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가 앨런 포와 팀 버튼, 그리고 납골당이 있는 교회
하늘이 무겁게 내려앉은 날에는 좀 다른 길이 궁금하다.
헉슬리나 필립 K 딕 같은 디스토피아나 묵시록적인 풍경이 어울릴 것 같다. 수전 손택이 '토성의 영향 아래'에 있다고 했던 음울한 기질의 발터 벤야민은 어떤가. 우울함, 혹은 '심오한 슬픔'에서 빠질 수 없는 작가들 -보들레르, 프루스트, 카프카의 책을 둘러본다. 하지만 정작 손이 가는 건 다른 쪽이다.
온통 블랙으로 깜깜한 책표지가 어떤 미로를 보여줄 것 같다. 책장을 넘기니 길이 하나 나있다.
기묘한 망상을 불러오는 대저택. 그것은 단순하게 공포라고만 딱 잘라서 설명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에드가 엘런 포의 '어셔가의 몰락'이다.
오래되어 낡고 빛바랜 건물벽과 빈틈없이 뒤덮인 곰팡이들, 가느다랗게 뒤엉켜있는 거미줄. 그렇다고 어디 하나 부서진 흔적이라고는 없는 이상한 집. 황폐하다고 하기에도 맞지 않는다. 이 집의 이미지를 못처럼 박아주는 기막힌 표현이 눈에 띈다. '공허한 눈을 연상시키는 창들'
대저택에 박혀있는 수많은 공허한 눈들이 초점 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 기괴한 부조화들이 초청을 받았지만 거절할 수 없는 매력, 혹은 마력을 내뿜고 있는 아주 독특한 장소였다. - 그리고 보니 제목(The Fall of the House of Usher)에도 'usher, 안내자'가 들어있다.
이 소설의 화자는 하나의 질문을 품에 안고 어셔 저택 속으로 들어간다.
'어셔 저택을 바라볼 대 내 기분을 이렇게 가라앉게 하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이런 저택에 평범한 인물이 살고 있을 리가 없다. 화자를 초대한 로드릭 어셔는 극단적 신경쇠약을 겪는 병적인 인물이었는데, 그에 대한 묘사는 이제껏 본 적이 없는 것이었다.
'병은 여러 가지 이상한 감각의 형태로 나타났다. 그가 자세하게 들려준 그 이상 감각이라는 것 중 하나가 나의 흥미를 끌었으며 또한 심하게 놀라게도 했다. 틀림없이 그가 사용한 말과 이야기 전체의 분위기가 그런 효과를 가져다준 것일 게다. 병적으로 날카로워진 감각 때문에 그는 매우 고민하고 있었다. 완전히 김이 빠져버린 음식이 아니면 그 어떤 음식도 견뎌내질 못했다. 옷도 특정한 천으로 만든 것만을 입었다. 꽃냄새는 전부 그를 답답하게 했다. 눈은 조그만 빛에도 고문과 같은 고통을 느꼈다. 그에게 고통을 주지 않는 것은 특별한 소리 -현악기의 소리뿐이었다. '
병이 감각으로 드러난다. 김 빠진 음식, 특정 천으로만 된 옷, 꽃냄새에는 질식할 것 같고, 빛에는 고문과 같은 고통. 오직 고통이 되지 않는 것은 현악기의 소리뿐인 병.
보리스 비앙의 소설에 등장했던 '폐에 꽃이 피는 병' 이후로 이상하면서도 호기심이 드는 증상들이다.
미국의 작가 가이 대븐포트는 <어셔가의 몰락>의 주된 정서가 고딕이라고 전하며, 포를 '어느 작가보다도 신세계로 유입되는 핵심적인 정보를 잘 알아보는 사람'이자 '전해 들은 말과 소문으로 맹렬하게 추측하는 작업을 창조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끌리는 이야기는 맹렬하게 도는 말과 소문에서 비롯될 때가 많다. 포는 여기에 귀를 바짝 세우고 그 위에 자신만의 작업을 구축했다.
고딕 풍의 저택이라고 하니 팀 버튼이 떠오른다. <비틀쥬스 Beeteljuice, 1988>에도 으스스한 저택이 있었다. 그 집은 겉으로 봐서는 멀쩡했다. 미니어처처럼 깔끔하고 예쁜 조립식 하얀 집. <어셔가의 몰락>에 비하면 훨씬 코믹하기도 하고, 유령까지 등장하니 동화처럼 다가온다. 그 집에 사는 좀 이상한 소녀 리디아를 좋아했다. 사진을 좋아하는 딸을 위해 암실을 마련해 주겠다던 아버지에게 리디아는 이렇게 말한다.
"내 인생이 암실이죠. 내 자신은 이상함 그 자체예요!"
이상한 사람들이 자신의 이상함을 안다. 그 자각이 흥미롭다. 나는 '아닐 거야'라고 섣불리 합리화하거나 다른 이미지로 덮어씌우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 자신을 인식한다는 것. 어셔가의 로드릭처럼, 비틀쥬스의 리디아 역시 그렇다. 리디아를 자신의 어린 시절을 투영한 팀버튼의 페르소나 같은 인물이라고 하지만, 스모키 화장으로 말기암의 안색을 드러낸 위노나 라이더와도 떼어놓을 수 없는 캐릭터였다.
어셔가의 저택엔 주인을 닮은 병자들의 정신세계를 유지해 주는 사물들이 있었다. '매력적이고 신비로운, 어셔의 보기 드문 지성과 어두운 상상력'을 암시하기 위해 포가 특별히 배치한 것이라는 가이 대븐포트의 해석이다. 그 집에 초대된 화자는 그곳에 있는 책을 읽고 주인과 대화를 나누는 사이 환청처럼 들려오는 소리와 공포 속에 압도된다. 그리고 로드릭의 여동생의 시체를 보관하는 지하납골당까지 가게 된다.
'관을 내려놓은 지하 납골당(오랫동안 닫혀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가지고 들어간 횃불도 무거운 실내 공기에 짓눌려 꺼지려 했기에 내부의 모습은 잘 살펴볼 수가 없었다)은 좁고 눅눅했으며, 바깥의 빛이 전혀 들어오지 않았고, 저택에서 내가 쓰는 침실의 어떤 부분의 바로 밑 아주 깊은 곳에 있었다.'
지하납골당에서 한참을 멈추다가, 하나의 기억이 떠오른다. 포가 살았던 19세기의 서양 문화의 파편이 서울의 어느 거리에도 숨어 있다.
덕수궁 근처의 그 교회의 지하에는 지금도 초대 주교님의 시신이 그대로 안치되어 있다. 사람들이 북적이는 아주 일상적인 그 거리 어느 지하에 고이 잠들어계신 것이다. 언젠가 취재하면서 듣고 놀랐던 기억이다.
조선시대에는 한성 도성밖 10리까지 무덤을 만들지 못하게 하는 엄격한 법이 있었다. 어기면 사형과 맞먹는 유배형을 당할 정도였지만, 사대문 안 그 교회에는 신비스럽게도 납골당의 전통이 유지된 것이다. 기독교의 역사적 의미로는 '함께 묻힌다는 공동체로서의 소속감'이며, '성인들의 무덤 자리에 제단'을 만든 전통인 것이다. 사대문 안의 유일한 납골당이다. 조선이 위태로워진 사이 정동은 그렇게 전근대적인 금기가 완전히 사라진 공간이 되었다고 했다.
세상이 돌아가고 변하는 방식은 사람이 정한다고 따라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돌아보았던 시간이기도 했다.
포의 단편 소설은 블랙 미로를 계속 열어준다. <어셔가의 몰락>의 주인 로드릭의 병세를 읽으면서 또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그는 평생 블랙수트만 고집하고, 음식도 흰색으로 된 것만 먹었다. 대저택과는 거리가 먼 몽마르트르의 작고 허름한 지붕 밑 다락방에 살았던 그는 에드가 앨런 포에게 영감을 얻었던 것이다. 다만, 현악기가 아니라 피아노를 연주하는 사람이었을 뿐.
아마도 그의 주변엔 검은 고양이가 서성이고 있었을 것이다.
(블랙 미로2는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