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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리티 Aug 22. 2024

차라리 기계가 되고 싶어

스스로를 재발명한 앤디 워홀,  <외로운 도시> 중에서

미래의 인류는 결국 기계인간이 될 것인가.


<사피엔스>의 유발 하라리는 '호모데우스'라는 개념으로 기계와 섞인 인간을 예고하고 있다. AI가 시대적 화두로 떠오른 요즘 그냥 넘기기에는 편치 않은 이야기다. 정말로 그런 날이 올까? 설마, 나 살아있는 동안은 아니겠지?


돌아보면 기계인간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는 어제오늘 일은 아니었다. 꽤 오래전 애니메이션부터 우리는 이미 기계인간과 친숙해져 있었다. <은하철도 999>의 엄마 잃은 소년 철이는 기계인간이 되기 위해 메텔과 함께 은하를 여행한다. <미래소년 코난>에서 힘없는 사람들은 기계인간의 지배를 받는다. <공각기동대>의  사이보그요원 역시 인간을 기계로 변형시킨 것이었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인간을 배반하는 인공지능의 복수를 충격적으로 바라본 이후, <블레이드 러너>의 타이틀이 되었던 2019년도가 벌써 한참 지났다. 요즘 세대들은 2049년으로 블레이드 러너를 바라본다. AI가 등장하는 영화 목록은 끝도 없이 쏟아지고 있다.  

각각 기계인간의 형태와 방법은 다를지 몰라도 하나의 공통된 발상은 있다. 인간이 하지 못하는 불가능의 영역을 기계가 되어 완성하고자 하는 욕망. 미래학자들은 신이 되고자 하는 인간의 열망을 우려한다.


초월적 존재가 되고 싶은 지는 모르겠으나, 자신의 불안이 견딜 수 없어서 차라리 기계가 되고 싶어 했던 사람이 있다. 유명하기로 유명한 미술가 앤디 워홀이다. 그는 1963년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기계는 문제를 덜 일으킵니다. 내가 기계라면 차라리 좋겠어요. 안 그래요?"


외로움의 그림자를 전혀 찾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아마 앤디 워홀이 아닐까. 적어도 이 책을 읽기 전에는 그랬다. 살면서 피카소 못지않은 유명세, 부와 명예를 누렸고 실크 스크린으로 찍어낸 그의 작품들은 (적어도 목이 꺾이도록 천정화를 그렸던 미켈란젤로 같은 예술가들에 비하면 비교적) 쉽게 이루어지는 듯 보인다. 색채와 재료에 대한 탁월한 센스와 비즈니스 감각. 그 모든 요소들이 이렇게 잘 맞아떨어지는 경우가 흔하지 않다.  작품 못지않게 유명했던 그의 작업실 '팩토리'는 사교의 메카 같은 장소로 셀럽들의 발길로 항상 붐볐다. 말하자면, 앤디 워홀은 '사교성의 인간화'였다.


그런 그에게도 역대급 반전이 있다.

올리비아 랭의 <외로운 도시>에서 작가는 앤디 워홀을 외로움 속에서 자신을 재발명한 인물로 바라본다.


어린 시절 앤디에게서 눈에 띄는 특징은 그림 솜씨와 괴로울 정도의 수줍음이었다. 창백하고 약간 딴 세상 사람 같은 아이였고, 앤디 모닝스타로 개명하겠다는 몽상을 했다. 그는 어머니와 열렬하게 가까운 사이였는데, 특히 후유증으로 류머티즘열에 걸렸을 때는 더 했다.... 앤디의 경우 항상 여학생 친구들도 있고 적극적으로 괴롭힘을 당한 것은 아니었지만, 아무리 공정하게 말해도 병이 나아 다시 등교한 뒤 그가 다니던 셴리 고등학교 교정에서 사교적으로 호감을 하고 인기 있는 존재였다고는 할 수 없다.

-<외로운 도시> 중에서, 올리비아 랭

슬로바키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앤디 워홀은 병으로 인한 신체적 열등감을 갖고 있었고 사람들 앞에 나서기를 꺼렸다. 그저 어머니와 붙어 다니는 아이. 따돌림조차 과분한, 반친구들의 관심 밖에 있던 소년. 수줍은 성격이 먼저였는지 병이 먼저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상관관계가 있었고, 스스로의 고백은 더욱 처참하다.

"아마 친해지고 싶었겠지. 아이들이 서로에게 고민을 털어놓는 걸 보면 따돌림당한 기분이었으니까. 아무도 내게는 고민을 털어놓지 않았거든. 아마 나는 그들이 속마음을 털어놓고 싶은 부류의 사람이 아니었겠지.”


팝아트로 유명해지기 전에도 전시회를 열고 사교 모임에도 참여해 보는 등 갖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그의 작품들은 너무 상업적이고 과장되고 엉성하다는 이유로 무시당했다.


이제 그만.

그는 자신에게 새로운 질문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다시 고독을 마주했다.

사람은 서로 간의 차이 때문에 상처받는다. 이걸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똑같음.

앤디 워홀이 주목한 것은 '똑같음'으로 이루어진 세계였다. 극도의 수줍음과 적응력이 부족한 소년이 꿈꾸는 이데아였다. 이를 테면 코카 콜라를 마신다면 광부는 대통령, 영화배우와 같은 범주에 들어간다. 비슷하거나 똑같다면 차이는 드러나지 않을 것이고 자연스럽게 상처는 감춰질 것이다.

그의 새로운 작업은 자신의 결점을 더 드러내는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장점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불안을 강조했다. 애써 정상으로 보이려 하거나 개성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때부터 그의 명성은 폭발하듯 뻗어나갔다.


1960년대 초에 워홀은 스스로를 재발명했다. 패션 잡지와 백화점 광고에 쓰일 변덕스러운 구두 드로잉을 하는 대신에 그는 더 하찮은 대상, 어느 집에나 있고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물건들의 남작하고 상업화하고 섬뜩하도록 똑같은 그림을 만들기 시작했다.  

-<외로운 도시> 중에서, 올리비아 랭

그의 '똑같음'은 상품에만 제한된 것이 아니었다. 마릴린 먼로, 엘비스 프레슬리, 말론 브란도, 마오쩌둥, 무하마드 알리 등 인물들도 줄을 이었다. 반복되고 재생산되고 그렇게 계속 찍어냈다. 이제 그의 작품 대상이 되는 것은 당대의 유명인사라는 또 하나의 인증인 셈이었다.


하루아침에 유명해진 앤디에 대한 올리비아 랭의 표현이 인상적이다.

'눈물 젖은 욕구의 소유자인 앤디가 어떻게 마취된 팝의 제사장으로 변신하게 되었는가?

앤디워홀은 더 이상 수줍은 비적응자가 아니었다. 그렇게 고독의 그림자 따위는 딴 세상으로 흩어져갔다. 이런 변화를 겪으며 누구보다 놀란 것은 앤디 워홀 그 자신이었다.


"살아오면서 언젠가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고 막역한 친구를 얻고 싶은 때가 있었는데, 함께 있을 사람을 한 명도 얻지 못했다. 그러니까 내가 가장 혼자 있기 싫다고 느낀 바로 그 순간 나는 정말로 혼자였다. 그런데 내가 혼자인 게 더 낫고, 자기 고민을 털어놓는 사람을 곁에 두지 않는 게 낫겠다고 판단하는 순간, 평생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들이 나를 쫓아다니기 시작했다...... 내가 내 자신의 의지로 외톨이가 되자마자 ‘추종자’라 할 사람들이 생긴 것이다. "

-<외로운 도시> 중에서 올리비아 랭


앤디 워홀이 기계가 되고 싶다고 말했던 것은 인간에게 사랑받고 싶은 욕구에서 해방되고 싶다는 뜻이었다. 늘 타인의 사랑을 갈망하고 소중하게 여겨지고 싶은 불안감에서 해방되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을 놓아버리자, 역설적으로 대중에게 사랑받게 되었다.  


loneliness is a very special place.

고독은 아주 특별한 장소.


올리비아 랭은 앤디 워홀이 이룬 스스로에 대한 재발명의 근원을 고독에서 찾고 있다.

우리는 나만 아는 그 장소를 가지고 있을까.



Daft Punk - Something About Us

https://www.youtube.com/watch?v=sOS9aOIXP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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