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버튼의 <가위손>
1. 옳은 것과 멋진 일 사이
저녁 식탁의 훈화가 시작된다. 아버지는 인간의 도리를 가르치는 중이다. 길에서 돈가방을 주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친절하게 사지선다형의 보기까지 들어준다. 체제 안의 제도권 교육을 받은 이들에게 답은 하나이다. 언제나 창백한 낯빛에 놀란 토끼눈을 하고 있는 그는 좀 다른 대답을 한다.
"그걸 주워다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겠어요."
정답을 가르쳐주려 아우성인 가족들 사이에 한 명만이 그를 알아본다.
"옳은 일은 아니지만 그건 멋진 거예요."
세상의 이야기들은 나를 알아봐 주는 누군가를 만나 존재한다. 서로를 알아보는 에드워드와 킴의 이야기가 이어지는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pWN8IL_UsWI
2. 그 손을 고치고 싶은가요?
그는 상처를 주는 괴물이다. 손만 움직이면 피를 보고 만다. 심지어 자신의 얼굴에도 그렇다. 흉터가 이미 자신의 일부가 된 지 오래다. 칼날로 잔뜩 포개어진 가위손 때문에 미완성되었다고도 하고 장애라고도 불린다. 남과 다르기 때문에 마을에서 동떨어진 성에 홀로 사는 에드워드는 어느 날 방문자를 마주친다. 아무도 찾지 않는 그곳에 에벌린이 들어선다. 에벌린은 날카롭고 번뜩이는 가위손을 보며 놀라지만, 에드워드는 사람이 싫지 않다. 조심스레 내뱉은 그의 한마디가 이 모든 사건의 시작이었다.
"가지 마요."
정원 나무들이 온통 귀여운 동물 모양을 하고 있는 그 동네엔 가위손이 산다. 처음 봤을 땐 무섭기만 했는데, 가만히 지켜보니 그에게도 쓸모가 있다. 나무도 깎고 강아지 털도 다듬는가 하면, 사람 헤어스타일도 만진다. 뭐 하나 평범한 구석이 없는 가위손이 만드는 스타일은 늘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기존 질서와 체제에 길들여지지 않은 독창적 시선의 결과인 것일까.
사람들은 폭력적인 질문을 쉽게도 한다. 그 손을 고치고 싶지 않나요? 고치고 싶다고 하면 또 이렇게 되묻는다. 그러면 특별함이 사라질 텐데도?
다정한 엄마 역할을 자처하는 에벌린은 에드워드를 두둔한다. 그의 특별함은 손에만 있는 것이 아니에요.
에드워드는 자신의 발명가에게 사람들과 같은 손을 받기 위해 다가서지만, 결국 그럴 수가 없다.
3. 다르다는 이유로 돌아설 때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 입증되고 나면 그 후의 일은 불 보듯 뻔하다. 에드워드는 보기 좋게 이용당한다. 킴의 친구들이 계획한 빈집털이에 동원된다. 그가 아무것도 몰라서 그랬을까? 누명을 쓰고 경찰에 잡혀갔을 때도 입을 꾹 다문 것은 오직 한 가지 이유에서였다. 어떤 고백은 사랑이라는 단어 하나 쓰지 않고도 정확하게 들어맞는다.
"네가 시켜서 했어"
슬픈 눈으로 킴을 바라보며 털어놓는 그 한마디에 에드워드가 어떤 사람인가가 드러난다. 결국 사람은 그가 사랑하는 방식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가위손의 특별함을 칭송하며 이용하던 사람들이 이제 다르다는 이유로 돌아선다. 그들에게 도움이 될 때에는 안 들리던 험담들에 갑자기 무게가 실린다. 경찰도 믿을 수 없어 죽은 것인지 확인하려고 몰려든다. 킴은 에드워드를 지키기 위해 다시는 그를 찾지 않는다.
4. 너만의 방식으로
SF작가 래이 브래드버리의 고백이 떠오른다. 그는 자신이 아홉 살 때 함정에 빠졌다고 느꼈던 순간을 말한다. 그가 미쳐있던 벅 로저스의 만화책을 친구들의 비난에 찢어버렸다. 한 달이 지나서야 잘못된 선택이었음을 깨닫고 다시 만화책 수집을 시작했다. 친구들의 말과 행동이 모든 것을 지배하던 시기에 어떻게 그렇게 빨리 선택을 되돌릴 수 있었을까.
그는 그 상황이 자신의 영웅, 삶의 중심과도 같은 것을 망가뜨렸다는 것을 알았다. 장례식에서 죽은 친구는 살릴 수 없어도, 자신의 영웅의 두 번째 삶을 이어갈 수는 있다. 그렇게 다시 이어진 만화책 수집에서 그의 영웅이 말을 걸어온다.
"그들은 결코 네가 사는 방식으로는 살 수 없을 거야. 어서 해!"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뿐인 삶을 살아야 한다, 삶은 우리에게 생기를 부여한 대가로 그 보답을 원한다. 비록 예술은 우리가 바라는 것처럼 전쟁이나 빈곤, 질투, 욕심, 노화, 죽음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해주지 못하지만, 그 모든 역경 속에서 우리를 새롭게 태어나게 한다.
-레이 브래드버리, <화성으로 날아간 작가> 중에서
영화에서 발명가로 등장하는 배우 빈센트 프라이스는 어린 시절 팀버튼의 우상이었다. 아버지와 불화로 불우한 어린 시절을 겪은 팀버튼은 호러 배우 빈센트 프라이스를 숭상하며 지내던 외톨이였다. 팀버튼의 공상의 세계는 혼자 보내온 시간들의 도피처였고 그로 인해 오늘 우리는 팀버튼의 영화들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남과 다름으로 때로 고통받고 때로 환희를 느꼈을 팀버튼의 길 위에 에드워드의 길이 겹쳐진다.
언젠가 팀버튼 전시회의 벽면에 적혀있던 문장을 기억한다.
"내가 이상한 건가요?"
"맞아 넌 이상해."
"그런데 비밀을 말해주자면 멋진 사람들은 다 그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2010> 중에서
에드워드의 손은 차갑고 날카로운 가위날로 위협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그는 사람들의 작은 호의에도 놀라고 남들을 기쁘게 해주는 변화에 민감한 소년이었다.
무리처럼 휩쓸리는 사람들 사이 언뜻 비친 에드워드의 미소를 찾는 것 또한 이 영화의 묘미다.
<가위손 Edward Scissorhands, 1990>은 디즈니플러스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