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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리티 Aug 08. 2024

제비다방에서 보낸 한철

이상의 <자화상>

그 카페에 가면, 우물 안에서 밴드가 공연을 한다.


1층 좁다란 테이블로 둘러싸인 공간이 중앙에 비어있는데, 그 아래를 바라보면 지하 무대가 있다. 수다를 떨면서 음악도 듣고 싶다면 우물처럼 뚫린 공간을 내려다보면서 차를 마시면 된다. 공연 위주로 집중하고 싶다면 코너의 계단을 따라 지하로 내려가서 무대 앞에 자리 잡는다. 콘서트홀이 아니기 때문에 작은 플라스틱 의자에 끼어 앉아야 한다. 사실, 무대라고 하기에도 열린 옷장처럼 좁은 공간이지만 이런 친밀한 무대를 어디에서도 보기는 쉽지 않다.


이 카페의 이름은 '제비다방'. 일제강점기 시인 이상이 개업했던 카페의 이름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종로 피맛골 근처에 있던 제비다방은 2년 정도 있다가 사라졌지만, 아마도 전국 곳곳에 똑같은 이름을 가진 카페가 숨어있을 것이다. 내가 다니던 곳은 홍대 근처 상수동의 제비다방이다.

천정이 뚫린 무대가 있는 이 독특한 공간은 건축가들이 만든 카페이다. 볕 좋은 날엔 1층의 통창을 열어놓아서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볼 수 있고, 저녁에는 인디 뮤지션들의 무대가 있다. 아, 그래서 어두워지면 간판은 '제비다방'에서 '취한 제비'로 바뀐다. 1층 테이블에 앉아서 벽을 보면 궁체로 이렇게 쓰인 액자도 걸려있다. '돈도 없고 X도 없지만'(비속어라 X처리)

술기운에 2차로 이곳에 들르곤 했던 언젠가 친구가 그 액자를 보며 킥킥대던 기억이 난다. 그러니까 여기 가훈이라는 거지? 근데 이렇게 소중하게 다룰 일이야?


가훈인지 아닌지 확인하진 않았지만, 이 카페의 '스피릿'을 어느 정도는 반영하고 있다. 홍대 일대의 어지간한 음악가들은 다 이곳을 거쳐갔고, 메이저가 된 후에도 종종 이 무대를 찾는다. 크라잉넛 같은 인디 1세대부터 장기하, 혁오 등 리스트는 끝도 없다. 언젠가는 아이유가 깜짝 방문을 해서 혁오와 함께 공연알 하기도 했다. 입장료는 따로 없고, 공연 도중에 박스가 지나가면 자발적으로 낼 수 있는 만큼 내는 것이 이곳의 규칙이다. 카페가 유명해진 이후에도 달라진 것은 없다. '돈도 없지만' 실컷 놀고 즐길 수 있는 곳. 제비다방을 만든 사람들의 초심이 보인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썼고 봉준호 감독의 외할아버지로도 유명한 소설가 박태원은 그 시절 제비다방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제비' 헤멀쓱한 벽에는 십 호 인물형의 초상화가 걸려있다. 나는 누구에겐가 그것이 그 집주인의 자화상임을 배우고 다시 한번 치어다보았다. 황색 계통의 색채는 지나치게 남용되어 전 화면은 오직 누런 것이 몹시 음울하였다. 나는 그를 '얼치기 화가'로군 하였다.   

-박태원, <이상의 편모 1937> 중에서


피맛골 제비다방에는 이상이 직접 그린 자화상이 걸려있었다. 이상이 그린 자화상은 당대의 어느 사조에서도 볼 수 없는 스타일이었다. 박태원이 '얼치기 화가'로 볼 만큼 익숙하지 않은 것이었다. 흐릿하면서도 전형적이지 않은데 그중 어딘가를 응시하는 눈동자가 뇌리에 박힌다. 식민지의 땅에서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들을 그림으로 드러낸 것이 아닐까. 시대 속에 비친 자신을 바라보는 어떤 의식이 전해지는 그림이다.


이상은 글도 쓰고 그림도 그렸지만 건축가이기도 했다. 제비다방은 어쩌면 이상을 향한 건축가들의 오마주인지도 모른다. 이상의 작품들은 난해하여 아직까지도 그 뜻을 풀려는 학자들의 연구가 계속되고 있다.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을 최근 물리학자들이 밝혀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글을 4차원 시공간으로 구현하려는 이상의 시도였다고 한다. 아마도 일제강점기의 한국이 아니라, 영미권이나 유럽에서 태어났으면 베게트나 랭보 못지않은 유명세를 누리지 않았을까.

그의 유명한 시들 많지만, 나는 어쩐지 '자화상'에 시선이 오랫동안 머물게 된다.


자화상(自畵像)


여기는 도무지 어느 나라인지 분간할 수 없다.

거기는 태고와 계승하는 판도(版圖)가 있을 뿐이다.

여기는 폐허다. 피라미드와 같은 코가 있다.

그 구녕으로 '유구한 것'이 드나들고 있다.

그 공기는 퇴색되지 않는다.

그것은 선조가 或은 내 전신이 호흡하던 바도 그것이다.

동공에는 창천이 응고하여 있으니 태고의 영상의 약도다.

여기는 아무 기억도 유언되어 있지는 않다.

문자가 닳아 없어진 석비처럼 문명의

'잡다한 것'이 귀를 그냥 스쳐갈 뿐이다.

누구는 이것이 떼드마스크(死面)라고 그랬다,

또 누구는 떼드마스크는 도적맞았다고도 그랬다.

주검은 서리와 같이 내려있다. 풀이 말라버리듯이

수염은 자라지 않는 채 거칠어질 뿐이다,

그리고 천기(天氣) 모양에 따라서 입은

커다란 소리로 외우 친다... 수류(水流)처럼


도무지 어느 나라인지 분간할 수 없는 폐허 같은 땅을 살았던 시대에 대해 생각해 본다. 서리처럼 내려앉은 죽음. 풀이 말라버리듯 자라지 않은 채 거칠어진 수염.

몽마르트르의 에릭 사티는 '너무 낡은 시대에 너무 젊게 세상에 왔다'라고 한탄했지만 시인 이상은 시대의 불가항력 속에서 질식할 듯한 심정은 아니었을까. 이상이 김기림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다.


암만해도 나는 19세기와 20세기의 틈바구니에 끼어 졸도하려는 무뢰한인 모양이요. 완전히 20세기 사람이 되기에는 내 혈관에는 너무도 많은 19세기의 엄숙한 도덕성의 피가 위협하듯이 흐르고 있소.


어떤 사람은 희망도 절망도 선택할 수 없다.  


새소년 -파도 @제비다방

https://www.youtube.com/watch?v=QsAaCCHHmS8



동공或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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