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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리티 May 30. 2024

내가 되고 싶은 어른이 될 수 있을까

다른 사람에게 말할 수 없는 나만의 여행이 있다면.


이디스는 뉴욕을 떠나 스스로를 서울에 던졌다. 유년 시절의 가느다란 기억의 끈을 쫓아 도시의 구석구석을 헤매고 다녔고 무언가가 잡힐 때까지 자신을 내던져서 지금 이 호텔로 돌아오기를 계속했다. 그의 코스는 선명하고 곧은길은 아니었다. 출발점은 있었으나 지그재그로 비틀거리고 폭주하기도 했으며 공중에 붕 떠있는 듯 한 치 앞도 더 나아갈 수 없는 뒤죽박죽의 나날들이었다. 다만 그는 멈출 수는 없었다. 하나의 일정한 출발점이 있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만신창이가 되어도 그는 매번 홈으로 돌아왔다.


그는 피아니스트가 되는 평온한 미래를 기대하지는 않았다.  이 길이 운명이니, 음악가가 되기 위해 태어났느니 하는 흔한 말들은 이디스에게는 전혀 와닿지 않았다. 피아노를 칠 때만큼은 시간이 빨리 갔고, 연습은 좀처럼 지루하지 않았다. 그렇게 보내는 시간이 늘어갔고 자연스럽게 그 길에 들어섰다. 행복한가에 대해 깊이 묻거나 하지도 않았다. 그 시간이 빨리 간다고 해서 고통이 없다는 뜻은 아니었다.

낯선 나라의 학교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그곳의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들과 같은 옷을 입고 있다는 생각은 아무래도 들지 않았다. 삶은 결국 어떤 고통을 선택하느냐의 문제였다. 


보이지 않는 벽.  

물론 그것에 꼭 낯선 나라라고 해서 가로막힌 것은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벽이 높아 보일 때 피아노는 좋은 친구가 되어주었고 쉽게 다다를 수 없는 미스터리이기도 했다.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도 완전히 정복할 수 없는 그 영원한 신비가 이디스를 지탱해 주었다.  


갑작스러운 집안의 몰락은 숨 가쁘게 그를 몰아냈다. 친구들처럼 연습에 집중할 수 있는 여유 따위는 없었다. 모든 호흡의 순간이 지폐 위의 숫자로 환산되는 삶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레코드사에서의 몇 달은 정신없이 흘러갔지만, 흥행의 법칙을 학습하는데 모든 것을 걸었고, 눈을 뜨고 있는 시간들이 그렇게 달아났다. 운이 좋게도 기획한 음반을 흥행시키면서 집안의 문제는 해결되었다. 더 크고 많은 일들이 그를 향해 달려왔지만, 이디스는 목표 숫자에 도달하자 거짓말처럼 사표를 던졌다. 

그리고 다시 돌아올 수 있을 줄 알았다.


문제는 피아노였다. 자신이 치는 소리를 듣기가 힘들어졌다. 더 많은 사람들의 선택을 받기 위해서 흥행을 만든 것뿐인데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 차트에 오를만한 곡을 끊임없이 연구해 온 그 시간이 이디스의 무엇을 바꾸어놓은 것일까. 손가락 사이로 모래가 스르르 빠져나가듯 어디에서인지도 모르게 보석을 잃어버린 기분이다.

정말로 소리가 달라진 것인가. 아니면, 소리를 내는 사람이 바뀌어버린 것인가. 어느 쪽이든 중요하지는 않다. 어떻게 제 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까. 

출발점만 있고 종착지가 보이지 않는 이 여행의 끝은 어디일까.


"진, 나는... 위대한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니야. 그런데, 지금은 그냥 그런 질문만 들어.

나는, 어렸을 때 내가 되고 싶었던 그런 어른이 될 수 있을까. 

할머니집 마당에서 물을 튀기며 뛰놀 때 생생하던 그 감각들, 나무 냄새 퍼지는 피아노방에서 아무도 듣지 않는 연주에도 채워지던 그 마음을 누군가에게 들려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꿈결처럼 모호한 이디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되고 싶었던 어른이 된다는 것이 이렇게 현실에서 먼 일인 줄은 몰랐다.

작은 실수에도 잠 못 들고 뒤척이던 밤들이 떠오른다. 왜 이렇게 많은 실수와 잘못을 하고 살아가는지 이유를 모른 채 눈감아야 했던 시간들. 

여전히 정답을 알지는 못 한다. 그 암흑으로 가득 채워진 우주 속에서 아주 작은 빛이 서서히 떠오른다.

  

위험하지 않은 삶은 무언가를 상실한 것이다.  



The National - About Today

https://www.youtube.com/watch?v=_EJYQR2D7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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