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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리티 Jan 29. 2024

닿을 수 없는 서글픈 빨강

빔 벤더스의 <파리, 텍사스 1984>

1. 미래의 여행지를 미리 추억하는 방법


여행의 시작은 소설의 장면이었다. 열여덟 살의 나이에 무작정 샌프란시스코로 여행을 떠난 것은 존 스타인벡의 <아침밥, breakfast>의 한 광경이 어딘가 있으리라는 동경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이렇게 적었다.


해가 뜨기 직전의 아침, 갓난아이를 옆구리에 안은 젊은 여인이 텐트 옆 스토브에서 아침밥을 준비하며 베이컨을 솜씨 좋게 굽는 모습은 문장과 함께 지금도 머릿속에 영상이 되어 새겨져 있다. 머리카락을 아무렇게나 뒤로 묶은 여인의 옆얼굴이 아침 햇살에 빛나는 모습, 지글지글 소리를 내며 구워지는 베이컨, 그 육즙을 끼얹어 먹는 갓 구운 빵, 그 광경을 보는 주인공 남자, 그것은 나에게 미국 그 자체였다.
 
- 마쓰우라 야타로, <안녕은 작은 목소리로> 중에서


문득, 스치는 생각이 있다. 나 역시도 내가 보고 있는 영화나 책 속에서 미지의 장소를 발견하고 싶어 했던 것 아닌가. 언젠가 발이 닿을 곳에 펼쳐질 광경을 찾아다니고 있는 것은 아닐까.


2. 태양이 벌써 자오선에 닿았으니


보라, 태양이 벌써 자오선에 닿았으니 
밤은 벌써 갠지스 강가에서 모로코 해안에 이르렀으리. 

-단테, <신곡(역옥편)> 중에서


똑같은 지명이 지구 곳곳에 동시에 존재한다. 첼시는 런던에도 뉴욕에도 있다. 미국에서만 '첼시'라는 도시가 네 곳. 서울에만 해도 신사동이 두 곳이다. '연희동'을 검색하면 서울과 인천의 동네가 뜬다. 같은 이름이라는 이유로 유사성을 떠올려보면 마땅한 것이 없지만 아직 발견되지 못한 어떤 동시성이 있다고 상상해보면 흥미롭기도 하다.

텍사스에도 파리가 있다. 에펠탑이나 샹젤리제가 아니라 모래 언덕이 계속되는 곳. 태양의 자오선이 텍사스 파리에 닿으면 밤은 파리의 센 강변에 이를지도 모르겠다.

끝도 없이 메마른 땅 위를 터벅터벅 걷는다. 보기만 해도 목이 탈 것 같은 바싹 마른 사막에서 물을 찾아 갈증을 달래는 한 사람, 그의 이름은 트래비스다.

그는 좀 답답해 보인다. 뭐 하나 시원스럽게 말하는 법이 없다. 하지만 말이 없다고 해서 할 말이 없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진짜 할 말이 목구멍에 차오를 때까지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다. 트래비스가 처음 꺼낸 말은 이렇다.

"파리에 가본 적 있어?"

그의 가슴속은 '파리'라는 장소로 채워져 있는 것이 분명하다. 성공과 야망으로 쉴 틈없이 번쩍거리는 '파리'가 아니라, 마주하기 두렵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그것이 없이는 견딜 수 없는 이상향일 수 있다.     

그렇게 견디는 나날들이 지나가고, 그는 어딘가에 초대라도 받은 것처럼 하나의 관문 앞에 서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A8XjSXItwcw

함께 보낸 추억이 없는 아빠와 아이는 어떻게 세월의 간극을 메울 수 있을까? 

처음 만나는 아빠에 대한 낯섦과 어색함을 서서히 누그러지게 하는 길이 펼쳐진다.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어떤 것. 작은 도로를 사이에 두고 오가는 두 사람만의 대화 방식이 있다. 사회가 합의하기 이전 이미 품고 있는 원초적인 언어. 지나가는 차량들이 아빠와 아이 사이 그 변주를 더해준다. 거울처럼 서로를 바라보며 따라가는 길. 시선을 떼지 않고 나아가는 한 걸음 한 걸음 사이에 템포가 생긴다. 그러다가 결국 하나의 멜로디가 된다. 노을이 질 때까지 걸었다.

이미 오래전에 알았던 것처럼 이젠 익숙하다. 가족인데도 좀처럼 이어지지 못했던 길. 아빠가 먼저 아이에게 먼저 다가가는 장면에 마음이 간다. 어쩌면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유창한 말의 힘보다 언어 이전의 언어를 탐구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3. 자신의 과거를 불태워버린 사람의 참회


아이와 아빠의 여행은 낡은 트럭을 타고 이어진다. 아이의 양육비를 보내오는 주소를 쫓아 도착한 곳은 어느 업소. 손님만 상대를 볼 수 있는 원웨이 미러 사이로 아이 엄마를 찾아간 트래비스.

전화를 들어 그제야 간신히 말을 꺼낼 수 있다. 처음으로 길게 말해보기로 한다. 세상에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그래도, 이 순간만큼은 모든 힘을 다 쏟아서 전화기 너머로 보내야 한다. 좁은 부스 안에서 묻어두었던 두 사람의 과거가 되살아난다.

"그녀는 어렸고, 원하는 것이 있었지만 난 그걸 알 수가 없었어요.(She was young. she wanted something. I couldn't just figure out what it was.)"


여행을 하다 보면, 돌아갈 즈음이 되면 이제 뭔가 알 것 같고 본격적으로 해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지금부터 해보라고 한다면 잘할 수 있는데 돌아간다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삶의 여정 속에서 온통 처음 해보는 것들 투성이다. 그때도 알았더라면 좋았겠지만 세월이 지나서야 알게 되는 것들이 꼭 있다. 그때는 어렸다는 말은 흔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대가가 너무 크다. 트래비스는 감당할 수 없는 과거를 불태워버렸다.


제인의 대답에 모든 회한이 담겨있다.

"모든 남자가 당신의 목소리로 들렸어요.(Every man has your voice)"

두 눈을 마주칠 수 없는 거울 너머 서글픈 붉은색 스웨터의 잔상이 남는다.


4. 끝나지 않은 여정, 계속되는 길


https://www.youtube.com/watch?v=uAUruRr7Xpw&t=29s

아이는 드디어 엄마를 다시 만난다. 도시의 불빛 사이로 엄마에게 다가가 끌어안는 것으로 트래비스의 여정이 완성되었다.

불태워버린 과거를 복원할 수는 없다. 불꽃의 흔적은 남기 마련이다. 참회를 한다 해도 억지로 맞출 수 없는 퍼즐 같은 시간이 있다. 그는 아이에게 엄마를 찾아주는 대신 고행 같은 자신의 삶을 받아들인다. 그가 바라던 텍사스의 파리에 안착할 수는 없었지만 다행히도 길이 끝난 것은 아니다.


여행하고픈 미지의 장소가 있다면 빔벤더스 영화 속의 장면들일 것이다. 어디를 가도 멋지고 화려해서라기보다는 장소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을 닮고 싶다.

황무지위에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과 노을이 번지는 광활한 도로. 혹은 네온의 불빛이 가득 번지는 도시의 밤. 아직 가보지 못한 여정을 깨워주는 그곳에 가고 싶다.



*<파리, 텍사스 1984> 도서관 DVD 열람 또는 이따금씩 작은 극장들 빔벤더스 회고전에서 상영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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