 닮아있다. 과거의 그녀 역시 줄리아드 합격을 했었지만, 반전운동에 가담했다. 다시는 부모를 만나지 못하는 삶 속으로 뛰어들었다. 안락하고 평온한 조건들을 내팽개쳤다. 이제는 자신이 아들을 보지 못하는 미래 앞에 서 있다. 자신이 그토록 혐오하고 떠났던 아버지의 자본과 안정이 절실해졌다. 

우리 삶에서 종종 마주하는 신념과 현실 사이의 모순이 자연스럽게 스크린에 드러난다. 애니 부녀의 짧은 대화와 표정 사이의 무수한 회한과 감정이 영화 전체에 생기가 돌게 한다. 그제야 애니는 부모님을 사랑한다는 진짜 고백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진짜 감탄은 환호와 찬사가 터져 나오는 방식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런 장면을 보면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혹시라도 그 깊이에 닿지 못할까 봐 침묵 속에서 가만히 바라보게 된다.


다시 쫓기게 되는 일상의 반복. 아버지는 출발하려는 차에 자전거를 싣는 대니를 말린다. 군말 없이 자전거를 내리는 대니에게 새로운 날을 예고한다.

"우리는 너를 사랑한다. 이제 세상에 나가 좋은 일을 해봐라. 엄마와 나도 열심히 했으니까. 다른 사람에게 지면 안 돼. (We all love you. now go out there and make a difference. Your mother and I tried. and don't let anyone tell you any differnt.)"

그렇게 차를 몰아 대니의 주변을 한 바퀴 돌며 응원하고 떠난다. 

https://www.youtube.com/watch?v=65D0jAQelFg

 "엄마와 나도 열심히 했으니까, 너도 세상에 좋은 일을 해봐라." 

부모가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의 고백이 아닐까.


5. 시드니 루멧, 리버 피닉스 그리고 제임스 테일러


시드니 루멧의 영화에는 그저 좋은 영화 이상의 무엇이 있다고 늘 생각해 왔다. <12인의 성난 사람들, 1957>, <뜨거운 오후, 1975>, <네트워크, 1976>등 볼 때마다 그 다른 점이 무엇일까 궁금했다. 할리우드를 달가워하지 않았고 뉴욕과 영국을 오가며 활동했던 그는 1960년대 런던의 스윙잉(swining)의 영향을 받았다. 영국의 팝아트를 이끌던 그 시기의 문화운동에도 발을 담그고 있었던 것이다. 

가족이 춤추는 장면에 흐르는 사운드트랙은 제임스 테일러의 'fire & rain'이다. 그 역시 60년대 히피즘의 영향을 크게 받아서 약물 중독으로 고생하기도 했고 이 곡은 병원에서 친구를 잃은 상실감을 써 내려간 것이다. 

그리고 리버 피닉스 역시 히피 부모 아래에서 자랐다.(동생 호아킨 피닉스의 믿을 수 없는 연기력 역시 그 배경의 영향이 있을 것) 이런 성장 배경들이 이 영화에 그대로 녹아있다.

히피즘을 옹호하는 얘기가 아니라, 세상을 바꿔보려고 하던 당시 젊은이들의 어떤 태도와 정신, 그 시대적 특성이 영화에 함께 한 사람들 사이에 녹아있기 때문에 차별성을 획득한 것 같다.

제임스 테일러의 곡은 어렴풋이 상상할 수 있는 그 시대로 안내해 준다.


Just yesterday mornin', they let me know you were gone
Suzanne, the plans they made put an end to you
I walked out this morning and I wrote down this song
I just can't remember who to send it to
I've seen fire and I've seen rain
I've seen sunny days that I thought would never end
I've seen lonely times when I could not find a friend
But I always thought that I'd see you again


바로 어제 아침, 사람들이 나한테 네가 떠났다고 알려줬어
수잔, 그들이 세운 계획이 당신을 끝장냈어요
오늘 아침에 나가서 이 노래를 썼어요
누구에게 보내야 할지 기억이 안 나네요
나는 불을 본 적도 있고 비도 본 적도 있어요
나는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화창한 날들을 보았습니다.
친구를 찾지 못해 외로웠던 시간들을 본 적이 있어요
하지만 난 항상 당신을 다시 만날 거라고 생각했어요

- James Taylor, 'fire & rain'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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