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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리티 Feb 29. 2024

내 인생에 도착해 줘서 고마워

드니 빌뇌브의 <컨택트 Arrival, 2016>


1.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다.


언제나 그 장면에서 눈물이 난다. <인터스텔라>에서 쿠퍼가 블랙홀 가까이 우주여행을 다녀왔을 때 남아있는 이들은 23년이 더 늙어있었다. 우주인은 출발할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젊은 모습이었지만, 지구의 가족들은 인생의 이정표들를 한참 지나왔고 그 시간 속엔 그가 없었다. 잠깐의 영상 편지로 다 말할 수 없는 세월이 지나간다. 


시간의 질서를 다르게 바라보는 시선에 끌린다.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으로 우리는 시간을 좀 더 유연하게 바라보게 되었지만 그는 우연성을 용납하지 못해 양자역학에 반대했다. 세기를 넘어 최근의 '시간'에 대한 화두는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는 개념이다. 시간은 환상일 뿐 과거, 현재, 미래가 정해져 있지 않다. 인간은 인식하기 쉽도록 시간을 선형적으로 이해하고 있지만, 더 높은 차원에서 바라본 시간의 질서는 다르다. 우주의 시간은 인간이 인식하는 시간과 다르게 작동한다. 

우리가 아는 한계 그 너머의 시간에 대해 상상해 볼 수 있다는 면에서 시간에 대한 과학자들의 이론은 흥미롭다. 결정론자 아인슈타인의 생각처럼 우리가 생에서 실제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지극히 미미할 수 있지만, 시간의 개념을 바꾼다면 다른 상상이 가능하지 않을까.

그 초월적인 시간을 경험하게 해 줄 외계인들이 언어학자 루이스의 삶에 도착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nNpdyGsrL1k


2. 우주는 인간의 시간에 살지 않는다. 


스티븐호킹은 외계인과의 접촉을 늘 피하라고 경고해 왔다. 외계의 지적 존재가 지구에 이미 도달했을 때에는 이미 늦는다. 먼 우주에서 지구에 도착했다면 이미 지구인이 상대할 수 있는 정도의 지능이 아니라는 뜻이다. SF영화의 공식과도 같은 외계인들의 한결같은 목표는 행성 식민지화. 대부분의 영화들이 외계인을 적으로 규정한다. 그들이 어떤 존재인지 따지고 분석할 시간이 없다. 그렇지만, 조금 다르게 보자. 인류보다 높은 지적 존재인 것은 맞는데, 그들이 원하는 것은 기껏해야 인간의 생각과 닮은 '식민지화'일까.


나약해 보이는 한 언어학자가 그들과의 소통을 시도한다. 유리벽 넘어 안개처럼 모호한 미지의 세계 속으로 루이스는 먼저 다가가서 방호복을 벗고 자신을 보여준다. 이름을 말하고 외계인의 언어에 귀를 기울인다. 헵타포드에게 '에봇'과 '코스텔로'라는 이름도 지어준다. 

정치적 이해관계와 세계 정세 속에 그의 목표가 온전히 전달될 리 없다. 

"위험을 자초하고 있는 것 알죠?" 군인들은 경고한다.

 

헵타포드의 언어엔 시제가 없다. 앞뒤가 없는 단어, 비선형적 철자법. 그렇다면 남은 질문이 있다. 생각도 그런 식으로 할까? 

사용하는 언어가 생각하는 방식을 결정하고 사물을 보는 시각도 바꾼다는 '사피어워프의 가설'이다. 인류와 헵타포드의 시점 사이 간극을 좁히기까지 시간이 걸렸지만 루이스는 결국 그들의 언어에 도착한다. 그리고 다음 질문을 향해 나아간다. 그들이 지구에 온 목적이 무엇인가.

 '무기를 주다' 그들의 답이다.


'무기'라는 단어에 군대는 긴장하고 날을 세우지만 루이스는 판단을 유보한다. 결론을 내리기는 이르다. 시제도 없고 선형이 아닌 원으로 그려지는 헵타포드의 언어는 표의문자인데 인간과 같은 단어를 쓴다고 해서 사람의 방식과 같은 뜻일까? 루이스는 그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알 수 없는 폭발을 거쳐 나가떨어지고 정신을 잃는다.


3. 인간의 언어 vs 헵타포드의 언어


두 손으로 닿기에도 벅찬 그들의 언어지만, 주변의 온갖 소음과 방해 속에서도 루이스는 그 세계에 받아들여진다. 

"그건 '무기'가 아니야, '선물'이야.(It's not a weapon, it's a gift)"

헵타포드의 '무기'는 무기가 아니라 '선물'이라는 뜻이었다. 그들은 언어를 인류에게 '선물'로 주려고 온 것이다. 그들의 언어를 알게 되면 미래를 볼 수 있게 된다. 헵타포드의 언어는 한쪽으로 흐르지 않는다.

하지만 그 선물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루이스는 대령에게 호소하지만 정치는 예측에서 벗아나지 않는다. 진실을 감당할 수 있는 쪽은 언제나 그렇듯 소수다. 

헵타포드의 시간 속에서 루이스는 유일하게 그의 편에 서 주는 이안을 만난다. 플러팅 솜씨는 형편없지만, 루이스와 함께 일하는 것이 좋다는 담백한 언어를 가진 사람이다. 암호와 부호 같은 헵타포드의 언어에 다가가기 위한 길고 지루한 시간 싸움 속에 늘 이안이 있었다. 점점 수수께끼는 풀려간다.

"무기(선물)는 시간을 연다." 

헵타포드가 준다는 선물은 무엇일까.


4. 미래를 이미 알고 있다 해도


헵타포드의 언어를 알고 루이스는 이제껏 보지 못한 것들을 보게 된다. 기존의 시제가 허물어지고 앞날이 보인다.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미래가 스냅사진처럼 다가온다. 누군가를 만나 결혼을 하고 딸아이를 얻고... 그다음엔 더없는 고통과 슬픔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까지도.

다시 푸른 새벽빛 바다가 투명하게 보이는 루이스의 방이다. 한나가 태어나고, 멀리 보이는 해변에는 헵타포드의 시간을 함께 했던 이안이 서성이고 있다. 

현재에 이르기까지 무언가 작은 시작이 있었다. 질문은 이렇게 시작된다.

"당신의 인생을 처음부터 끝까지 알게 된다면, 바꿀 거야?"

(If you could see your whole life from start to finish, would you change things?)


이제 루이스의 선택은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모든 여정을 알면서 그 끝을 알면서도 난 모든 걸 받아들여.

그 모든 순간을 기쁘게 맞이하지"

(Despite knowing the journey and where it leads, i embrace it, and I welcome every moment of it.)”


헵타포드의 선물을 받은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고백이다.



*컨택트(Arrival, 2016)는 티빙, 왓챠, 웨이브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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