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매드체스터를 만난 날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해내고 말 거예요.
누군가 작품 전시를 준비하며 말했다. "남의 간섭은 전혀 받지 않고!"
나는 깜짝 놀랐다. "그게 가능할까요?"
그건 궁금해서 던진 질문은 아니었다. 확신을 달라는 뜻이었다. 실은, 아주 오래전부터 듣고 싶었던 말인지도 모른다. 미처 말로 꺼내지는 못했지만, 항상 그려왔던 어떤 세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었던 말. 어쩌면 그날 그 친구에게 내가 가보지 못한 미지의 장소를 발견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패션 카탈로그에서 하나의 단어가 눈에 들어온다. 무신사의 어느 티셔츠 소개에 이렇게 쓰여있다. '80년대 영국 맨체스터 유스들의 당시 강박적인 매드체스터(madchester)의 하위문화에서 영향을 받았다.
매드체스터!
영국팝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익숙한 단어이다. 또 축구팬들에게도 그렇다. 영국의 런던, 버밍엄과 함께 3대 도시로 불리는 맨체스터. 그러니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그 맨체스터는 산업도시로서, 또 명문축구도시로서 알려졌지만, 음악 또한 유명하다. '미친(Mad)'과 '맨체스터(Manchter)'의 합성어가 된 매드체스터는 이 도시의 폭발적인 음악의 영향으로 비롯된 일종의 문화운동이며, 그 여파는 패션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1980년대 이전까지 쇠락한 산업도시의 무거운 공기 아래 있던 노동자 계급의 도시 맨체스터에 무언가가 꿈틀대기 시작했다. 쇠락한 공장 굴뚝만 즐비하던 이곳에 몽환적이고 신선한 사운드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묵직하고 매캐한 연기를 뚫고 솟아오를 다른 세상을 꿈꾸는 음악가들이 하나둘 무대에 올랐다. 강박적이고 따분했던 사회를 바꾸고 싶었고 목소리를 내고 싶어 했다. 맨체스터 출신의 뮤지션이라면 단연 90년대 등장한 오아시스(Oasis)를 떠올릴 수 있으니, 매드체스터는 그 뿌리가 되는 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
'매드체스터'란 이름이 붙었을 정도면 그 도시는 어떤 모습이었던 것일까. 전 세계를 휘감았던 시애틀의 그런지 사운드와 같은 폭발적 에너지와도 다른, 후의 브릿팝의 심벌과도 같은 찰랑대는 기타 소리보다는 거친 맨체스터만의 사운드는 처음부터 확 끌리는 음악은 아니었다. 하지만, 들을수록 무언가를 발견하게 된다. 다음에 들을 때 또 다르다. 누구와도 닮지 않았고 그들만이 낼 수 있는 소리. 온 도시의 에너지를 바꾸는 이런 류의 소리는 누군가의 운명을 바꾼다. 우리는 그 살아 움직이는 감각을 무대에서 바라본다.
'매드체스터'의 열풍은 지구를 한참 돌아 한국에도 도착했다. 2012년 뜨거운 여름날의 록페스테벌 노을이 하늘을 가득 채울 무렵 살랑이는 풀숲 사이로 매드체스터의 소리가 들려왔다. 스톤로지즈(The Stone Roses)의 기타가 울리자 잔디가 푹신해졌다. 산들바람처럼 다가온 기타 멜로디를 타고 어슬렁거리는 보컬 이안브라운과 '겉멋'이라는 것을 모르는 듯 직설적으로 기타를 치던 기타리스트 존 스콰이어를 비롯한 밴드 멤버들이 무대에 섰다. 누군가는 용수철처럼 튀어올라 무대 앞으로 나아가 리듬을 타고, 또 연인들은 멀찍이 캠핑의자에 앉아 귓속말을 속삭인다. 음 하나하나에 스톤로지즈의 시간이 바람처럼 실려온다. 이따금씩 살아있는 음악을 보면서 놓쳤던 것들을 발견한다. 하나의 도시를 움직였던 소리의 생명력이 귓가를 울린다.
The Stone roses - Bye Bye Badman
https://www.youtube.com/watch?v=xwi2TaaOq-Y
보컬 이안 브라운과 기타리스트 존 스콰이어는 동네 친구였다. 네 명의 멤버로 틀을 잡은 밴드는 수많은 무대에 올라 사운드 실험을 거쳐 1989년 드디어 데뷔앨범을 만든다. 하나의 작품을 할 때 얼마나 많은 의견을 들어야 하는가. 압박과 기대에 짓눌려 스스로를 잃거나 적당히 타협해서 그저 그런 음반이 되고 만다. 스톤로지즈는 이런 간섭을 피해서 한밤중에 리코딩을 했다. 이미 수많은 무대 경험과 리허설로 쌓아 올린 실력으로 멤버들 스스로 자신의 역할을 잘 알고 있었으며 과정도 허풍도 없이 충실히 제 할 일을 했다. 리코딩은 짧은 시간에 끝났다. 그렇게 데뷔앨범이 완성되었다.
이 앨범의 커버는 기타리스트 존 스콰이어의 작품이다. 현대미술가 잭슨폴락의 영향을 떠올리게 하는 페인팅인데 스톤로지즈는 '우리 음악의 90%는 잭슨 폴락에 대한 오마주'라고 했다. 이 작품에는 프랑스 '68 혁명의 에너지가 담겨있다. 삼색 컬러는 프랑스 국기에서 빌려온 것이고, 오렌지는 시위대의 필수품이었다. 시위대는 최루탄에 노출되었을 때 감각을 회복하기 위해 오렌지를 씹거나 그 즙을 눈에 넣어 이겨냈다. 매캐한 연기로 채워진 거리에서 기성세대의 권위주의를 오렌지로 대항하던 젊은이들의 함성이 보인다. '68 혁명의 정신으로 맨체스터의 답답한 강박을 벗어나려는 그들의 외침이었을까.
그렇게 백 퍼센트 원하는 대로 만들어낸 스톤 로지즈의 데뷔앨범은 팝음악사의 새로운 이정표가 되었다. 듣는 사람들은 놀란다. 그들이 이 앨범에 불어넣은 생동감과 참신함은 쉽게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거장의 뺄 것도 더할 것도 없는 걸작과는 또 다른 신인의 순간에만 담을 수 있는 모든 것들이 들어있다.
이안 브라운은 스톤로지즈의 음악을 받아들이려면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종종 그런 일이 일어난다. 어떤 음악은 세월이 지나 새롭게 들려온다. 묻혀있던 그림이 다시 조명받는다. 먼지 쌓였던 책이 재평가된다. 당장 손에 잡히는 것이 없다고 해서 성급하게 실망할 일이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돌아보는 편이 현실적이다. 세상의 걸작들에게 왕관을 씌우는 명예의 전당에 초대될 작품들은 많지만, 한번 지나면 다시 오지 않을 데뷔의 순간을 담는다는 것은 또 다른 의미이다. 이제 막 도전하고 시작하는 첫 시작.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 앨범은 말하고 있다.
오아시스의 노엘 갤러거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내가 처음 스톤로지즈를 보았을 때, 나와 비슷하게 옷을 입은, 나와 같은 평범한 인간이라고 느껴졌다. 그때 나는 음악이 내가 가야 할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이 앨범은 '다른 사람은 잊어라'라고 선언하는 것이다. 온갖 잡음으로 머릿속이 웅웅 거리고 나아가야 할 방향을 헤맬 때 또렷한 신호가 있다고 말해준다. 모든 일에는 이루어질 수 없는 수만 가지의 이유가 있다. 하지만 또 누군가는 그것을 이루어내고 현실로 만든다. 어떤 일이 희미해지고 불투명해 보일 때 나만의 방식을 찾기 어려워질 때 스톤로지즈는 그 답을 들려준다. 그 길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해준다. 시끄럽던 주변이 조용해지는 순간이다. 투덜거리기를 멈추고 스톤로지즈를 가만히 플레이어에 올려놓는다.
*읽어주신 작가님들의 도움으로 <도시와 테이블에 놓인 노트>의 심화 버전을 종이책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좋은 분들을 만나 출간 계약 했고, 다음 브런치북에도 <도시와 테이블에 놓인 노트2>가 계속 이어집니다. 이곳에 들러주시는 모든 분들, 특히 구독자분들 감사합니다!