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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리티 May 23. 2024

한밤의 고속도로 새벽의 편의점

환상처럼 비치는 도로의 빛을 보았다.


인적이 드문 고속도로를 빠른 속도로 질주하고 있다. 가까이에 차들은 보이지 않았고 구름이 내려앉은 밤하늘과 땅의 경계도 모호했다. 옅은 헤드라이트 빛에 의지해서 숨 막히는 정적 속을 달린다. 계기판의 바늘이 올라가면서 차 안은 온통 긴장감으로 채워진다. 엔진 소음과 바퀴의 마찰음을 따라 빨려 들어가는 듯한 속도감에 압도된다. 표지판의 글씨를 읽으려는 순간 잠에서 깼다. 바람에 날리는 긴 머리카락을 본 것도 같다.


이디스?

시계는 새벽 1시를 가리키고 있다. 이디스를 만난 지 2주가 흘렀고 그날 이후 소식을 모른다. 이 시간에 연락을 해도 될까. 잠도 오지 않아 몇 번을 뒤척이다가 핸드폰을 들었다.

'이디스, 잘 지내는 거지?'

뭔가 덧붙이려다 짧게만 톡을 보냈다. 답이 없다.

잠이 오지 않아서 넷플릭스의 영화를 틀어놓았다. 영화 장면들이 꿈처럼 몽롱해질 무렵 핸드폰에 신호가 왔다.

'진, 안 자면 내려와. 너희 동네 다 왔어.'


슬리퍼를 끌고 후드 티 차림으로 내려갔을 때, 재규어 클래식카 한 대가 서 있었다. 차창이 열리고 이디스가 손을 흔든다.

"로또라도 당첨된 거야?"

놀라기도 전에 난 이미 조수석에 앉아있었다.

"... 빌린 차야. 고속도로를 타고 돌아오는 길이야. "이디스의 눈이 웃고 있다. 우리는 도시의 불빛들이 별처럼 반짝이는 거리를 달린다.

"한 밤에 고속도로를 달리면 잡념이 사라지거든. 속도를 내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걸 체감하고 나면 불안이 좀 덜어진다고 할까. 약간은 두려운 상태에 뛰어들어서 지금의 불안을 좀 덜 느끼게 하는 거지."

"음... 그렇게까지 해서 떨치고 싶은 불안이 뭔데?"


이번에는 나도 이 상황 속으로 직진했다. 이디스는 정면만을 바라본다. 꼭 운전 때문만은 아니었다.

"... 진, 그런 적 있어? 아침에 일어났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 도통 모를 때"

"요즘이 그래. 남의 길을 기웃대는 기분이야. 그렇다고 내 길이 어딘지도 모르면서."

"예전엔 그런 거 몰랐거든. 어디로 갈지 몰라도 아침이면 늘 설렜어. 오늘 어디로 가게 될지 모르는 그 기대감 때문에."

차는 코너를 돌아 좁은 길로 들어서고 있다. 나는 이디스의 말을 기다렸다.

"진, 나는 여기 서울로 도망친 거야. 저번 그 클럽에서만이 아니라, 지금의 나에게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나는 그때 그의 눈 속에서 파도처럼 밀려오는 시간의 그림자를 언뜻 본 것 같다. 거칠게 몰려와서 바닷가에 부서지는 하얀 포말들처럼 순식간에 날아가버리는 것들. 붙잡으려고 손을 뻗어도 닿을 수 없지만 그렇다고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닌 시간을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새벽의 도로의 주인은 불 밝힌 편의점이다. 우리는 차를 세우고 간단한 스낵과 음료를 골랐다. 이디스의 호텔에서 우리는 잃어버린 시간을 되살려볼 작정이었다.


Doves - Catch the Sun

https://youtu.be/vM05Jp0ix3Y?si=fKwpwcLP72y_w0S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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