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에서 마주친 그 돌에 대하여
비가 온다는 예보는 없었다.
차창으로 빗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모처럼 성수동을 가는 길이라, 좀 걸어서 돌아다니다가 눈에 띄는 카페로 들어가려 했다.
예정에 없던 비, 예정에 없던 코스.
주차장도 꽉 차고 골목을 빙빙 돌다가 겨우 자리가 난 곳에 차를 댔다. 우산 쓰고 나와보니 빗물도 튀기고 멀리까지 걷기도 애매하다. 골라서 들어가려던 계획은 의미가 없어졌다. 그저 가까이 보이는 카페로 들어갔다. 언제 또 성수동을 올지 모르니, 아무 데나 들어가고 싶지는 않았지만.
왜. 여기 괜찮아 보이는데.
친구가 벌써 눈치챘다. 다른 곳을 기웃거리는 시선을 이미 읽고 한 마디 한다.
핫플레이스와 한참 떨어진 골목 모퉁이에 있는 그 카페는 젠 스타일로 깔끔했다. 취향의 차이겠지만, 지나치게 모던한 인테리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 망설였다. 모든 사물들이 반듯하고 어긋남이 없이 질서정연해서 조금 차갑게 보이는 공간에는 선뜻 발이 닿지 않는다.
커피를 주문하고, 자리를 잡는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 반듯함 속에 약간식 변주가 있었다. 테이블은 옛 소반을 두기도 하고, 계단이 지하로 이어져있었는데 낡아서 모서리가 닳고 부서진 콘크리트의 질감이 그대로 있었다. 천정의 기둥들도 낡은 질감을 살렸다. 자리마다 조금 다른 테이블과 의자들을 두었다. 카페 중앙엔 평상처럼 긴 사각형의 대리석 위엔 소반과 의자들이 있었고, 그 대리석 아래에 크고 납작한 돌덩이가 받치고 있었다.
겉만 봐서는 모르는 일이다. 디테일에 신경 쓴 흔적이 여기저기 널려있는데.
그런데, 그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없는 커다란 돌덩이.
그 납작하고 거친 돌덩이를 보고 있으니 편안해졌다. 그리고 보니 카페 문의 손잡이도 까끌까끌한 자갈이었다. 빗길에 헤매느라, 또 빡빡한 일정으로 지친 오후를 보내고 겨우 도착한 곳에서 그 돌을 보는데 다른 것들이 다 잊혔다. 그 이후로는 모든 게 자연스러웠다. 따뜻한 커피도 맛있고, 쿠키도 달지 않았다. 이야기도 부드럽게 흘러간다.
남산 근처에 좋아하는 미술관이 있다. 한참 굽어진 언덕을 올라야 도착하면 나무와 깎인 절벽이 슬쩍 보이는 아늑한 터에 식물원이 있다. 비밀의 정원으로 향하는 길처럼 이어진 코스라서 좋고, 오래된 건물을 다시 살려낸 아이디어도 좋다. '70년대 제약회사였던 빌딩을 전시관으로 수리했다. 이름은 '피크닉'.
언젠가 그 전시에서 한참 동안 바라보던 사진 하나가 떠오른다. 고대 그리스에서 가져온 듯한 석조 테이블 위에 놓인 두 개의 질그릇이 있던 공간.
골동품상이기도 하며 갤러리를 운영하는 벨기에의 디자이너 악셀 베르보르트(Axel Vervoordt)의 작업이었다. 그의 공간에는 돌들이 이따금씩 등장한다. 실제로 생활에서 별 쓸모도 없는 큰 돌덩이를 왜 굳이 배치하는지 묻기도 전에, 하나의 울림이 전해진다.
"돌은 시간에 의해 만들어지고 대지의 힘을 담고 있습니다. 조용하고 느리게 살아 숨 쉬는 생물처럼 수 천년, 수백만 년 동안 공명하는 영혼을 갖고 있죠. 그 종류에 따라 각기 다른 정신이 깃들어있다고 믿는데, 제 직업은 이를 상기시키는 것입니다.
얼핏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실은 무게와 의미를 지닌 지상의 물건에 고귀함을 부여하는 일이죠.
재발견을 통해 더 나은 장소로 옮기는 것이 우리의 주요 업무 중 하나입니다. "
-악셀 베르보르트 인터뷰 중에서
역사와 시간을 그대로 품고 있는 신비. 스스로를 꾸미거나 과장하지 않고 지나온 날들을 그대로 드러내는 가장 흔하면서도 가볍지 않은 하나의 돌.
우연히 마주친 돌을 바라보면서 전해지던 평화의 정체를 조금씩 알 것 같다.
도시 속에서 돌멩이 하나 쳐다보기 쉽지 않은 바쁜 시간들을 살아가면서 놓치는 무언가에 대한 질문을 돌이 던져준다. 아마도, 못 봤다고 인식할지 몰라도 하루에도 수많은 돌들을 지나쳐서 어딘가에 도착하고 떠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게 콘크리트 벽을, 아스팔트를 매일매일 지나가고 향하면서.
그 디자이너는 자신의 직업이 무엇이냐는 정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더 나은 장소를 찾길 원하는 돌을 모으는 사람'
그 돌들은 구르고 또 굴러서 기나긴 세월의 끝에 도착해서 우리의 눈앞에 나타난 것인지도 모른다.
그 일을 도와주는 사람이라는 스스로에 대한 정의를 내릴 수 있다는 것 역시 대단하다.
발에 차이는 돌이라고, 흔하고 값없다고 지나치기엔 이야기 속에 신비스러운 존재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조앤 롤링의 해리포터 시리즈에서 마법의 시작은 돌이었다.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Everythhing everywhere all at once, 2022>의 벼랑 끝에서 돌멩이들은 뭐라고 말했었나.
기나긴 지구의 역사 속에서, 우주 가운데 인간은 아주 작고 어리석은 존재라는 것.
내 삶에서 거쳐왔던 수많은 실패와 거절들이 지금 나를 이곳으로 끌고 왔다는 사실.
세상에서 마땅히 들려야 할 소리가 잠잠해지고 사람들이 말하지 못할 때가 오면 성경에서는 돌들이 소리를 지를 것이라고 말한다.
이따금씩 냅킨 뭉치를 자갈로 눌러두는 카페들을 종종 본다.
그 돌이 손에 닿을 때면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비밀처럼 전해지는 하나의 고고한 신비가 슬쩍 스칠 것이다.
돌멩이가 건네주는 평안에 슬쩍 손을 대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