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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리티 Jan 22. 2024

같이 웃고 떠들던 우리는 친구였을까

정재은의 <고양이를 부탁해>

1. 스무 살의 도장이 박힌 노래


눈송이가 깃털처럼 내려앉던 밤이었다. 그날 홍대 주변을 어슬렁거리다가 다다른 곳은 작은 바였다. 골목 초입에 있던 스카. 겨울바람을 묻힌 외투를 한껏 여미며 문을 열자, 오두막 같은 내부 싸이키 조명 아래 빈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한쪽 구석에서 DJ는 레코드판을 틀고 있었다. 

음악 때문이었다. 큰 스피커로 듣고 싶어서 친구들과 한 테이블을 차지했다. 둘러보던 한 친구가 말했다. "코코어야" 돌아가는 조명 사이 DJ의 얼굴에 깜빡거리며 빛이 들어왔다. '코코어'라는 인디 밴드의 베이스였다. 다음 노래가 흘러나왔다. 눈이 크게 떠졌다. 삐삐롱스타킹의 '아직도 눈이 내려'였다. 

(https://www.youtube.com/watch?v=COcGvGB-Kww ) 집에서도 듣던 그 노래. 기막힌 타이밍. 눈 내리는 날엔 다르게 들렸다. 큼지막한 스피커를 타고 귓청을 울리는 기타 소리가 포근하게 다가왔다.

그즈음의 홍대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암호 같은 간판, 무가지, 벽보들이 여기저기 보였다. 발전소, 황금투구, 명월관, 상수도, 곰팡이- 이 간판들은 음악 듣고 춤추는 클럽들이었고(부킹을 위한 나이트클럽과는 다름), 인매거진이라는 무가지에서 영국밴드 오아시스의 직관 리뷰를 읽었다. 백스테이지라는 뮤직비디오 감상실은 오늘의 유튜브 채널 역할을 했다. 우리는 그곳에서 웰치스 한 캔을 시켜놓고 아직 음반이 나오지 않은 밴드들의 곡을 프리뷰 하곤 했다. 또 여러 모임들도 많았다. 그중 '모임 별'의 벽보가 기억난다. 시를 낭송하고 술 마시는 모임이라는 소문이 들려왔다. 당시 우리에게도 음악감상 모임이 있었으므로, 따로 참여해 볼 생각은 하지 못했지만, 그들의 음악을 들으면 비눗방울을 타고 둥둥 떠다니며 우주 어딘가로 흘러가는 듯했다. 그리고 그 영화가 개봉했다. 그렇게 이 곡은 '스무 살'의 도장이 찍혔다.


 모임 별 - 진정한 후렌치후라이의 시대는 갔는가

 https://www.youtube.com/watch?v=mgtAGplClcY

네덜란드산 초록 맥주병
오늘 밤도 난 길을 잃었지
난 모든 걸 갖고 싶어
이 아픔을 넘고 싶어

-모임 별, '진정한 후렌치프라이의 시대는 갔는가' 중에서

  

2. 만나자는 약속이 뜸해질 무렵


갑자기 불어오는 거센 바람. 친구들은 각자 다른 모습으로 바람을 맞는다.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내딛는 시기. 증권회사에 취직한 혜주, 아버지 사업을 돕는 태희, 미술 유학을 가고 싶지만 형편이 어려운 지영. 상고를 졸업한 그들의 길이 조금씩 달라진다. 친구들 관계 역시 학교 다닐 때만 같지 않다. 매일 보던 얼굴들인데, 모처럼 한번 모이려 해도 장소나 시간이 엇갈린다. 용건이 없으면 전화는 뜸해진다. 그래도 어쩌다 통화하게 되는 날의 마지막 인사는 한결같다. 우리, 만나.

매일 신나 보였지만 조금 들여다보면 모든 것이 다 잘 맞아서 그렇게 같이 다닌 것은 아니었다. 무리들 중에도 살짝 어긋나는 삐걱거림도 있었고, 더 친한 사이가 있었고, 같이 다니긴 하는데 실은 썩 친하지는 않은 관계도 있었다. 졸업을 하고 사회에 나가면서 슬슬 관계의 잔상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기 시작한다.

번듯한 직장을 구한 것처럼 보이는 혜주는 친구들 사이에선 당당했지만 실상은 대졸 사원과의 학력의 벽에 점점 부딪혀가고 있다. 가업을 돕는 태희가 원하는 미래는 한 곳에 정착하기보다 더 멀리 나아가는 삶이다. 텍스처 디자이너를 꿈꾸는 지영은 유학은커녕 당장 할아버지 할머니와의 생활비도 버겁다. 손해 볼 일은 안 하는 깍쟁이 같은 친구, 어딘가 비밀을 품고 있는 친구, 계산 없이 관심을 가져주는 친구. 모두가 우리가 흔히 마주쳤던 모습들이다. 

각자의 사정은 있지만 함께 모여서 떠들고 즐기는 것으로 친구의 시간이 흘러간다. 친구 사이라고 모든 것들 다 알 필요는 없다. 어쩌면 조금씩 비밀을 지켜주는 것이 친구로서의 예의인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렇게 자신의 사정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기에 친구들을 만나러 오는 것일 수도 있다.


3. 다정함이 손 내미는 세계


세계는 치밀한 의지와 계획만으로 전진하는 것은 아니다. 나만의 공간을 나누게 되는 것은 초대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기대하지 못한 순간 한 공간에서 마주 서게 된다. 계획과 우연 사이 허물어지는 벽이 있다. 

소식깜깜인 친구가 걱정되어 태희는 예고도 없이 집으로 찾아간다. 이 장면에서 놀라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얘길 들은 적이 있다. 초대도 안 했는데 약속도 없이 친구네 집에 불쑥 찾아간다? 무례한 일일까. 스마트폰 메신저 교류에 익숙해진 세대들에게는 그럴 수도 있다. 나도 어릴 적엔 친구 집에 그렇게 서로 오가기도 했었다. 무례한 것은 잘 모르겠고 놀란 적은 있지만 친구 얼굴을 보면 나도 모르게 반가워졌고 그 이후의 일은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그렇게 친구의 가족들과 밥도 먹고, 몰랐던 사생활도 알게 된다. 그렇게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무작정 불러내서 실컷 밖에서 놀기도 했던 시절이었으니까. 어찌 되었건 세월은 변했다.

이 영화의 친구 관계들이 아주 현실적으로 그려졌는데, 태희가 힘든 시간을 보내는 지영에게 찾아가는 사건이야 말로 이상적인 지점이다. 지영은 주목받는 친구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태희는 그의 재능을 알아봐 주고, 고민을 알고 가장 힘든 시간에 함께 있어준다. 그리고 누구나 친구 사이에 꿈꾸는 그런 말을 기꺼이 선사한다. "나는 네가 도끼로 사람을 찍어 죽였다고 해도 네 편이야."

결국 더 이상 가족들과 한 집에 살기 싫어진 태희는 자신의 월급을 스스로 정산해서 가출을 하고, 그 다정함을 엔딩까지 밀고 나간다. 

문득 떠올려본다. 태희 같은 다정함이 모자라서 스쳐 보냈던 그 시절의 친구들을. 나 자신으로만 꽉 차있어서 놓쳐버린 세계를. 

그토록 많은 작품들이 친절하라, 다정하라는 말을 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그 태도야말로 내가 이제껏 보지 못했던 세계를 열어주는 문으로 통한다는 것을 몰랐다. 


4. 2000년대로 타임 슬립, 꿈꾸는 사람들


지금은 사라진 정동의 한 극장에서 이 영화를 봤던 기억이 난다. 한국영화의 새로운 부흥기였고 좋은 영화가 많이 나오던 시기였다. '와라 나고' 운동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와이키키 브라더스, 라이방, 나비, 고양이를 부탁해를 묶어서 관람하기를 권하는 붐이 일었다. 한국에도 지금의 A24 같은 영화사가 있더라면 이런 영화들을 만들고 있지 않았을까. 


영화를 보고 나서 와 너무 재밌다, 하는 건 분명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청춘영화치고는 심심하고 사건도 없었다. 그렇지만 장면 하나하나에 담긴 묘사와 현실적인 사람 심리, 그리고 약간의 판타지. 그 모든 것들이 좋아하는 영화 리스트의 자리에 올려주었다.

공간에 대해 다르게 보는 법을 알려준 영화이기도 했다. 2000년대 인천. 도시의 풍경과 사람들, 공간감이 이렇게 세심하면서도 낡지 않게 멋스럽게 담아낸 영화는 흔하지 않다. 


우리는 배두나를 좋아했다. 친구 하나는 시사회장에서 배두나를 보고 자기도 모르게 뒤를 쫓아갔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이 영화를 보고는 정재은 감독 역시 멋진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영화에 음악을 잘 쓰는 감독들은 많지만 정재은이야말로 진짜 그렇다고 늘 생각한다.(후속작들을 보면서도 다시 확인했다)

좋은 영화는 그것을 경험하는 사람의 삶의 메타포가 된다. 극 중 태희가 조각배에 몸을 싣고 떠다니며 내뱉는 독백은 어떤 이들의 꿈을 대신 말해주고 있다고 느낀다. 정재은도 배두나도 그 꿈을 따라가고 있지 않은지.


"난 그냥 돌아다니고 싶어. 어떤 곳이든 한 곳에 머물러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너무 답답해. 계속 배를 타고 그 어디에서도 멈추지 않고, 물처럼 흘러가면서 사는 거야." 


*고양이를 부탁해(2001)- 넷플릭스, 왓차 시청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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