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운상가에 있던 친구의 작업실
친구의 작업실은 세운상가에 있었다.
설치미술과 사진, 영상 작업을 하는 그 친구는 혼자 작업도 하고, 액자들도 보관해 둘 만한 공간이 필요했다. 그곳에 둥지를 튼 이유는 간단했다. 서울에서 가장 싼 월세 - 보증금 300에 월세 20가 있다는 소문이 작가들 사이에 퍼졌다. 몇 전의 일인데, 아득하게 느껴진다.
월세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지만, 더 좋은 것은 주변이 온통 수리점으로 가득하다는 사실이었다. 뚝딱거리고 부스고 만들고 하다 보면 공구들도 사야 하고 고장 나면 고쳐야 하는데, 멀리 가지 않아도 바로바로 해결된다. 한창 세운상가 재개발 프로젝트가 들어오기 이전부터 이미 설치 작가들이 이곳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젠트리피케이션을 피해 돌고 돌아온 사람들이 많았다.
그는 어느 전시회에서 우연히 알게 된 친구였다. 전시를 여는 작가의 초대를 받았는데, 그의 친구였다. 우연히 저녁을 같이 먹다가 이야기를 나눈 것이 인연의 시작이었다. 세운상가라는 말에 호기심이 들었고, 친구는 언제든지 놀라오라고 했다. 나는 얼그레이케이크를 하나 사들고 을지로로 향했다.
세운상가(世運商街)에 와 본 적이 있었던가?
어린 시절에 누군가를 따라와 본 것도 같은데, 확실하지는 않다. 서울에 태어나 살았어도 늘 가던 곳만 가게 된다. 가본 기억인지 영화나 TV의 장면인지도 어렴풋한데 그 거대한 건물 앞에 서보니 더 모르겠다. 길게 이어져있는 수리점들을 따라 걷는다. 입구에서 내부로 갈수록 과거로 깊숙이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세계의 기운이 모인다'는 야심 찬 이름으로 지어질 때와는 꽤 멀어졌지만, 과거의 영화를 누리던 흔적까지 지워질 수는 없다. 옛 상가의 구조가 흔히 그렇듯 따로 분리되지 않고 열린 공간을 나누어서 가게들이 이어지다 보니 묘한 개방감이 든다. 머리 희끗하신 상인들이 가게에서 물건을 고치는 손길들 사이로 세월이 지나간다. 자연스럽게 주름진 표정에는 성실히 일해온 사람 특유의 건강한 기운이 서려있었다. 손끝은 기름 때로 까매지거나 뭉툭해지기도 했지만 말 안 듣는 전자제품이라도 얼마든지 제자리로 돌려놓을 수 있다는 자부심이 배어있었다.
수리점들을 지나 계단을 올라 조금 헤매다 작업실 같은 곳이 보였다. 문이 있는 막힌 공간이어서 언뜻 보기에 뭐하는지 알 수 없다. 혹시 물건을 저장해 두는 곳이었을까. 따로 간판도 없으니 힌트도 없다.
슬쩍 문을 밀어보니 작은 책상에 앉아있던 친구가 환하게 웃는다. 세 평 정도의 아주 작은 방. 벽을 보고 책상 하나있고 중간에 작은 테이블과 의자, 벽에 걸린 액자들, 구석에 쌓아둔 오브제들. -당시 친구는 검정고무신으로 설치 작품을 해서 고무신들이 한쪽에 수북이 쌓여있었다.
조각 케이크와 향긋한 차가 작은 테이블에 올랐다. 습기가 많다며 친구가 피워둔 향초의 불빛이 벽에 그림자를 만들며 아른거린다. 작업 이야기, 근황을 슬슬 나누다가 이곳 사람들이 궁금해진다.
세운상가의 터줏대감들인 기술자분들과 새로 들어온 젊은 작가들이 잘 지낼 수 있을까.
모든 것을 오픈해서 손님을 맞는 수리점과 달리 작가들은 막힌 공간을 만들어서 커튼을 치고 간판도 없이 들어가서 좀처럼 나오질 않는다. 그 친구의 작업실에도 몇 번 문이 열리곤 했었는데 토박이 기술자분들이 동그란 눈으로 안을 들여다보고 한 마디씩 하셨다.
도대체 여긴 뭐 하는 곳이냐고.
그러면서도 젊은 친구들이 반가운 건지 그분들은 텃세 없이 언제나 친절히 대해주신다. 뭐가 고장 나서 들고 가면 역시나 기막히게 수리해 주신다는 것이다. 옛 건물에는 그곳에 스민 정서가 있다. 요즘은 보기 드문 어떤 동네의 정이 그곳에 있는 것 같았다.
오래된 건물이다 보니 비가 샐 때도 있었다. 장마가 억수로 퍼붓던 어느 여름에는 물이 들어와서 대공사를 해야 했다. 친구는 물을 일일이 퍼다 내버리고 여기저기 빈틈을 막느라 분주했어도 기술자들이 가까이 있으니 언제나 수리는 빨랐다고 했다. 또, 6시면 무조건 전등을 꺼야하는 규칙도 있었다. 야간작업을 다 하지 못한 아쉬움도 있었지만, 그래서 밖으로 나올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지나간 고생담과 침수의 흔적까지 모두 이제는 수다거리가 된다.
건축가 김수근이 지은 세운상가는 70~80년대 전성기를 지나면서 많이 잊혔지만, 이곳의 기술자들의 저력은 스쳐지날 만한 것이 아니다. 우주선이나 탱크도 만들 수 있다는 소문이 돌 정도의 재야의 고수들이 숨어있는 전설 같은 곳이었다. 뭐든지 뚝딱 고쳐내고 주문대로 척척 만들어내는 기술로 자식들을 먹여 살리고 가족을 부양했으며 언젠가부터 벤츠 타고 지나가더라는 얘기를 어느 다큐멘터리에서 본 적이 있다. 지금은 다 지난 이야기라고 자식들에게 손 벌리지 않을 정도라고만 하셨지만, 그 역시 대단한 일 아닌가.
차를 마시다가 친구가 한 얘기가 있다. 비엔날레 전시를 준비하다가 몇몇 외국인들이 작업실에 온 적이 있는데, 하나같이 을지로 일대를 둘러보면 '환장한다'는 것이다. 서울에 이런 곳이 있냐고 놀라면서 전혀 기대하지도 않았던 풍경들에 찬사를 보낸다고.
이곳에 사는 우리 눈에 칙칙하고 쇠락해 보이는 모습들이 그들에겐 얼마나 다르게 보이는 걸까. 특히 뚝딱거리고 망치질하고 수리하는 가게들이 도심에 즐비하다는 사실에 놀라는데, 그 모습들이 무언가를 떠오르게 하는 듯했다. 그러다 어느 인터뷰에서 그 정체를 알게 되었다.
어느 기자가 루이뷔통 트래블북 시리즈의 서울 편을 만들던 프랑스인 디자이너에게 물었다.
서울을 상징하는 장소는 어디라고 보는가.
디자이너들이 꼽은 곳은 흔히 떠올리는 경복궁 같은 궁들도, N타워 같은 랜드마크도 아니었다. 유럽 사람들의 눈에는 한국의 궁이 다른 동양의 궁과 크게 다르게 보이지 않는다. 그런 관광지만 돌다가 한국이 별로라고 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렇다면 서울의 매력이 뭘까.
걸어서 돌아다니다가 드디어 발견하게 된 진짜 서울.
디자이너들은 수리점이 즐비한 을지로의 골목, 수제 공방들이 가득한 성수동을 꼽았다.
"서울은 도심 한가운데서 장인들이 여전히 수작업을 하는 도시다... 진정성 있는 노동의 현장이자, 유럽은 잃어버린 중세적 풍경이다. 파리엔 19세기 이후 장인이 도심에서 일하는 아틀리에가 사라졌다. 부티크만 존재한다. 중국, 일본에도 없는 풍경이다. 서울 사람들도 이런 모습이 미학적임을 깨닫는 것 같다."
-루이뷔통 트래블북 서울 편의 프랑스 디자이너 듀오 이시노리 인터뷰 중에서
서울에서 중세적 풍경을!
이미 오래전에 사라져서 이제는 작은 소도시에서나 찾을 수 있는 흔적들이 버젓이 서울 심장부에 살아있다는 사실에 감동을 받은 것이다. 정작 살고 있는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것들.
정기용 건축가가 말했던 '의미의 창고'가 떠올랐다. 너무나 익숙하고 당연해서 열어보지 않은 의미의 창고.
"내가 서울에 산다는 것은 세계를 사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삶의 방식 속에서 저마다 다른 가치관과 각기 다른 욕망을 분출하고 기쁨과 슬픔과 희망과 고통과 좌절의 궤도를 돌고 있다. 매일매일의 일상성은 천일야화를 만들고, 또한 서울의 역사를 만들어 나간다. 이런 현상을 두고 나는 서울을 열어본 적이 없는 의미의 창고라 말한 적 있다. '오직 쓰기만 하고 한 번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는 대하소설'이라고 명명한 적이 있다."
-<서울 이야기> 중에서, 정기용
쓰기만 하고 한 번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는 대하소설 같은 도시.
디자이너의 인터뷰를 들으면서 생각해 본다.
이미 발걸음은 을지로의 인쇄소골목으로 향하고 있었다.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