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베리티 Aug 26. 2024

밤의 버스를 타면

토니 주트의 <기억의 집>

밤의 버스는 도시를 항해한다.

혼자 운전하는 나만의 차도 좋지만, 버스는 조금 더 사람들 사이에 던져진 기분이다.


불빛으로 반짝이는 거리를 달리며 전혀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익명이 된다는 것도, 차창 너머의 풍경을 멍하니 쳐다볼 수 있는 것도 좋다. 헤드폰이라도 끼고 있으면 나만의 BGM이 되고, 밤공기를 타고 전파로 울려 퍼지는 차 안의 라디오 소리는 더욱 선명하다. 라디오를 잘 듣지 않게 된 시대에 차 안이야말로 '우연의 음악'을 만날 수 있는 최고의 공간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떠오르는 책이 하나 있다.


역사가 토니 주트의 회고록에서 버스 타는 것을 좋아하는 소년을 만난다. 케임브리지 출신의 유대인 역사학자 주트는 옥스브리지, 뉴욕 대학 등에서 교수로 지내다가 2008년 루게릭 병에 걸린 이후, 2년 투병 끝에 예순두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삶을 돌아볼 때 잊을 수 없던 기억 중에 하나는 밤에 부모님 몰래 집을 나와 버스나 기차를 타고 도시를 떠돌던 시간들이었다.


겨우 열한 살이었던 나도 그린라인 버스가 교통수단이라기보다는 도서관이나 옛날 책방처럼 차분한 냄새가 난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허무맹랑한 연상을 하게 된 것은 소란스럽거나 웅성거리지 않고 차분한 몇몇 공공장소들 때문이다....(중략) 어릴 때 나는 사람들 틈에 있다면 늘 거북하고 뭔가 어색했다. 가족들과 있으면 그 느낌이 더했다. 홀로 있는 시간이 더없이 좋았지만, 그러기가 쉽지 않았다.... 혼자서 어딘가로 가고 있을 때만큼 행복한 일은 없었고, 그곳에 다다르는 시간이 오래면 오랠수록 더 좋았다. 걸으면 유쾌했고, 자전거를 타면 즐거웠으며, 버스여행은 재미있었다. 하지만 기차는 곧 천국이었다.
 
- <기억의 집> 중에서, 토니 주트


건축가들이 늘 말하는 살기 좋은 장소의 필요조건. 즐겨 머물던 공공장소는 우리의 기억 한 자리를 차지한다. 소란스럽거나 웅성거리지 않는 그 장소는 나도 모르는 사이 나의 정서로 스며든다.

주트가 기억하는 행복은 어디론가 혼자 가고 있을 때로 기억된다. 사람들을 상대하여 강의하는 일을 하지만 가족과 있을 때조차 피할 수 없는 어떤 어색함. 적어도 어딘가로 가고 있는 동안에는 그걸 잊을 수 있다. 걷는 것도 자전거도, 버스도 모두 좋아했지만 주트의 천국은 바로 기차였다.


한 곳에 머물지 않고 어디론가 나아가는 것에 행복을 느낀다는 것이 어떤 면에서 그 사람의 기질을 반영하는 것은 아닐까. 주트는 자신의 성향을 이렇게 표현했다.

'보수적인 지적 관습은 나와 잘 어울렸다. 그러나 뭔가를 놓쳤다는 기분은 떨칠 수 없다.'


스스로를 진보주의자나 보수주의자로 단정하기보다, 더 정확하게 스스로를 객관화한 문장이다. 이따금씩 그렇게 열띤 주장을 펼치던 학자들이 실행에 있어서는 또 다른 면모를 보일 때면 실망할 때가 있었다. 이론과 현실은 다르다는 것을 그런 식으로 경험하고 싶지는 않았다. 누군가는 그런 삶을 분명히 살고 있을 것이고 끊임없이 그들을 발견함으로써 용기를 잃고 싶지 않았다.


그 시절을 허비했다거나 허투루 보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별일 없이 1960년대를 보내면서 안락함을 즐기는 세태에 편승했다면 안락함을 즐기는 세태에 편승했다면 영원히 얻지 못했을, 나름대로 많은 기억과 깊은 교훈을 얻었다. 케임브리지에서 공부할 무렵 동기들이 이론적으로만 알고 있었던 이념적인 운동을 나는 실제로 경험하고 이끌었다. '신봉자'가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그토록 강한 동질성과 의심 없는 충성심을 이끌어내면서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도 알았다. 나는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시온주의자가 되는 것도, 마르크스주의자가 되는 것도, 코뮌주의를 믿는 이스라엘 정착자가 되는 것도 모두 그만두었다....

(중략) 우리 세대는 스스로 급진파인 동시에 엘리트의 일원이라고 생각했다. 이 말이 모순적으로 들린다면 그것은 우리가 대학시절을 거치면서 직관적으로 흡수한 어떤 자유주의적 혈통에 내재된 모순이다. 만인의 보다 큰 선을 위해 왕립발레단과 예술원을 설립했지만, 예술적 소양을 갖춘 전문가들에게 경영되도록 했던 귀족적 케인즈가 가진 모순이다.

- <기억의 집> 중에서, 토니 주트


케인즈 신봉자 중 한 사람으로서 주트가 그를 거론한 부분이 흥미롭다. 어떤 대상의 신봉자가 될 때 충성심은 바로 떠올리지만 그 대가는 간과하기 쉽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듯 믿음, 신뢰, 사랑이 행동이 될 때 그에 따른 대가 역시도 감수할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60년대 반전주의와 68 혁명의 광풍이 세계를 강타할 때 주트 역시 그 중심에 있던 세대였으나 그는 모든 가치들이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수렴되는 사이,  그 허점들을 직감했다. 그 안에 뛰어듦으로써 모순을 경험하고 다시 빠져나오는 경험에 대해 고백한다.  그 사이에서 터득한 한 가지는 자기편을 비판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용기라는 사실이다.


세월이 지날수록 확고해지기보다 의심스러워지는 것들이 있다. 최근 나는 '젊어서는 진보, 늙어서는 보수가 정상'이라는 말에 대해 의심했다. 그토록 숱하게 인용되는 윈스턴 처칠의 발언. 20대에 보수이면 열정이 없는 것이고, 40대에 진보라면 뇌가 없는 것이라는 말.

정말 그럴까? 이 이야기는 나이 들어서 보수가 되는 것이 타당하다는 합리화를 넘어, 더 나아가서는 진보인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어리석다는 조롱이 섞여있다. 이 문장의 근거를 찾다가 발견한 것이 있다.

그 발언은 칼 포퍼의 것도 윈스턴 처칠의 것도 아니며, 확실한 출처가 없다고 한다. 가장 오래된 안셀므 바트비의 인용은 보수주의자 에드먼드 버크를 원작자로 지목하는데, 버크의 저작에서는 그 문장을 찾을 수 없다.

다만, 조지 버나드쇼의 1933년 홍콩대학 연설문에서 일부를 찾을 수 있다.


"목젖까지 공산주의에 몸을 던지세요. 만약 여러분이 스무 살에 혁명가가 되고자 하지 않는다면 쉰이 넘어서는 구제불능 노인네가 되어버릴 것입니다. 반면 스무 살에 이미 '빨갱이 혁명론자' 라면 마흔이 되어서도 시류를 쫓아갈 가망이 좀 있습니다. "

 "Go up to your neck in communism because if you don't begin to be a revolutionist at the age of twenty then at fifty you will be a most impossibe old fossil.
If you are a red revolutionary at the age of twenty you have some chance to being up to date when you are forty."  

- 1933년 홍코대학 연설 중에서, Georgy Bernard Shaw

 

버나드쇼의 연설은 이데올로기를 -진보나 보수 성향 자체를 강조한 것이라기보다는, 이데올로기에 몰입하는 젊은이의 광적인 열정이 시류나 유행을 좇는 기질에 가까운 것이라는 뜻이다. 그 기질은 머리가 희끗해진다고 쉽게 변하지 않는다. 시대가 변할 뿐. 그러니까 나이 든다고 보수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무엇엔가 쉽게 빠져드는 기질이 그 시대의 지배적인 패허가린릏 따르게 한다. 우리 역시 운동권 출신들이 시대의 변절자가 되는 상황을 얼마나 많이 목도하는가. 버나드쇼의 통찰에 공감한다. 변절이라기 보다는, 기질의 문제일 수 있다.


주트의 책은 정치나 사상에 대해 의심스러운 부분들을 구체적 경험을 통해 돌아보게 한다. 그는 세대의 일원으로서 역사를 살아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다. 자신의 삶을 역사학자로 살아냈다. 또 사소하고 시시한 것들 그냥 지나치지 않는 사람이었다.


뮈렌의 좁은 철도가 지나가는 시시한 길이 있다. 그 중간쯤에 있는 작은 카페에서 -거기가 그 노선의 유일한 정거장이다. 스위스식 노천음식을 판다... 기차는 당연하다는 듯 초단위까지 철저하게 정확한 시간에 도착하고 출발한다. 아무 일도 없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곳이다. 우리는 인생을 어디서 시작할지는 선택할 수 없지만, 인생을 어디서 마칠 수는 결정할 수 있다. 나는 내가 어디로 가고 싶은지는 결정할 수 있다. 나는 내가 어디로 가고 싶은지 잘 안다. 그 작은 기차 안에서 그 어디로도 가지 않을 것이다. 영원히.

  - <기억의 집> 중에서, 토니 주트


열한 살 소년 시절에도 항상 머물고 싶었던 곳.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혼자 떠나는 길. 마지막 삶의 기억은 그곳으로 향한다.

아무 일도 없지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곳으로 도착하는 기차.

그곳이 주트가 마지막으로 머물고 싶은 곳이었다.


Talking Heads - Once in a lifetime

https://www.youtube.com/watch?v=fR0jgT9UX0Q












이전 10화 차라리 기계가 되고 싶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