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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리티 Aug 19. 2024

그녀의 방탕한 카페 생활

<뉴요커>의 기자, 재닛 플래너

어떤 우정은 약속을 배반함으로써 완성된다.

원고를 불태워달라는 유언을 지켜주는 것이 우정이었을까.


카프카의 친구 막스 브로트가 유언을 지키지 않음으로써 오늘날 우리는 카프카를 알게 되었다. 어떤 이유로 그런 유언을 남겼는지는 카프카 본인만이 알겠지만, 이 생각에는 설명할 수 없는 끌림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1900년대 초 <뉴요커>지의 기자인 재닛 플래너 역시 죽은 뒤에는 자신의 모든 원고를 불태워달라고 부탁했다. 자신이 "누군가 부단히 방어하지 않는다면, 하찮고 볼품없어 보일 많은 생각과 희망을 일생동안 기록한 사람"이라는 이유였다.   

다행히도, 그녀에게도 막스 브로트 같은 친구가 있었다. 친구 작가였던 솔리타 솔라노가 그 원고를 지켜내어 미국의회도서관에 기증되었다. 


때때로 생각한다. 작가에게 자신의 글이 가치 있다고 느껴지는 때가 있다면 언제일까. 대부분의 작가들의 주변에는 글 쓰는 이들이 널려있을 것이고, 또 프로페셔널하게 일하는 중이라면 칭찬을 받을 일은 그리 흔하지 않다. 수정에 또 수정을 반복하는 나날들이 일상일 뿐. 언젠가 프랑수아즈 사강의 에세이에서 도대체 자신의 글을 칭송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만나보고 싶다며, 농담처럼 쓴 부분을 읽은 적이 있다. 

타인의 인정과도 같은 외부적인 요인보더 더 크게 작용하는 것은 스스로에 대한 인식이다. 재닛 플래너가 연재했던  <뉴요커> 지는 당대의 작가라면 누구나 기고를 꿈꾸는 잡지고, 하나의 글쓰기 스타일의 모본이기도 했다. 재닛 플래너는 1947년 프랑스 정부에서 주는 레지옹 도뇌르 훈장도 받았고, 스미스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뿐 아니라, 그 외에도 수많은 상을 받았다. 이쯤 되면 글 쓰는 자부심이 충분해도 무리일 것이 없는데 그녀는 스스로를 한낱 기자일 뿐, 대단한 작가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재닛 플래너는 '1920년대 미국에서 발견할 수 없는 예술과 미를 찾기 위해' 파리로 날아왔다. 미국의 청교도주의, 물질주의, 위선 표준화를 경멸했던 그녀는 당시 모더니즘의 중심이었던 파리에 거주하면서 프랑스에서의 삶을 이해하고 기록하려고 했다. 

그녀의 글쓰기는 주목받았지만 더욱 매력적이었던 것은 생활방식이었다. 

방탕한 카페 생활자.

재닛 플래너의 파리 생활은 이렇게 요약된다. 그녀는 20세기 파리의 지성과 문화 중심지 역할을 했던 카페 드 마고나 카페 플로르에 늘 있었다. 그 외의 시간은 호텔에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피츠제랄드 부부처럼 사치스러운 생활을 뜻하는 것은 아니었다. 카페에서 먹고 글 쓰던 생활과 함께 그녀가 지내던 호텔에 대한 기록이 있다. 


"일을 그만둔 뒤 우리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돈이 없었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호텔은 우리에게 안성맞춤이었다. 방값이 하루에 1달러였고 센 강과 루브르 박물관 근처였으며 버스 정류장도 가까웠다. 다른 것은 다 좋은데 시설은 별로였기 때문에 나중에 우리가 만들어 넣었다... 꼭대기 층은 모든 투숙객에게 정말 중요했는데 20호실 옆에 호텔에서 하나뿐인 욕실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욕조도 변변한 의자도 없었다.... 여러 모로 우리에게 이상적인 호텔이었다. 번거로운 집안일을 할 필요가 없었고, 간섭받지 않고 일과 연구를 할 수 있었으며, 온갖 즐거움이 걸어갈 수 있는 거리 안에 있었다. " (재닛 플래너의 기록)
 
-<파리는 여자였다> 중에서, 안드레아 와이스


돈이 없던 상황에서도 기운을 북돋울 수 있는 호텔. 그 방은 하루 1달러짜리에 욕조도 의자 하나 없었지만, 필요한 것을 투숙객이 만들어 넣을 수 있었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여성들의 글쓰기에 가장 큰 방해물이 되기도 하는 집안일에서 해방되는- 버지니아 울프가 얘기했던 '자기만의 방'의 다른 버전이었다. 

특히나 '걸어갈 수 있는 거리 안에 있던 온갖 즐거움', 이 부분이 끌린다. 어디든 차를 타고 갈 필요도 없이 발 닿는 곳에서도 충분히 즐거운 생활. 여성에 대한 통념을 깨는 그 방탕한 카페 생활이야말로 다른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게 되었고 그녀의 글이 주목받은 이유이기도 했다. 


전쟁은 문화와 예술 비평을 쓰던 그녀를 바꾸어놓았다. 세계 대전을 겪으면서 그는 전쟁과 정치에 대해 기고했다. 그녀는 소설처럼 기사를 썼고 독자들은 '재닛의 정신이 작동하는 방식'을 매혹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강력한 정치적 견해를 고수하기보다는 한계 밖으로 자신을 몰아내며 얻은 글쓰기의 과정 속에서 재닛은 '그 세대를 대표하는 자신감과 지성의 목소리'가 되었다. 


"어쨌든 유럽과 프랑스의 정치는 소설처럼 소리 내는, 공포 스릴러처럼 소리 내는 무서운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허구를 상상할 수 있는 단위생식적인 창조력이 없어서 소설을 쓰지는 못했지만, 역사에 맞서 스스로를 구하지 못했던 수백만에게 벌어진 일들이 내 마음속에서 자가수정할 수 있을 만큼 많았다.... 지난 7,8년 동안 <뉴요커>에 '파리에서 온 편지'를 기고하면서 소설을 쓰고 있다고 느낀 적이 많았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받은 엄청난 보답이다." (재닛 플래너의 기록)

 -<파리는 여자였다> 중에서, 안드레아 와이스


소설을 쓰고 싶었지만 대단하지 못한 기사를 쓰고 있다고 생각했던 작가 재닛 플래너. 

어떤 글쓰기 장르는 형식미라는 부분에서 그 자체로 우월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예술에 있어서 특정 장르이기 때문에 우월하다는 것은 사람들이 흔히 하는 착각은 아닐까. 어떤 장르이든 잘하는 사람이 주인일 수 있다.


결핍을 알면서도 꾸준히 해나가는 것. 우리는 그 과정에서 보답을 받을 수 있으므로.


Stereolab - Lo Boob Oscillator

https://www.youtube.com/watch?v=DkPsl_-Oa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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